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초록 낙엽, 나무 시계를 고장 낸 범인은 누구인가
온난화가 없었다면 단풍의 시작 시기가 늦춰지지 않았을 것이고 초록색 낙엽을 볼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지금 생태계 변화는 사계절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간다면 단순히 옷을 갈아입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반드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탄소중립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삶의 방식을 전환해야 하는 더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며칠 전에 길을 걷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길에 떨어진 은행나무 낙엽이 노란색이 아니라 초록색이었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푸르른 나뭇잎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마 많은 분이 나처럼 당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단풍의 시작 시기가 늦어져 11월 초가 되었음에도 은행나무 잎이 노란색으로 변하지 않은 것도 신기한데 이제는 초록색 은행나무 낙엽이 바닥에 깔린 것이다. 도대체 나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누가 나무의 시계를 망가트린 것일까. 지금부터 나무의 시계를 고장 낸 주범을 찾아보려 한다.
한국이 위치한 온대지역의 낙엽활엽수(계절 변화를 하는 잎이 있는 나무)는 일정량의 추위를 경험하면 단풍이 시작되고 이어서 낙엽을 떨어트린다. 보통 종마다 다르지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면서 일조량이 줄어드는 시점부터 특정 기온 이하의 추위를 감지하기 시작하고 일정량의 누적된 추위까지 견디다 본인의 한계를 넘어가면 광합성을 멈추고 색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무가 인지하는 추위를 Cooling degree day(냉방도일)라고 한다. 사실 냉방도일이란 용어는 에너지 분야에서 여름철 에어컨 이용과 관련한 수요예측에 많이 사용되어 헷갈릴 수도 있지만 영어가 같기에 여기서는 같은 용어로 표기하겠다. 더위를 식혀주는 에어컨 같은 경우 특정 온도보다 높은 날이 많으면 결국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이지만, 나무의 냉방도일 같은 경우 특정 온도보다 낮은 경우만 고려하는 개념이라 정반대이지만 용어가 같다. 하나의 용어이지만 인간과 나무는 다르게 사용하고 있어야 한다.
그럼 나무의 단풍이 시작되는 시기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다. 예를 들어 특정 나무가 3도 이하의 추위를 기피하고 단풍에 필요한 총 냉방도일이 -50이라고 했을 때, 나무는 3도보다 낮은 날 기온을 감지하여 누적하기 시작한다. 일조시간이 특정 시간 이하로 줄어드는 날(예 8월20일)부터 매일 3도보다 낮을 경우를 인지하기 시작하는데, 만약 다음날(8월21일)이 2도면 2-3=-1, 그리고 다음날(8월23일)이 4도면 3도보다 크기 때문에 0, 또 다음날(8월24일)이 -1도면 -1-3=-4, 그래서 지금 3일간 -5가 냉방도일로 축적되었고 이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더해지는 값이 -50에 도달되면 단풍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늦여름이나 가을에 기온이 높으면 3도 이하인 날의 수가 줄어든다는 뜻이기 때문에 단풍이 필요한 냉방도일에 늦게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온난화와 같은 기후변화가 단풍의 시작 시기를 늦추고 있다. 최근 들어 왜 이렇게 단풍 시작이 늦은지 궁금했던 분들은 이제 답을 찾았을 것이다.
나무시계, 평균·변동성 변화로 고장
그렇다면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 왜 초록색 낙엽이 바닥에 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나무가 추위를 인지하고 단풍이 시작되어 잎의 색깔이 변하고 잎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급격하게 추워지는 날씨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실제로 초가을 기온이 높았기에 단풍의 시작 시기가 늦어져 잎은 여전히 초록색으로 달려 있었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추워진 날씨로 단 며칠 만에 너무 빨리 냉방도일에 도달한 것이다. 즉 나무는 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기후학적으로 단풍이 시작되고 나무 내부의 수분 공급을 차단하고 색깔이 점점 바뀌는 시간 그리고 완벽히 수분을 차단하기 위해 나뭇잎을 떨어트려 낙엽이 되는 시간이 있다. 그런데 급격히 추워진 날로 인해 너무 빨리 냉방도일에 도달하면서 나무의 생체시계가 망가져 버린 것이다. -50이라는 숫자를 향해 마라톤처럼 서서히 달려가야 하는데 100m 달리기처럼 너무 빨리 뛰다 넘어져 버린 것이다.
결국 나무의 시계는 기후변화의 속성인 평균과 변동성의 변화 두 가지 모두에 영향을 받아서 고장이 났다. 여기서 이 두 가지 속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평균의 변화란 예를 들어 20년 전에는 초등학교 1학년의 학생이 보통 한 반에 약 20명이었는데 최근에는 보통 한 반에 약 30명이다. 그래서 평균이 약 10명 늘었다. 이런 의미다. 반면에 변동성 같은 경우, 20년 전에는 매해 18명 또는 22명으로 해마다 4명 정도의 차이를 보이며 평균 20명이었지만, 최근에는 한 해는 15명 또 다른 해는 45명으로 평균은 30명이지만 해마다 30명 가까운 차이를 보일 만큼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이렇게 가정해 본다면 평균뿐만 아니라 변동성의 변화에도 크게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평균은 분명히 증가했지만, 특정 해에는 입학생이 15명으로 오히려 20년 전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렇게 되면 평균이 변하는 것보다 학교에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평균의 변화에 대한 대처와 변동성의 변화에 대한 대처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매해 가을 기온이 조금씩 상승하면서 가을의 계절 기후가 바뀐 것이 ‘평균의 변화’이다. 평균의 변화에 따라 결국 나무의 단풍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그리고 갑자기 너무 추운 날이 급격하게 자주 발생하면서 미처 준비가 안 된 나무가 낙엽을 떨어트리는 것은 ‘변동성의 변화’의 영향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초록색 낙엽 사건의 주범은 기후변화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계절 변화로 삶의 방식 대전환
이러한 평균과 변동성의 변화로 인한 영향은 겨울에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 미국에 영하 50도의 한파가 불어닥친 적이 있다. 그때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는 허구라고 외치고, 지금 너무 추워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구온난화라고 떠들어댄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 미국 한파도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겨울이 너무 따뜻해져(평균의 변화) 극 지역의 얼음이 녹고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은 대기의 공기막이 약해지면서(변동성의 변화) 차가운 극지의 바람이 미국으로 불어닥친 것이었다. 트럼프는 공부 좀 해야 할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누가 이 글을 그에게 읽어주면 좋겠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초록색 낙엽을 통해 기후변화가 나무에 미치는 영향, 더 나아가 생태계 취약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태계 취약성은 결국 인간 또한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토록 무딘 것일까. 눈으로 초록 단풍을 보기 전까지 왜 인지를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기후변화를 둔감하게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사계절이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사계절이 존재한다는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기온의 변화에 따라 갈아입을 옷이 준비되어 있고 건조한 계절에는 가습기를, 습윤한 계절에는 제습기를, 너무 더울 때는 에어컨을, 너무 추울 때는 난방장치를 가동하여 쉽게 날씨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가을처럼 너무 더워 반소매를 입다가 단 하루 만에 영하로 떨어져도 그냥 장롱 속 두꺼운 재킷을 꺼내 입으면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인간은 할 수 있지만 나무는 하지 못하는 일이다.
정리해보면, 온난화가 없었다면 단풍의 시작 시기가 늦춰지지 않았을 것이고 초록색 단풍을 볼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계절의 변화는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것이 맞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생태계의 변화는 사계절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계속 가다 사계절의 경계가 무너진다면 단순히 옷을 갈아입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우리가 사는 한국은 뚜렷한 사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의식주가 결정되었기에 사계절의 변화가 사라진다는 것은 사회, 경제, 문화 시스템 등 우리 삶의 모든 방식을 통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런 일이 없도록 우리는 반드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탄소중립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삶의 방식을 전환해야 하는 더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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