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 잠식한 사회에 다정한 위로 건넸죠"
선한 인간도 악행 범하는 세상
폭력은 계속해서 전염되지만
대안은 '그럼에도' 손 내미는 것
"인간성 천착은 문학의 책무"
올해 이효석문학상 대상作 등
따듯한 통찰 소설 7편 수록
뛰어난 사실주의 소설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준다. 현실을 반영한 소설의 세계 안에서 현상의 표면만 다루지 않고 이면에 자리한 인간의 본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안보윤 작가(사진)의 신작 소설집 '밤은 내가 가질게'(문학동네)는 한국 사회의 이중성과 폭력성을 선명히 그리면서도 인간에 대한 근원적 희망을 포착한다.
소설집에 수록된 '애도의 방식'(2023 이효석문학상 대상 수상작) 등 7개의 단편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다룬다. 사이비 종교('어떤 진심'), 데이트폭력('완전한 사과'), 아동학대('밤은 내가 가질게')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유려한 문장과 세심하게 설계된 구조는 작품을 부담 없이 읽히게 한다.
소설은 선인도 악인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 주목한다. 죽은 아들이 저지른 학교폭력의 피해자를 찾아가는 엄마, 스토킹 피해자에게 용서를 종용하는 경찰, 타인의 불행을 무심코 가십 거리로 소비하는 이웃 등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드러낸다.
폭력과 착취의 피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를 낳기도 한다. 사이비 종교에 세뇌된 신자는 타인을 구원한다는 선의를 가진 채 전도에 힘쓰고, 평생 학대를 받으며 성장한 여자는 엄마가 이웃 아이들을 똑같이 학대하는 모습을 보고도 엄마에게 충실히 협력한다.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진심을 다해서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모습이다.
일부 단편들에 동일한 인물이 등장하며 연작의 형태를 취하는 방식은 사건의 비극성을 강화한다. 앞선 소설에서 불행을 겪은 인물들은 뒤이은 작품에서 또 다른 폭력에 당하고, 때로는 상처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안보윤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하나의 단편이 끝나면 인물의 삶이 해결된 것처럼, 그 사람의 삶이 계속 비극인 것처럼 느껴지는 게 아쉬웠다"며 "인간의 삶이 계속된다는 것, 한편의 소설로 못 다한 얘기를 연속성을 가지고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보윤의 소설은 현실을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다정한 말을 건네고 싶을 때 소설을 쓴다'('작가의 말')는 고백처럼 안보윤은 폭력과 착취가 가득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현실의 고발에 머무는 소설은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반향을 일으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보윤은 "굳이 문학을 통해 보여주지 않아도 폭력은 이미 우리 사회에 노골적으로 자리잡고 개인의 삶을 잠식하고 있다"며 "폭력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넘어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정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고 밝혔다.
선한 사람도 악을 저지르게 되는 사회에서 소설이 그리는 대안은 '그럼에도'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용기, 선한 마음을 가져서 착취받고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포용이다. 소설집의 마지막 단편이자 표제작인 '밤은 내가 가질게'에서 주인공이 학대받은 개를 입양하며 스스로 다짐하듯 개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은 소설집의 주제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안보윤은 "상처를 경험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다정한 말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억눌리고 피폐돼 많은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 할 만한, 정말 필요한 말을 찾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소재에 함몰된 일부 한국 소설들과 달리 안보윤의 소설이 인간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것은 그가 인간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이어왔기 때문이다. 설익은 정의감은 악에 가까운 결과를 낳는다는 것, 스스로 선행이라고 믿는 행위가 자아도취이자 약자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쓰이기 힘들다. 안보윤은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소설가로서 무책임한 태도"라며 "타인에 대해 고민하고, 그들과 가까이 갈 수 없다면 지금 나와의 거리라도 재보려 한다"고 말했다.
폭력이 가득한 세계를 우리가 견뎌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집의 한 단편에는 "네가 선을 가지면 저쪽이 악을 가져. 네가 만만하고 짓밟기 좋은 선인이 되면 저쪽은 자기가 제멋대로 굴어도 되는 줄 안다고"라는 말이 나온다. 소설집을 다 읽고 나면 정반대의 생각이 떠오른다. 한쪽이 악을 가지면 다른 쪽은 선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타인의 악을 보면 내 안에 잠자던 선한 마음이 깨어나 상대의 악을 벌충하는 것이 아닐까.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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