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오 칼럼] 전기료가 탈탄소 기금이라면
한국인 기후 위기 민감도 최상위권인데
화석에너지 의존 과도 ‘기후 악당’ 오명
전기료 개편해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 내야
한국인의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민감도는 세계 최상위권이다. 미국 싱크탱크 퓨리서치가 올해 “세계적 기후변화가 자국에 주요한 위협인가”라는 설문을 나라별로 조사했다. 미국은 “그렇다”는 응답이 54%로 주요국 중 가장 낮았다. 한국은 82%로 일본 이탈리아와 함께 가장 높은 국가에 속했다. 하지만 가정용 전기요금(2022년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헝가리 튀르키예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저렴하다. 한국은 메가와트시(㎿h)당 106.8달러로 OECD 평균인 196.1달러의 54% 수준이다. 산업용 전기료도 95.3달러로 OECD 평균(144.7달러)의 66% 수준이다.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민감도와 전기료를 나라별로 비교한 것은 전기료가 기후변화 원인인 탄소 발생량을 줄일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고려대 미래성장연구원이 개최한 ‘에너지 안보시대, 한국의 기후테크 산업 활성화 전략’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날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모두 탄소 감축은 점점 더 산업경쟁력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현재 전기요금이 탄소 감축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직도 ‘전기세’라는 말이 통용되듯이, 우리 사회에서 전기요금은 세금처럼 일방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란 인식이 강하다. 물가 당국도 전기료는 쌀수록 경제에 유익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전기요금이 산업 정책과 무관한 정치적 고려로 결정되는 구조를 에너지 정책 전문가는 탈탄소 산업 발전을 막는 ‘통곡의 벽’이라고 표현한다.
전 세계가 탄소배출 제로(0)를 목표로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기 위해 이 분야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그 결과 관련 산업 혁신 성장과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 하락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한국도 이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관련 투자가 활발해져야 하는데, 값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전기료 결정 체계에 발이 묶여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
이런 화석연료 중독의 가장 효율적 치료제가 바로 전기료이다. 화석연료에 탄소세를 부여해 가격을 올리면 수요가 줄어들고, 그렇게 걷은 탄소세를 재생에너지 개발에 투자하면 재생에너지 발전가격이 낮아지며 수요가 늘어나 결국 탄소 발생량이 줄어든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기후변화 대책을 찾기 힘들다.
이런 시스템을 갖추려면 값싼 화석연료 가격에도 못 미치는 전기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전기료 인상에 대한 국민의 저항감과 자칫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정치권의 두려움이다. 현 정부 들어 이미 지난해 4월 이후 5차례 전기료를 인상했다. 내년부터 굵직굵직한 선거가 이어지는데 계속 전기료를 인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은 전기료 등 에너지 가격을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에너지규제위원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미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은 이런 위원회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비용을 전기료에 반영한다.
선진국이 적극적으로 에너지 전환에 나서는 이유는 환경 목표만이 아니다. 온실가스 감축 기술과 기후변화 대응에 필요한 신사업 모델을 뜻하는 ‘기후테크’ 산업이 강력한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기후테크 산업 관련 투자는 2021년 기준 537억 달러로 6년 전에 비해 8배 성장했고, 2050년까지 전 세계 기후테크 시장 규모는 45조~60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인의 기후위기에 대한 높은 민감도는 한국이 에너지 전환과 기후테크 경쟁에서도 앞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전기료가 세금이 아니라 ‘탈탄소 기금’이라는 점을 설득하고, 그 추진을 투명하게 이끌 제도적 정비가 이뤄진다면 기후위기는 한국 경제 재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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