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이 인플레 조장?…공포마케팅이 하는 거짓말

한겨레 2023. 11. 2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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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18일 제27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7)가 열린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기후운동가들이 화석연료 퇴출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사이먼 스틸ㅣ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장

지난 몇년간 계속된 인플레이션 속에서 전 세계 곳곳에서 생계비가 치솟았다. 그러자 이러한 위기를 틈타 “기후변화에 맞서는 행동은 감당키 힘든 일이며, 평범한 사람들의 이익에 반한다”는 공포스러운 수사를 퍼뜨리는 이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사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주장이다.

‘친환경’(Green)과 ‘빈곤’(Poor)을 대립시키는 담론은 분열을 조장하면서, 때로는 특정 집단의 근시안적이고 이익만 따지는 이해관계를 감추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는 에너지 안보와 기후재난에 대한 회복력을 갖추고, 최종적으로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내로 억제했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 수십억 인구를 한계 상황으로 내몬 생계비 폭등의 주요 원인은 석탄과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다. 빈번하게 요동치는 화석연료 가격은 교통비와 식료품비, 전기요금, 기본 생활필수품 가격 상승으로 귀결된다. 그러다 보니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국가 중에는 연료비 상승으로 인해 2022년 가계 지출이 전년보다 1000달러 이상 늘어나기도 했다.

미국 재무부와 인도준비은행, 유럽중앙은행(ECB) 등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이 커질수록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비용은 증가하고 경제성장은 둔화한다. 높은 에너지 가격은 기업의 수익성과 성장세에 지장을 준다. 또한 전 세계 시민들의 에너지 이용에 장애를 초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타격은 빈곤 계층의 몫이 된다.

올해는 12만5000년 만에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파괴적인 폭풍, 예측할 수 없는 홍수, 폭염, 가뭄은 이미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고, 전 세계 수억명의 생명과 생계에 큰 손실을 입혔다.

우리가 하루아침에 모든 화석연료를 퇴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많다. 예컨대 2022년 각국 정부는 화석연료 보조금으로 7조달러 넘게 지출했는데, 이는 세금이나 정부 차입으로 조달한 돈이다. 화석연료 보조금으로 쓰이지 않았다면, 저소득 계층의 실질소득을 보전하거나 개발도상국 부채를 줄이고 의료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쓰였을 자금이다. 어쩌면 재생에너지 및 전력망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빈곤완화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데 사용됐을 수도 있다. 각국 정부가 이러한 화석연료 보조금을 폐지한다면, 빈곤 계층을 지원하고 국가경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개최를 앞두고, 우리는 파리기후협약 이후 지금까지 진행된 각국의 기후행동을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협약 이행이 너무 느리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하지만, 더 튼튼한 경제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기후행동의 속도를 높일 수단이 다양하다는 사실도 명확해졌다.

수십억명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를 가진 행동이다. 이러한 행동에는 신규 화석연료 생산에 쏟아붓던 수십억달러를 재생에너지 투자로 전환하는 것도 포함된다. 정부는 불을 켤 에너지가 필요한 이들에게 청정 에너지원으로 생산한 전기를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지역사회에 투자할 재정적 여유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

각국 정부가 협력과 해법에 집중하겠다는 자세로 11월 말 두바이에서 열릴 COP28에 임한다면,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회의에서 전 세계 재생에너지 용량을 지금의 3배로 확대하고 에너지 효율 또한 2배로 높이기로 합의할 수 있다. 각국이 기후변화의 영향에 적응하는 것을 정책적 중심으로 삼아, 관련 재정을 2배로 늘릴 수도 있다. 더불어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 및 피해 기금을 현실화해, 기후정의를 실현해 갈 수도 있다. 재원 마련과 관련된 오랜 약속을 지키는 한편, 다음 단계 재원 마련의 윤곽을 그리는 것이다.

한번의 회의로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올해 회의에서 우리는 설정한 방향에 있는 미래를 예상하고, 2025년에는 국가별로 어떤 약속을 내놓을 수 있는지 그 밑그림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공포를 조장하는 이들의 말에 눈이 흐려지지 말고, 굳건한 의지로 행동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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