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배터리 삼국지, 기술승자가 웃는다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이 테슬라. 두 사람은 우리가 가정과 산업 등 각 분야에서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준 발명가들이다. 이들은 전기를 효과적 사용하고 전송할 수 있는 방식을 경쟁적으로 개발, 각각 직류와 교류가 적합한 전송 방식이라 주장했다. 이러한 경쟁은 전기 역사 첫번째 전쟁이었고, 결국 교류방식이 승리하면서 생산된 전기는 가정까지 전송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전기는 우리의 일상으로 깊게 파고들어 2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끈 주인공이 됐고, 현대문명 핵심 기술이 됐다.
1990년대부터 휴대전화, 노트북 등 정보기술(IT) 제품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가정, 직장과 같은 생활공간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는 전기 필요성이 제기됐다. 물처럼 한쪽으로 흘러가는 1차원 전기를 저장해 필요할 때마다 전기를 뽑아 쓸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바로 배터리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고 있다. 자동차, 태블릿, 웨어러블 기기, 심지어 담배까지. 배터리 잔량을 체크해야 하는 기기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이처럼 수시로 전기를 저장하고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 등장은 다양한 IT 제품 탄생을 유도하며 신시장 창출 원동력이 되고, 우리 일상 모습을 바꾸는 기술혁명을 넘어 문화혁명이라 할 정도로 강력한 임팩트를 제공하고 있다. 2019년 노벨 화학상이 리튬이온 배터리를 개발해 '충전 가능한 세상(Rechargeable World)'을 연 3명 과학자에게 돌아간 이유도 배터리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다.
이러한 배터리는 무려 1859년 납축전지 형태로 최초 개발된 후 여러 발전 과정을 거쳐 1991년 큰 전환기를 맞이했다. 일본 소니가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다. 이후 리튬이온 배터리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기기,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등 다양한 에너지 산업 핵심 동력원이 됐다.
초반 배터리 산업은 리튬이온 배터리 상용화에 성공한 일본이 주도하다가 현재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걸고 경쟁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대량생산 공정에서 제조 기술이 뛰어난 우리 기업이 급부상하며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적도 있었지만, 현재는 풍부한 핵심 광물과 안정적인 공급망 그리고 거대한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 세계 배터리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 역시 전고체 배터리 분야 최대 특허 보유국으로 과거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경쟁국과 첨예한 배터리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첫째, 배터리 핵심 양극, 음극 소재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거나 원료 대체 기술을 내재화해야 한다. 이에 업계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음극재에 주원료로 사용되는 흑연을 실리콘으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기존 리튬을 나트륨으로 대체하는 등 신소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둘째, 에너지 밀도를 남들보다 얼마나 더 높일 수 있느냐가 승자 요건이 된다. 작은 부피에서 더 큰 힘을 낼 수 있는 배터리는 모두의 로망이기 때문이다. 최근 전고체 배터리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안정성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액체 전해질 사이를 막는 분리막이 필요하지 않고, 줄어든 부품만큼 배터리 용량을 늘릴 수 있어 에너지 밀도가 높다. 이 원천기술을 가장 빠르게 확보하고,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천문학적 수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배터리 산업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폭발성 위험을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강한 충격 또는 과충전 상태가 되면 불이 나거나 폭발할 위험성이 있어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2006년 일본이 노트북 화재 이슈로 시장 주도권을 잃게 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배터리 양극재, 음극재 등 핵심소재 뿐만 아니라 열 폭주를 지연시키는 기술력 확보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렇듯 배터리 초격차 기술은 대체원료 내재화와 고용량, 저부피, 저위험 난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러한 난제들은 상호 연동돼 배터리 성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기술적 특성으로 인해 배터리 산업계는 '소부장-배터리-전기차' 등 수요-공급기업 간 관계를 장기적이고 밀접하게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배터리 연구는 연구기관 독자 개발이 아닌 전체 밸류체인에서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미션지향형 대형 연구개발(R&D)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최근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유럽연합(EU)의 핵심원자재법(CRMA) 도입으로 신뢰할 수 있는 동맹과 협력 개발이 중요해졌다. 우리와 글로벌 동맹간 기술과 시장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해 서로가 '윈윈(Win win)' 하도록 국제공동 R&D를 기획하고 확대해 거대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사마의. 그는 '삼국지연의'의 삼국 간 치열한 전쟁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전략가로 손자 사마염이 천하통일을 이루는데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에는 '결국 이기는' 수식어가 주로 붙으며 “사소한 패배는 승리의 밑거름”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최근 우리나라는 중국의 저가형 배터리 공세와 일본의 전고체 배터리 기술 선점에 다소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위축될 필요는 없다. 사소한 전투에서 밀리고 있을 뿐 전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장과 기술 변화를 사전에 예측하고 연구개발 전략을 체계화한 다음 기술 초격차를 위한 연구개발에 매진하자. 언젠가 치열한 배터리 삼국지에서 “결국 이기는” 나라는 한국이 될 것이며, 세계 배터리 시장은 우리 기업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원장 art@keit.re.kr
〈필자〉 정책·경제·통상 분야에 능통한 관료 출신 기관장이다. 군산제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영국 리즈대 경영대학을 졸업했다. 행정고시 36회에 합격, 1993년 상공자원부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지식경제부 투자유치과장,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기획관·통상협력국장·통상교섭실장 등으로 활동했다. 주유럽연합(EU)·벨기에 대사관 상무관, KOTRA 교역지원센터장, KAIST 과학기술정책센터 연구교수 등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지난해 9월부터 R&D 기관 KEIT에서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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