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김치에 수육 둘둘 말아 한입에 쑥~. 이게 세상살이지! [왜냐면]

한겨레 2023. 11. 2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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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 60대·서울시 도봉구

 해마다 이맘때면 시골이든, 서울이든 김장을 하느라 분주했다. 특히 시골이 고향인 서울 사람들은 고향집에 내려가 김장하는 게 겨울을 나기 전 큰일이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달 전쯤 김장 날짜를 잡아 형제자매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장모님은 자식들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즐거워하신다. 김장 날은 겨우내 먹을 김치를 담그는 것 말고도,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며, 서로의 안부와 건강을 묻는 ‘사랑이 꽃피는 날’의 의미가 더해지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일주일 전 막내 처제가 시골집에 먼저 내려갔다. 배추 뽑고, 다듬고, 절이고, 씻는 일은 이제 연로하신 부모님에게 맡겨두기엔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 막내 처제 뿐 아니라 근처에 사는 처남 내외까지 합류해 일손을 보태면 김장 준비는 거의 완벽하게 이뤄진다. 하지만 김장하는 날 달랑 하루 배추를 양념에 비벼 통에 담아 서울로 싣고 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맏사위인 나는 항상 김장 전날인 금요일 저녁 처가로 내려간다.

처가에서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본격적으로 김장 채비를 한다. 먼저 큰 통에 양념에 온갖 야채 등을 적당량 넣어 아주 큰 주걱으로 섞어주는데, 이 작업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만만치 않다. 자칫하면 허리를 다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년 해오는 일이라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의 일이 됐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김장을 함께 할 형제자매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모두 다 정겨운 모습들이다. 입가에는 그저 미소가 그윽할 뿐이다. 양념 버무리는 작업을 얼추 마치면 본격적으로 김장에 들어가기 전 대충 된장국 한그릇으로 아침식사를 뚝딱 해치운다.

아침식사를 얼른 마치고 나면, 김장배추를 양념에 버무릴 널따란 상을 마당에 펴고 방석을 준비한다. 또 가정별로 가져갈 김치 통을 구분해서 차례로 줄 세워 둔다. 나와 큰처남은 절인 배추 꽁다리를 다듬어 양념을 버무릴 상으로 옮겨 주는 일을 한다. 아내와 처제들은 그렇게 옮겨진 배추포기에 양념을 고루고루 버무려주며 김장을 담근다. 김장 버무리는 작업을 하는 동안 다른 한팀은 주방에서 돼지고기 수육을 맛있게 삶고 있다. 시금털털한 막걸리 한잔에 갓 버무려진 김장김치와 돼지고기 수육을 둘둘 말아 한입에 쑥 넣어주는데,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최고의 맛이다. 이런 게 세상살이 아닐까? 인생 뭐 별거 있어? 찬탄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배추를 버무리는 김장담그기가 마무리되고 주변 정돈을 마치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점심 역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밥 한공기에 갓 버무린 김장김치와 돼지고기 수육이다. 다른 반찬이 필요 없고, 그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다. 그렇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면, 이제 식구들과 과일을 깎아 먹으며 오손도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형제자매들이 모여 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사이, 장모님은 문간방에 들어 앉아 막내 처제와 함께 자녀들에게 나눠줄 들기름, 참기름을 병마다 담는다. 이건 첫째 딸네, 이건 아들네, 이건 막내네…. 6남매 모두에게 아주 공평하게 고루 분배해주신다. 저 빈 소주병들은 언제 다 준비해두셨는지…. 부모님 마음이란 게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자녀들 얼굴을 보고, 또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아직은 당신이 살아계시기에 넉넉하진 않지만 고르게 들기름, 참기름을 병에 담아 나눠주면서, 거기에 사랑까지 듬뿍 담아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장모님이 김장 날을 기다리시는 이유 아니겠는가. 참기름, 들기름이 가득 채워진 병을 보노라면, 이런 게 부모님의 사랑이지, 고마워서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이제 당신 몸도 갈수록 불편해지시는데….

요즘 김장 담그는 집들이 많이 줄었다. 김치 소비량이 줄고 김치를 사서 먹는 경우가 늘고 있으니 말이다. 단순히 김장하는 모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사랑 공동체의 정겨운 모습들이 사라져 간다는 점에서 씁쓸함이 느껴진다. 김치는 사먹게 되더라도 식구들 모여 배추 몇포기만 버무리더라도 김장하는 즐거움과 웃음은 계속됐으면 하는데, 나만의 생각일까.

이제 나이가 들어 얼마 못사신다고 하면서도 해마다 김장 날을 챙기고 기다리시는 장모님, 장인어른이 더욱 건강하고 오래오래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이 드시면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해지셨음을 부쩍 느낀다. 앞으로 남은 생애를 더 기쁘고 즐겁게 사실 수 있도록 자주 찾아뵙고 곁에서 함께하고 싶다. 이런 내가 딸, 아들 결혼 시켜보니 부모 마음을 조금은 알 듯하지만, 나는 아직 먼 것 같다. 장모님 함자가 김 공자 순자이고, 장인어른 함자가 나 명자 조자이기에 두분 성함의 가운데 자를 따서 육남매가 합심해 약 30여년 전 ‘공명사랑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이렇게 사랑의 고리를 이어가고 있다.

“장인, 장모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우리와 함께 해주세요. 사랑공동체 공명사랑회 모두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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