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적 연구는 예타 면제, 국제 공동 연구 7%까지 늘린다
예산안 발표 3개월 지나서야 구체적인 방안 내놔
정부가 도전적 연구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1억원 미만 소규모 연구과제 수를 현재의 절반으로 줄이는 정부 연구개발(R&D)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그간 강조해왔던 국제 협력도 미국, 일본과 공동 출자금을 마련해 추진한다. 지난 8월 R&D 예산 삭감을 발표하고 3개월 만에 나온 R&D 혁신 방안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R&D 혁신 방안’과 ‘글로벌 R&D 추진전략’의 주요 내용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지난 8월 예산 배분 조정안을 발표한 이후 비효율을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 최고에 도전하는 혁신적 R&D를 육성하겠다”며 “연구제도 혁신을 통해 연구자 중심의 도전과 혁신을 견인하겠다”고 말했다.
우선 혁신·도전적 연구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거나 내용이 부실하더라도 보완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 평가한다. 연구과제비 사용 기간과 회계연도를 일치하도록 한 규제도 글로벌 공동연구와 기초연구사업을 시작으로 단계적 폐지를 추진한다.
연구 수행 책임자와 같은 기관에서 근무하는 연구자를 평가자로 지정하지 못하게 하는 ‘상피제’도 폐지한다. 상피제는 평가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했으나, 평가 전문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을 받던 제도다. 다만 같은 기관의 연구자가 의도적으로 좋은 평가를 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평가 결과를 피평가자에게 공개하고 평가자에게 이해상충행위 금지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정부가 강조하는 국제 R&D 협력 추진 방안도 보다 구체화했다. 미국, 일본과의 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R&D 협력 프로젝트’를 새롭게 만들고 아시아, 중동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로 대상을 확대한다. 주요 연구 분야는 12대 국가전략기술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17대 탄소중립기술을 중심으로 한다. 앞서 추진하고 있는 첨단 바이오를 비롯해 10개 주요 분야를 선정해 ‘글로벌 R&D 플래그십 프로젝트’로 지정하고 예타 신속조사, 예산 우선 반영을 지원한다.
국제 공동 연구 예산 비율을 정부 R&D 예산의 1.6%에서 6~7%로 늘려 앞으로 3년간 총 5조400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 기존 소규모 단발성 국제협력이 아닌 국가 차원의 전략성을 반영해 큰 투자가 필요한 대형 연구 사업 위주의 협력을 이끌어내겠다는 계산이다.
국가전략기술은 정부출연연구기관 대신 국가기술연구센터(NTC)를 중심으로 R&D를 진행한다. 해외 연구자와 NTC 참여 연구자는 인건비를 100% 보장하는 방식으로 연구과제중심제도(PBS)도 일부 개편한다.
정부가 예산안 발표 이후 3개월 만에 구체적인 R&D 제도 혁신 방안을 발표했지만, 과학계에서는 뒷북이라는 차가운 반응이 많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한 연구자는 “내년 융합연구단 사업을 오랜 시간 준비해 왔으나 갑자기 이 사업을 없애고 글로벌 TOP전략연구단 사업을 만든다고 해 준비 방향을 틀어야 했다”면서 “그러나 새로 도입하는 사업을 어떻게 추진할지 알 수 없어 연구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을 가장 혼란스럽게 했던 분야는 국제 협력이다.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기관과 협력을 통해 국내 연구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제 협력 지원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국제 협력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과학계에서는 지도도 없는 상황에서 맞는 길을 찾아가야 하는 처지라는 하소연도 나오던 상황이다.
과학 정책을 연구하는 한 연구자는 “국제 협력에 관한 정책과 제도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이제서야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부랴부랴 지침을 마련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며 “우선 예산안을 공개한 후 뒤늦게 제도 정비에 나선 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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