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허경영과 불로유
윤씨는 등산 모임에서 만난 친구로부터 개벽교를 알게 된다. 친구는 “개벽교 영상을 보고 따라 한 뒤 암이 나았다”고 했다. 윤씨는 친구가 보내준 동영상 속 남성을 따라 해보기로 한다. 아침에 일어나 조상의 공덕에 감사한 후 3분 뒤에 숯과 소금을 먹는 생활을 반복한다. 개벽교 모임에 나가게 된 뒤부터 윤씨는 변해간다. 결국 윤씨는 숯가루가 위와 장에 달라붙고, 소금을 너무 많이 먹어서 신장이 망가지는 지경에 이른다. 정보라 작가의 단편소설 ‘개벽’ 줄거리다.
사이비 종교나 집단생활 피해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끊이지 않는다. 신빙성이 없더라도 철석같이 믿는 이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교주에게 가스라이팅(세뇌)당해 효과를 알 수 없는 만병통치약을 먹고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다반사다.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가 운영하는 종교시설단지인 ‘하늘궁’에 입소한 8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지난 23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하늘궁에서 제공한 우유를 마셨다”는 119 신고가 접수됐다. 허 대표의 얼굴사진 스티커가 붙어 있는 이 우유는 하늘궁에선 ‘불로유’로 불린다. 이 남성은 사망 이틀 전 아내와 함께 하늘궁에 입소했다. 하늘궁 측은 유튜브 등을 통해 ‘이 우유는 불로화(不老化)가 된 것으로 썩지 않고, 만병에 효과가 있다’는 취지로 홍보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살 수 있는 우유에 스티커를 붙이고, ‘허경영’이라고 외치면 만병을 고칠 수 있는 불로유가 된다는 것이다. 하늘궁 측은 27일 “고인은 하늘궁 측으로부터 불로유를 구매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문을 냈다. 경찰이 사망자의 부검을 의뢰하고 현장서 수거한 우유의 성분 조사를 하고 있으니 결과는 지켜볼 일이다.
하늘궁은 이전에도 도마에 올랐다. 2021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허 대표에게 전 재산을 갖다 바친 서민들의 피해 사례를 소개한 적 있다. 그런데도 허 대표는 세인들에겐 코믹한 정치인 이미지가 강하다. 과거 공중부양술을 주장해 허언증 시비를 일으켰고, 2007년 대선 때 박근혜 결혼·교제설을 퍼뜨려서 명예훼손·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또 불로유로 입방아에 올라 ‘허경영식 허풍’의 끝이 어딜지 이목이 쏠린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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