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계속기업

2023. 11. 2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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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위의 저 사진이 낯설다.

그래서 기업회계에서 재무제표를 이용할 때, 소위 '계속기업의 가정'(기업의 영업이 차기 이후에도 지속될 것인지에 대한 가정)을 따져본다.

계속기업은 현재의 이익을 위해 미래의 이익을 희생하지 않으며, 기업의 이익을 위해 공동의 이익을 희생하지 않는다.

백 세 시대의 경영자에게 어울리는 일터는, 백 년 동안 지속가능한 계속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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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위의 저 사진이 낯설다. 지금의 얼굴에서 저 사진만큼 화사한 얼굴을 다시 찾아낼 자신이 없어서, 저 낯선 사진을 몇 년째 계속 쓰고 있다. 쏜살같은 시간이 더 이상 달갑지 않다. 건강하라는 인사를 부쩍 많이 듣게 된다. 백 세 시대를 절반밖에 못 살았는데, 벌써 시간이 묵직하다.

자연인만 수명을 세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도 수명을 센다. 한국무역협회가 올 초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기업의 기대 수명은 12년 정도이다. 자연인이 백 세를 사는 시대에도, 법인에 생명 연장의 꿈은 요원하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의 세계에서 법인의 시간은 훨씬 빠르게 흐른다. 그래서 기업회계에서 재무제표를 이용할 때, 소위 '계속기업의 가정'(기업의 영업이 차기 이후에도 지속될 것인지에 대한 가정)을 따져본다. 조만간 사업이 중단될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계속기업들의 재무제표와 동일하게 비교할 수 없다. 계속기업 여부를 따져보면서, 기업의 재정 상황이 정상 범주에 속하는지 검진을 받아보는 셈이다.

한계기업들은 오늘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해 내일의 가치를 희생하기도 한다. 당장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필요한 연구개발 지출을 줄이면, 성장동력이 훼손된다. 과다하게 판매가격을 할인해서 제품 판매량을 늘리면, 당기의 매출 목표는 맞출 수 있을지 몰라도 제품의 장기적인 경쟁력이 훼손된다. 오늘만 살면 내일은 없다. 때로는 내일을 보전하기 위해 오늘을 기꺼이 견뎌야 한다. 계속기업은 내일을 기획한다.

내일을 기획하는 계속기업의 의사결정은 필연적으로 사회적이다. 시장 참여자들의 사회적 수명이 길어진 만큼, 기업이 어떤 의사결정들을 내리는지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하고 개입할 수 있다. 계속기업에는 환경의 보전과 사회의 번영, 그리고 기업의 작동 방식인 지배구조의 선진화에 대한 과제가 주어진다. 인류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협력하고, 공존하며 번영하는 사회를 위해 기업 조직에서부터 인권과 노동, 평화의 가치를 확립하고 존중하며, 위탁받은 재무적 자원과 비재무적 자원에 대한 수탁 책임을 엄수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백 세를 살아야 하는 자연인들에게 이러한 요구는 존엄한 생존과 번영을 위한 것이다. 계속기업은 이 같은 요구를 암묵적 계약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적극적으로 부응한다.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으면, 기업활동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계속기업은 사회와 화목한다.

시장의 호흡이 길어진 만큼, 계속기업의 호흡도 길어져야 한다. 계속기업은 현재의 이익을 위해 미래의 이익을 희생하지 않으며, 기업의 이익을 위해 공동의 이익을 희생하지 않는다. 백 세 시대의 경영자에게 어울리는 일터는, 백 년 동안 지속가능한 계속기업이다. 계속기업이 창출하는 재무적·사회적 가치를 통해 개인과 조직과 사회가 상생한다. 우리는 경영자, 투자자, 소비자, 공급자, 노동자들로 백 년을 함께 살면서 계속기업이 견인한 이 모든 진보를 공유하고 증언할 것이다. 계속기업과 지속가능 사회는 서로의 동력이다.

[이우종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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