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나를 찾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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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년 전 케이블 방송의 음악 전문 채널에서 한 래퍼의 등장으로 '부캐'는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부차적, 부수적이라는 뜻의 접두사 부(副)와 캐릭터가 더해진 부캐릭터의 줄임말로 본래의 자신이 아니 또 다른 캐릭터를 의미한다.
'부캐'는 단순한 문화적 트렌드를 넘어 유의미한 사회적 현상이자 새로운 산업의 키워드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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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년 전 케이블 방송의 음악 전문 채널에서 한 래퍼의 등장으로 '부캐'는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부차적, 부수적이라는 뜻의 접두사 부(副)와 캐릭터가 더해진 부캐릭터의 줄임말로 본래의 자신이 아니 또 다른 캐릭터를 의미한다. 일찍이 독립문화나 키치 트렌드에서는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가 공공연하게 등장했으나 국내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부캐는 하나의 열풍이 돼 연예계는 물론 미술계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작가 임성희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애니메이션 '아케인'에서 빌려와 성(姓)인 '임'을 더해 아케임으로 명명했다. 즉 그녀의 부캐인데 흔히 부캐들이 그러하듯 본캐를 모른 척하고 별개의 인물인 척하지 않는 것이 흥미롭다. 사실 아케임과 임성희의 관계는 이스터에그(Easter Egg:게임 속 숨겨놓은 재미)에 가깝다. 부활절 토끼가 숨겨 놓은 달걀처럼 화면 곳곳에 텍스트, 도형, 선 등으로 이 멀티 페르소나들은 존재를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일상 속 경험을 소재로 삼는 것도 동일하다. 그의 작업실에 가보면 1000원짜리 보석스티커부터 빈티지 샤넬 단추까지 늘어놓은 채로 늘 무언가 만들고 있다. 아이패드로 그려 오래된 악보에 수십 장 출력한 그림은 복제본은 아닌지 생경하다. 작가가 직접 만든 작업물과 싸구려 레디메이드, 수개월에 걸쳐 그린 회화와 복제본,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가 뒤섞인 이 모순의 현장은 화이트 큐브와 미술의 정의를 뒤엎고 오히려 그 권위를 전복함으로써 오늘날 미술의 기능을 되묻는다. 일상의 사물을 끌어들여 미술 매체를 전위하고 유머를 언어 삼아 미술, 그리고 사회 전반의 위계와 질서를 해체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작가 정철규가 기획한 전시'구름이 되었다가, 진주가 되었다가'에는 소설과 영화 속 인물들과 만난 다섯 명의 작가가 '사랑'에 대한 단상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전시장 벽면과 리플렛에 작가들의 이름은 각각 ㅇㅇㅇ ㅇㅇ, ㅇㅇㅇㅇ ㅇㅇㅇ, ㅇㅇㅇ ㅇㅇㅇ ㅇㅇㅇ, ㅇㅇㅇ ㅇㅇㅇ, ㅇㅇㅇㅇㅇ ㅇㅇㅇ ㅇㅇㅇ공란으로 기재돼 있다. 공란으로 남은 다섯 명의 이름은 곧 정철규 자신이자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가 경험하고, 느낀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호명되는 이름이 아닌 내 속의 또 다른 내가 되어 들여다보는 사랑,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춰진 수많은 감정과 서사의 만남을 위한 유도라고 설명한다. 전시 타이틀의 '구름'과 '진주'는 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즉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을 통해 맺어진 관계와 그 속에서 현존하는 자아 대신 담시 다른 인물이 돼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다.
'부캐'는 단순한 문화적 트렌드를 넘어 유의미한 사회적 현상이자 새로운 산업의 키워드라고 여겨진다. 이는 삶을 영위하는 데 하나의 형태에만 투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이 있으며 타인과 사회가 아닌 자기 내면에서 발현되는 모습으로 살아갈 자유가 있음에 대한 제언이 아닐까.
우리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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