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기술 개발 몰입할 수 있게 … 우수 연구자엔 사업화 지원까지
해외기관 공동연구 지원 등
3년간 5조4천억 이상 투입
한미일 R&D프로젝트 신설
스타 과학자 보상비율 강화
지재권 보유자 R&D 지원
혁신적 연구 동료평가 허용
일각선 카르텔 위험성 지적
정부가 과학기술인의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를 우대하기 위한 제도 혁신에 나선다. 도전적 연구에 대해 실패를 용인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후속 과제 선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성공과 실패로 구분하는 평가등급을 폐지한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도 허용하기로 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윤석열 정부 연구개발(R&D)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이번 R&D 혁신 방안은 R&D에 맞지 않는 관리자 중심의 제도와 규제를 없애고 도전적·혁신적 연구가 우대받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제도 혁신과 기초·원천기술, 차세대 기술 중심의 투자로 전환하는 투자 혁신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안에 따르면 우선 도전적·혁신적 연구에 대해서는 성공과 실패를 구분 짓는 평가등급을 폐지한다. 그 대신 연구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기로 했다. 혁신적 R&D에 과감히 도전하고 실패하더라도 이를 통해 얻는 결과물을 다 같이 공유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장관은 "인력지도를 구축해 탁월하고 잠재력 있는 연구자를 선별·지원하는 새로운 지원 방식을 도입하겠다"며 "도전과 혁신을 견인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혁신안에서 연구자들의 가장 큰 환영을 받은 것은 연구시설 및 장비도입계약 제도를 손본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도전적 R&D에 필요한 최신의 고성능 연구시설 및 장비 도입에 120일이 소요됐다. 구시설이나 장비 구매를 수의계약 대상에 추가하도록 국가계약법 시행령을 개정해 기간을 50일로 줄일 예정이다. 한 과학계 관계자는 "적시에 빠르게 연구시설이나 장비를 도입해 필요한 연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그간 소요되는 시간이 길었다"고 말했다.
도전적 R&D에 대한 연구자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보상도 확대한다. 연구 성과가 뛰어난 연구자가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기술료 보상 비율을 현행 50%에서 60% 이상으로 상향한다. 스타 과학자를 육성하기 위해 우수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연구자에게 사업화 R&D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간 과학계에서 지적돼 온 '상피제'는 폐지한다. 상피제는 연구과제 신청자와 동일한 기관에 속하는 연구자의 평가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다. 이 때문에 과제 평가가 최고의 전문가에게 평가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상피제를 폐지하는 대신 평가위원과 평가 결과를 피평가자에게 공개해 투명성을 높이고, 평가위원에게 이해상충행위 금지 의무를 부과해 공정성을 확보할 계획이다.
소모적 과제의 수주 경쟁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이뤄진다. 대학이나 기업이 할 수 없는 대형 원천기술 개발에 몰입하도록 정부출연연구기관을 국가전략기술 등 국가 임무의 전진 기지인 '국가기술연구센터(NTC)' 중심 체계로 전환한다. NTC를 중심으로 여러 출연연이 함께 국가전략기술 개발에 나선다.
과학계에서는 이번 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 R&D 혁신 방안을 두고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전 소재 대학 한 교수는 "연구과제중심제도(PBS) 개선, 연구시설·장비 조달기간 단축 등 과학계 목소리가 일부 반영된 듯하다"면서도 "상피제 폐지 같은 방침은 정부가 R&D 삭감의 이유로 내세웠던 '카르텔'을 더 강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장관은 이날 '글로벌 R&D 추진 전략'도 함께 발표했다. 전략에는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 대응해 세계 최고를 지향하도록 글로벌 R&D 전략성을 강화하고 국내외 우수 연구자가 글로벌 연구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3년간 글로벌 R&D에 5조4000억원 이상을 투입한다. 글로벌 R&D 투자 규모를 당초 전체 정부 R&D의 1.6%에서 6~7%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국가전략기술 등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전략을 공동연구와 협력 거점, 인력 양성 등 주요 글로벌 R&D에 반영한다.
글로벌 R&D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주요 분야별로 '글로벌 R&D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발굴한다. 가령 2차전지 분야는 해당 분야 최첨단 연구소인 미국 아곤연구소와 프로젝트를 꾸리고 예비타당성 신속 조사, 정부 R&D 예산 우선 반영 검토 등을 추진한다. 총 11개 분야 프로젝트 후보를 도출할 예정으로 추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통해 심의·확정될 예정이다.
해외 연구기관과의 원활한 협력을 위한 제도 개선도 시행된다. 예산을 유연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사업 집행의 회계연도 이월을 허용하기로 했다. 한·미·일을 중심으로 글로벌 R&D 사업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글로벌 R&D 협력 프로젝트도 신설할 방침이다. 이 밖에 해외 우수기관과의 매칭 등 전 주기 연구를 수행·지원하는 '글로벌 R&D 전략 거점센터'를 운영하고, 범부처 차원에서 글로벌 R&D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에 '글로벌 R&D 특별위원회'를 신설하는 전략 등을 세웠다.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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