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호의 투자 프레임 <13>] 부동산, 이연된 위험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2023. 11. 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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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전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한화증권 투자분석 팀장,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저자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파가 2014년 발간한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은 당시 유럽의 부채 위기와 맞물려 큰 화제가 된 책이다. 경제 호황은 엄청난 빚 때문이고, 결국 그 빚은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부채의 역설을 담았다. 과도한 부채는 기업과 가계를 압박하고, 결국 위기로 치닫는 경우가 빈번하다. 정책 당국은 부채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려 하지만, 매번 또 다른 상황에 부딪힌다. 코로나19 충격과 같은 예상치 못한 위험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부채 주도 성장의 부작용을 알고 있지만, 위기가 오면 부채에 의존한 경기부양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경제성장보다 부채가 더 빨리 늘어난 뒤에는 예외 없이 자산 시장의 충격이 뒤따랐다. 현재 시기도 그러하다. 부채의 역습이 시작됐고, 자산 시장의 균열이 뒤따르고 있다.

물론 주기적으로 도래하는 부채 위기로 인해 한국 경제는 수렁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다시 부채를 쌓는 시기가 되면 자산 시장은 오히려 한 단계 더 올라섰다. 그러나 당장은 ‘부채 증가율 감소기’다. 남의 돈을 쓰기 쉬울 때는 주가가 상승하고, 남의 돈을 갚아야 할 때가 되면, 주가가 상단을 열기 힘들다. 과거 민간 부채 증가율이 감소기에 들어서면 코스피는 ‘박스피(박스권에 갇힌 코스피)’에 갇혔다. 최근 민간 부채 증가율의 정점을 확인했다. 지난 두 번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2024년 코스피도 박스피에 들어설 것으로 판단한다.

前 정부 정책이 지배하는 부동산

부채 증가율 감소기에 주식시장이 박스권에 머무는 반면, 부동산 시장은 달랐다. 2000년대 전반(A)에는 부동산이 상승했지만, 2010년대 전반(B)에는 하락했다. 두 기간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A 구간은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요구 사항을 강제적으로 이행하는 시기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잠시 시행됐던, 분양가 전면 자율화 정책이 나왔다. 부동산 대출 한도도 풀어줬고, 취득세 감면 등의 세제 혜택도 시행됐다. 그 결과, 2002년 한 해에만 서울 아파트 가격은 33.8% 상승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부터 급하게 정책이 수정됐지만, 이때 풀린 부동산 시장 열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내내 식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버블 세븐 규제’로 대표되는 수요 억제 정책을 단행했고,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로 무리한 투자를 막는 금융정책도 실행했다. 임기 내내 규제 정책을 일괄적으로 실시했지만, 이전 정부인 김대중 전 대통령 부동산 정책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터지는 구간에서 집권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부동산 완화 정책을 내놓았지만 부동산 시장은 타오르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중 시행했던 각종 규제 정책이 효과를 나타낸 시기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침체해 있던 부동산 시장이 강하게 돌아선 해는 완화적 정책이 쌓이고, 또 지속적인 규제 완화 정책이 추진된 박근혜 대통령 시기였다. 2014년 강남 재건축 전매 허용은 2015년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이뤄진 아파트 가격 급등의 촉매제였다.

과거 부동산 정책과 부동산 가격 사례에서 얻는 투자 아이디어는 명확하다. 지금이 아닌 직전 정부의 정책이 상당 기간 부동산 시장을 지배한다는 추론이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했던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을 잡기 위해 역대 어느 정부보다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지만, 결과는 부동산 급등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내놓은 정책으로 불붙은 부동산 투기를 잡아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나온 전매 금지, 세제 부담, 대출 억제 정책들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여전하다. A와 B 구간 중에서 지금은 노무현 정부의 규제 정책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줬던 이명박 전 대통령 시기에 가깝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규제 정책을 완화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아직 투자자들이 체감하기 힘들다. 취득세 중과세 폐지와 한시적 양도세 비과세 정도의 강한 정책이 나오기 전까지 부동산 경기가 강하게 살아나기는 힘들다는 판단이다.

10월 13일 e편한세상 서울 강동 프레스티지원 견본 주택에서 분양 수요자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조선비즈 DB

부채의 반격

필자의 우려 섞인 시선과 달리 아파트 거래량이 다소 늘어나자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취임 후 부동산 친화적인 일부 정책을 내놓자 기다리던 투자자들이 행동에 나선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정책 효과가 소멸하고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더 올라섰다. 투기 수요가 아닌 실거주 목적의 소비도 소진됐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은 정책과 금리에 비켜 있는 소위 ‘돈 있는 사람이 살 집을 사는’ 실수요인데, 이는 다주택 중과세로 묶여 있다. 미약한 수요 회복이라도 지속되면 좋겠지만, 이것마저도 정책 효과 소멸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이렇듯 부동산 거래량이 최악의 국면을 지나가고, 부동산 가격도 바닥을 잡아가는 수준이다. 일부 선호 지역의 강세가 있지만, 부동산 시장 전반에 온기가 확산하고 있지는 않다. 이유는 자명하다. 고금리 환경이 여전하고, 최소한 내년 중반까지 금리가 의미 있게 내려올 가능성은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민간 부채 증가율 감속 구간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레고랜드 사태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 시장 자금 경색과 더불어 새마을금고와 GS건설 인천 검단 붕괴 사태를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부동산 시장이 우리에게 경고 시그널을 줘 왔음을 인지해야 한다. 바로 금리로 인한 부채의 반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건자재 시장이 안정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는 금리 하락으로 인한 수요의 회복 또는 건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분양가 하락이 필요하다. 더욱이 PF 경색으로 신규 착공 감소 기조가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착공 감소에 따른 건자재 수요 감소로 결국 건자재 가격은 지금 수준을 유지하기는 힘들다고 판단된다. 수요 감소에 따른 공사비 하락은 2024년 하반기로 예상되며, 원가가 개선되면 판가, 즉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지 않더라도 서둘러 분양 전환을 하는 사이트들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신축 아파트 공급이 합리적인 가격 수준으로 시장에 유입되면 기존 구축 아파트 가격은 상승에 있어 캡이 씌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분양가가 적절한 수준으로 내려와야 반전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자. 부채를 지나치게 쌓아 왔다.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에는 만기가 있고 차환이 돼야 부채를 유지할 수 있다. 고금리의 장기화, 일명 ‘H4L(higher for longer)’ 환경에서 기업이든 가계든 부채를 늘리기 쉽지 않다. 부채 조정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될지, 생채기를 내며 진행될지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 정책 당국은 안전하게 부채 조정기를 관리하려 할 것이다. 신용 사이클의 현 위치로 볼 때, 금융 불안정성이 여전히 확대되는 구간이다. 부채 과다로 인한 위험 확산 구간에서 부동산 시장 정책도 시장 친화적으로만 나가기 힘들다. 가계든 기업이든 일단 부채를 줄여야 한다. 투자는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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