[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2200만 노동자와 그 가족을 위한 노란봉투법
대한민국 헌법 제33조 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자주적으로 만들어 사용주에게 단체교섭을 통해 ‘근로조건의 향상’을 요구하는 게, 고용노동부 통계로 2200만명에 이르는 국민들의 헌법적 권리라는 내용이다. 만약 이러한 요구를 사용주들이 들어주지 않을 경우 노동력 제공을 일시적으로 거부하고 일손을 놓고 쉬는 파업권을 가진다는 내용이다. 누가 ‘보장한다’가 아니라 ‘가진다’라는 내용이다.
‘파업’이라면 엄청난 폭력을 수반하는 어떤 것으로 보수언론과 권력 집단 등은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기실 파업은 어떤 폭력을 행하거나 무엇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 보장이 충분히 되지 않으면 일손을 놓고 쉬겠다는 너무나도 선하고 평화로운 방식의 저항권일 뿐이다. 이런 파업을 통해서라도 노동자들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어야겠기에 합법적인 파업 시 대체근로자를 고용해 공장을 돌리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기도 하다.
이런 국민 다수의 헌법적 권리를 파괴하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미명 아래 도입한 묘수이자 꼼수가 ‘비정규직’이었다. 사람들은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 않냐고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해괴한 신조어가 한국말에 비정상적으로 편입된 것이 고작 30년도 안 된 1997년경이었다는 사실은 까먹는다. 비정규직이 아닌 정상적인 고용구조에서도 한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고, 재벌 대기업들은 배를 불려왔다는 사실도 까먹는다. “2년 연속 고용 시 정규직화한다”라는 이른바 ‘비정규직 권리보장법’의 핵심 내용이 비정규직의 도입과 확대재생산, 영구적 제도화를 위한 악마의 규정이었다는 것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자본가들은 비정규직 합법화에 따라 자회사 신설 등을 통한 하청, 외주화, 용역, 도급, 특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등을 무한 확대시켜 왔다. 그전처럼 같은 일을 시키고도 비정규직들에게는 정규직 임금의 절반 정도만 주면 되었다.
고용불안이 만성화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기 권리 찾기에 나서기도 힘들다. 2년 내에 잘리고, 재계약 등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임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은 정말 꿈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혹여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 곧 계약이 해지되고 만다. 대공장 하청이나 외주 기업의 경우 아예 업체를 공중분해시켜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노동3권 무력화를 막기 위해 늦었지만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그간 비정규직법을 악용해 원청 사용자성을 부정하던 재벌 대기업들의 불공정한 악행을 바로잡기 위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또 헌법 33조 제1항의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는 조문에 따라 하위 법령인 노조법 제2조 5항에서 노동쟁의를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 간에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 상태’로 정의한 부분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결정’이라는 한 단어를 빼서 구조조정이나 매각, 민영화 등 실제적으로 ‘근로조건의 향상’을 저해하는 여러 상황에서도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확인을 한 것이다. 나아가 노태우 군부정권 시기였던 1990년 10월, 최병렬 당시 노동부 장관이 헌법상 권리인 노동3권의 무력화를 위해 기업들에 노조 파업에 민사소송으로 대응하라며 내린 지침에 따라 생겨난 손해배상 가압류 청구의 악용을 막기 위해 손해배상 가압류 시 해당 노동자들 개인별로 구체적인 귀책 사유와 정도를 분명히 해야 하고, 그 입증 책임을 소송 당사자인 기업이 지도록 한다는 보완적 개정을 했다. 그것이 전부다. 일면 엄청난 진일보인 것 같지만 2200만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헌법 33조 1항의 권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정도다.
그런데 이 정도의 바로잡음과 개정 정도도 안 된다고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대통령 때문에 온 나라가 절반으로 쪼개졌다고 한다. 말은 바로 해야 해서 2200만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헌법적 권리와 인구의 채 1%도 안 되는 재벌 집단 간에 이해충돌이 있을 뿐이다. 그 권리 분쟁의 사이에서 헌법적 권리이자 주권자 다수의 권리와 배치되는 거부권 행사를 준비 중이라는 대통령은 도대체 어떤 국민들의 대통령일까.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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