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바이오 기업 대표로 인생 2막 시작한 정상원 진큐어 대표 | “게임과 신약, 비슷한 면 많아…바이오 기업 역량 충분”
어릴 적부터 생물학자를 꿈꿨다. 재수까지 해서 서울대 분자생물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 대학원까지 갔다. 전공 서적만 봐도 좋았다. 석사 과정을 밟는 중 실험실에서 문득 생각했다. ‘생활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유년시절부터 좋아했던 생물학은 그에게만 한정적이었다. 그래도 공부는 계속했다. 생물학도를 용감하게 만든 곳은 실험실이 아닌 중앙전산실. 당시 전산실은 전자 기기를 식히기 위해 여름에는 냉방 시설까지 갖춰져 있으니, 아무도 찾지 않는 그만의 도서관이었다. 어느 날 누군가 전산실에 들어와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공부도, 일도 아닌 게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오랜 기간 취미로 게임을 해왔던 터라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욕구가 샘솟았다. 대학원을 그만두고 컴퓨터공학과로 편입하려 했다. 학과장까지 만나 담판을 지었는데, “또 대학이냐”고 아버지에게 핀잔을 들은 뒤 원치 않는 삼성그룹 공채 시험을 봤다. 그렇게 1994년 삼성SDS에 입사했다. 삼성SDS에서 컴퓨터를 만질 수 있게 됐다는 기쁨도 잠시였다. 전공 때문인지 맡는 업무 대부분이 병원 프로젝트였다. 정상원 진큐어 대표는 “대학 시절과 마찬가지로 재미가 없었다”며 “입사 교육받으며 만난 친구와 함께 사내에서 열리는 사내벤처 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야심 차게 온라인 게임 회사 창업 제안서를 냈지만, 고배를 마셨다. 사내에서 창업까지 고민하자, 회사 일이 더 하기 싫어졌다. 2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사표를 던졌다. 평소 취미로 했던 게임을 만들기 위해 회사를 차렸다. 돈도 지식도 없었다. 회사를 지속해야 하니 기업들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며 버티다가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를 만났다. 그렇게 게임 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넥슨은 PC 온라인 게임을 개발 중이었다. 그렇게 세계 최초 PC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가 탄생했다. 정 대표는 이를 시작으로 ‘어둠의 전설’ ‘택티컬커맨더스’ 등을 개발해 2001년 넥슨 대표까지 오른 뒤 2005년 네오위즈로 자리를 옮겨 축구 게임을 평정한 ‘피파 온라인’을 내놓는다. 이후 2014년 넥슨코리아 부사장으로 친정에 복귀한 뒤 2019년 게임 업계에서 은퇴했다. 정 대표는 “넥슨은 청춘을 다 넣은 회사”라고 했다.
정 대표의 인생 2막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됐다. 중도 하차한 대학원에서 만난 부인으로부터 대학에서 진행한 실험 결과를 가져와 키워보고 싶다는 얘기를 들으면서였다. 처음에는 지원 역할만 하려고 했지만, 다시 전공 공부를 시작하다 보니 가능성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정 대표는 “게임과 신약 개발은 비슷한 면이 있다”며 “게임이 세계에서 성공 신화를 써 내려 온 것처럼 바이오 기업도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약 30년 동안 묻어둔 전공을 되찾아 인색 2막을 시작한 정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어릴 적부터 게임을 취미로 했다. 우연히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를 만나 게임 업계에서 일을 시작했다. 넥슨 초창기 바람의 나라 출시를 시작으로 여러 게임을 개발했고, 2001년에는 넥슨코리아 대표도 맡았다. 2004년 넥슨을 떠나 네오위즈라는 회사로 옮겨 피파 온라인도 만들었다. 여기서 게임 개발을 하다가 새로 게임 회사를 창업했는데, 넥슨이 인수하면서 자연스레 넥슨에 다시 옮겨갔다. 넥슨은 청춘이 다 들어간 회사다.”
게임 업계에 오래 있었지만, 전공이 분자생물학이다.
“생물학을 좋아해 분자생물학과에 갔다. 재수까지 해서 같은 과 시험을 쳐서 들어갔다. 그만큼 좋아했다. 실험실에서 실험하고, 책만 봐도 재밌었다. 그러던 중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자의 길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기초과학의 현실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더 재미없었다. 아버지께 석사를 그만두고 컴퓨터공학과로 편입하겠다고 했다. 학과장까지 만나서 편입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는데, 아버지가 반대하며 삼성 입사 시험을 보라고 했다. 시험을 봤는데 덜컥 삼성SDS에 합격했다.”
본격적으로 게임 업계에 몸담게 된 계기는.
“삼성SDS에 사내벤처 대회가 있었다. 온라인 게임 업체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서를 냈지만, 떨어졌다. 회사를 만들려고 구상까지 해보니 더 일이 하기 싫어졌다. 그리고 친구와 창업해 기업 홈페이지 만들어 주는 것으로 밥벌이를 했다. 그러다 한국프로야구(KBO) 중계 서버를 만드는 사업에 지원해 마지막에 넥슨과 맞붙어서 떨어졌다. 그런데 김정주 대표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다. 우리가 냈던 제안서를 보고 좋게 평가한 것이다. 최종 선정은 넥슨이 됐지만, 실제 업무는 우리가 도맡았다. 당시에는 넥슨이 어떤 회사인지도 몰랐는데 게임 회사라는 것을 알고, 김 대표의 이직 제안을 받고 합류했다.”
취미로 해왔던 게임을 일로 할 수 있다니. 흔히 말하는 ‘성덕(성공한 덕후)’ 아닌가.
“넥슨도 처음에는 2~3년 동안 버는 돈이 없었다. 첫 게임을 출시하며 한 달 300만원을 벌어 회사 직원들이 회식비를 벌었다고 자조성 발언을 할 정도였다. 적자가 누적되면서 주변에서 ‘게임을 왜 하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러다 인터넷 시대가 왔고, PC방이 생겨났다. PC 통신 게임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전환한 것이다. 넥슨도 본격적으로 성장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회사가 급속도로 성장하며 내부에서 상장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초창기 멤버였던 나에게도 일부 비난의 화살이 왔고, 2004년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2005년 네오위즈로 옮겨 피파 온라인을 만들었다. 네오위즈 부사장을 역임하고 로크업(의무 보유) 기간이 끝난 후 새로 게임 회사를 하나 창업했는데, 이곳을 넥슨이 인수했다. 자연스레 친정으로 돌아왔다가 2019년 게임 업계를 떠났다.”
현재 대표로 있는 진큐어로 대학 전공을 찾았다.
“2021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거의 30년 만에 전공을 찾은 셈이다. 논문 나온 것 여러 편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다시 공부하고 있다. 같은 과를 나온 주변 사람을 찾아 오랜만에 인사하기도 했다. 제약·바이오 기업부터 학계, 창업까지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 있었다.”
진큐어는 어떤 회사인가.
“급성·퇴행성 뇌 질환을 타깃으로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아연은 신체에서 제한적 역할을 하지 않지만, 뇌의 경우 다르다. 아연 조절이 안 되면서 생기는 뇌졸중 같은 허혈성 뇌 손상을 주로 연구해 약물을 개발 중이다. 뇌에 아연 공급이 떨어지면 알츠하이머, 파킨슨, 루게릭병 같은 퇴행성 질환도 온다. 이 중 루게릭병을 타깃으로 한 신약 후보 물질은 국가신약개발재단이 올해 1차로 선정한 과제에 포함됐다. 주사제 형태로 루게릭병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게임과 신약 개발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공통점도 있을 것 같다.
“게임은 100개 중 1개, 약은 1000개 중 1개가 성공할까 말까다. 이렇게 성공하면 게임은 2~3년, 약은 20~30년 동안 캐시카우(수익 창출원) 역할을 한다. 기술이전·수출이나 인수합병(M&A)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게임 업계와 비교해 M&A에 소극적이다. 게임사들은 가능성만 가지고 규모가 작아도 공격적으로 나선다.
반면 국내 제약·바이오 회사들은 이런 성공 경험이 없어서 소극적이다. 미국 화이자의 경우 공격적으로 나서지 않나.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다년간의 연구개발(R&D) 투자로 신약 개발 역량을 많이 끌어올린 것은 맞지만, 벤처 거품으로 너무 빠르게 샴페인을 터뜨렸다. 오히려 너무 빠르게 올랐다가 저평가된 뒤 무너지고 있는 상태다.”
진큐어에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게임사가 흔히 말하는 ‘애들 코 묻은 돈’으로 성장했지만, 온라인 게임을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 성과로 20조원이 넘는 회사로 자리 잡았고 아직도 콘텐츠 수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바이오도 기초체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훌륭한 연구 인력을 배출하며 특유의 끈기로 연구 업적을 쌓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바이오는 급하게 상장하거나 외부 투자 입김으로 좌지우지돼서는 안 된다. 돈이나 상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약을 개발하면 수익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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