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보 위기’라며 권력 암투로 지새운 국정원, 환골탈태하라

지난 23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던 당시 국가정보원 간부들. 왼쪽부터 김남우 기획조정실장, 권춘택 1차장, 김규현 원장, 김수연 2차장, 백종욱 3차장. 윤석열 대통령은 영국·프랑스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지난 26일 인사·예산을 담당하는 김 실장과 사이버 안보를 담당하는 백 차장을 제외하고 서열 1~3위를 모두 경질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6일 김규현 국가정보원장과 권춘택 1차장, 김수연 2차장을 동시에 경질했다. 후임 원장을 공석으로 둔 채 급한 대로 이날 임명한 홍장원 신임 1차장에게 원장 직무대행을 맡겼다. 국정원은 지난해 기획조정실장이 취임 4개월 만에 물러난 후 몇 차례 인사 잡음을 노출했다. 그때마다 윤 대통령 신임을 받은 김규현 원장 체제가 1년6개월 만에 불명예스럽게 막을 내렸다. 정보기관 고위직 인사 다툼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도 볼썽사납지만, 서열 1~3위가 동시 경질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입만 열면 ‘안보 위기’가 엄중하다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이번 동시 경질 사태의 배경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경향신문을 비롯해 언론에 조각조각 나온 보도를 종합하면, 그것은 국정원 간부 인사를 둘러싼 계파 갈등에 가까워 보인다. 지난해 10월 윤 대통령의 검찰 후배 조상준 기조실장이 돌연 사퇴하며 내부 알력이 처음 노출됐다. 그 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점입가경은 윤 대통령이 지난 6월 자신이 재가한 국정원 간부 인사를 1주일도 안 돼 철회한 일이다. 이 인사에 김 원장 측근의 전횡이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후속 중간 간부들 인사까지 출렁였다. “정부 출범 1년 반 동안 국정원에서 벌어진 인사파동이 벌써 5번째”(윤건영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라고 한다.

그런 뒤숭숭함 속에서 정보기관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을지 의문이다. 문제는 대통령실 대응에 있다. 윤 대통령은 잡음이 노출될 때마다 김 원장 체제에 힘을 실으며 사태를 봉합하려고만 했다. 하지만 이번엔 일이 너무 커졌다고 본 모양이다. 김 원장이 권춘택 1차장 비리 혐의를 포착해 직무 감찰을 지시했다는 보도까지 흘러나오며 알력설이 정점에 달했다. 과연 이러한 내부 다툼으로 국가안보에 허점을 보이지 않았을지 묻고 싶다.

정보기관 내 암투가 드러난 이상, 이제 그 실상을 공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는 윤석열 정부 임기 내내 국민들을 괴롭게 할 것이다. 정부·여당은 야당의 국회 정보위 회의 개최 요구에 응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인내심을 갖고, 불안하게 지켜본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국정원 정상화를 위한 모든 논의의 대전제는 국정원이 다시는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능한 대외 정보 전담기구로 거듭나기로 했던 과거 약속을 지키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 튼튼한 안보를 위한다면 제 눈의 들보부터 직시하고 환골탈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