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실패해도 불이익 없다”…尹정부, 평가제 손보며 ‘과학계 달래기’

고재원 기자(ko.jaewon@mk.co.kr) 2023. 11. 2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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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고정된 과제 착수 시점서
언제든 연구 가능토록 기반 마련
신식 장비 도입 120일서 50일로
기술보상비율 50%→60%로 상향
3년간 글로벌 R&D에 5.4조 투입
한·미·일 중심 R&D 프로젝트 신설
“상피제 폐지는 카르텔 강화 위험성” 경고

◆ 尹정부 R&D 혁신 ◆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R&D 혁신방안 및 글로벌 R&D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정부가 과학기술인들의 도전적이고 혁신적 연구를 우대하기 위한 제도혁신에 나선다. 도전적 연구에 대해 실패를 용인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후속과제 선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성공과 실패로 구분하는 평가등급을 폐지한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도 허용하기로 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윤석열 정부 연구개발(R&D)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이번 R&D 혁신방안은 R&D에 맞지 않는 관리자 중심의 제도와 규제를 없애고 도전적·혁신적 연구가 우대받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제도혁신과 기초·원천기술, 차세대 기술 중심의 투자로 전환하는 투자혁신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안에 따르면 도전적·혁신적 연구에 대해서는 컨설팅과 동료평가를 비롯한 정성적 검토로 전환한다. 대신 연구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은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또 연중 언제든 우수 연구과제에 착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기존에는 회계연도에 따라 과제에 착수할 수 있는 시점이 고정돼 있다. 내년부터 연구과제비 사용기간과 회계연도 일치에 대해 글로벌 공동연구와 기초연구 사업부터 적용을 제외한다. 이후 다른 사업에 대해서도 단계적 폐지를 검토할 예정이다.

도전적 연구에 필요한 최신 고성능 연구시설 장비 도입 소요기간은 대폭 단축한다. 연구시설이나 장비 구매를 수의계약 대상에 추가하도록 국가계약법 시행령을 개정해 조달에 소요되는 기간을 기존 120일에서 50일로 줄인다.

최고가 최고를 평가할 수 있도록 ‘상피제’를 폐지한다. 상피제는 연구과제 신청자와 동일한 기관에 속하는 연구자의 평가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다. 폐지하는 대신 평가위원과 평가결과를 피평가자에게 공개해 투명성을 높이고, 평가위원의 이해상충행위 금지 의무를 부과해 공정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소모적 과제 수주경쟁에서 벗어나도록 한다. 대학이나 기업이 할 수 없는 대형 원천기술 개발에 몰입하도록 출연연을 국가전략기술 등 국가 임무의 전진 기지인 ‘국가기술연구센터(NTC)’ 중심 체계로 전환한다. NTC를 중심으로 여러 출연연이 함께 국가전략기술 개발에 나선다.

이 밖에 연구성과가 뛰어난 연구자가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기술로 보상 비율을 현행 50%에서 60% 이상으로 상향해 연구자 보상을 강화하고, 스타과학자 육성을 위해 우수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연구자에게 사업화 R&D를 지원하는 등의 방안도 담겼다.

한편 이 장관은 이날 ‘글로벌 R&D 추진전략’도 함께 발표했다. 전략은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 대응해 세계 최고를 지향하도록 글로벌 R&D 전략성을 강화하고, 국내외 우수 연구자가 글로벌 연구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3년 간 글로벌 R&D에 5조 4000억 원 이상을 투입한다. 글로벌 R&D 투자 규모를 당초 전체 정부 R&D의 1.6% 수준에서 6~7%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국가전략기술 등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전략을 공동연구와 협력거점, 인력양성 등 주요 글로벌 R&D에 반영시킨다.

글로벌 R&D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주요 분야별로 ‘글로벌 R&D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발굴한다. 가령 이차전지 분야는 해당분야 최첨단 연구소인 미국 아르곤연구소와 프로젝트를 꾸리고, 예비타당성 신속조사, 정부 연구개발 예산 우선 반영 검토 등을 추진한다. 총 11개 분야 프로젝트 후보를 도출할 예정으로 추후 과학기술자문회의를 통해 심의∙확정될 예정이다.

한·미·일을 중심으로 글로벌 R&D 사업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글로벌 R&D 협력 프로젝트도 신설한다. 아세안, 중동 등 다양한 국가와의 협력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해외 연구기관과의 원활한 협력을 위한 제도 개선도 시행된다. 우선 유연하게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사업 집행의 회계연도 이월을 허용한다. 그간 국가마다 상이한 예산 시스템 때문에 글로벌 R&D 수행에 걸림돌이 되어왔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또 글로벌 R&D 프로젝트가 적기에 추진될 수 있게 사업기간과 규모에 제한을 두지 않는 프로그램형 사업도 확대하기로 했다.

이 밖에 해외 우수기관과의 매칭 등 전주기 연구를 수행・지원하는 ‘글로벌 R&D 전략 거점센터’를 운영하고, 범부처 차원의 글로벌 R&D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에 ‘글로벌 R&D 특별위원회’를 신설하는 등의 전략을 세웠다.

과학계에서는 이번 윤석열 정부 연구개발 R&D 혁신방안과 글로벌 R&D 추진전략을 두고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전 소재 대학 교수는 “PBS 제도 개선, 연구시설‧장비 조달기간 단축 등 과학계 목소리가 일부 반영된 듯하다”면서도 “상피제 폐지 같은 방침은 정부가 R&D 삭감의 이유로 내세웠던 ‘카르텔’을 더 강화할 위험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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