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서평연대 스물일곱 번째[출판 숏평]
■어제 그거 봤어?(이자연 지음 / 상상출판)
혹시 유튜브나 TV 예능 프로그램 혹은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의문을 가진 적 있는가?
“왜 하이킥 시리즈에서 나문희 여사와 황정음의 방엔 책상이 아닌 화장대만 있을까.”
“아이돌과 코미디언 중에 미적 기준이 왜 여성들에게만 엄격한 걸까.”
“왜 뉴스나 교양 프로그램의 발언권 대부분이 남성 패널 위주로 쏠려 있는 걸까.”
방송은 일관된 서사를 전달하지만 흐름에 쫓아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수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선입견으로 굳어질 만한 문제점을 날카롭고 명민하게 포착한다.
TV뿐만 아니라 OTT, 유튜브로도 방송의 범위는 넓고 다양해졌다. 하지만 여성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시대의 흐름에 반하는 콘텐츠가 늘어나는 상황을 그저 농담이나 웃음으로 넘어갈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TV 예능 프로그램을 언제부턴가 잘 보지 않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패널들이 던지는 농담으로 포장한 무례한 발언에 사뭇 마음이 무겁고 못미더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챕터 끝장마다 실린 질문을 읽다 보면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시청자를 끌어모아야 할 방송계가 아직도 낡은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남성이 중심되는 방송을 넘어 여성이 주체가 돼 서사를 풀어나가는 콘텐츠가 생겨나는 중이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차별을 딛고 서사 그 자체에 주목하고 공감하는 방송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상현 / 서점원, 9N비평연대)
■다정소감(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얼마 전까지 아직 가을인가 싶다가도 뼛속까지 시린 바람이 불자 겨울이구나 했다. ‘다정소감’은 추운 겨울에 사 먹는 군고구마 같다. 처음 손을 댔을 땐 너무 뜨거워서 먹기 쉽지 않지만, 호호 불어가며 겨우 껍질을 까서 한 입 먹으면 그렇게 달콤하고 든든할 수 없다.
살다 보면 다정하고 훈훈한 순간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때로는 나를 얕보고 부당하게 구는 사람과 목소리를 높여 싸워야 한다. 때로는 집에 돌아가는 길, 낯선 사람과 탄 엘리베이터, 혼자 사는 집 등 언제 어디에서 어떤 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실체 없는 두려움에 일상이 호러가 된다. 책은 이러한 녹록지 않은 일을 겪을 때마다 다정함의 힘으로 이겨내는 ‘다정한 패턴’으로 가득하다.
누구에게나 세상의 차가움에 마음이 얼어붙는 듯한 시기가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은 ‘군고구마’가 돼 어떤 시련이 와도 따듯해질 수 있음을 일깨워 줄 것이다. (현다연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인생정원(성종상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자연 속에서 태어난 인간은 나날이 발전하는 문명에 쉽게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낀다. 이토록 넓은 땅에서 자연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운 흙을 만지고, 윤기나는 초록 잎이 피어나는 것을 바라보며, 내가 아닌 또 하나의 생명을 정성 들여 보살피는 행위는 우리에게 있어 ‘테라피’가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평범한 일상에서의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식물을 기르고, 베란다에 작은 정원을 가꾸며 위로를 얻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안정, 위로, 정화가 아닐까.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은 알지 못하지만 창문 앞에 정원과 풍경을 두고 즐기는 아름다운 삶은 애써 누리려 했노라.”
헤르만 헤세, 윈스턴 처칠, 클로드 모네 같은 명사들 또한 자연을 가꾸며 상처와 아픔을 치유했다. 그들의 아름다운 정원을 하나하나 구경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온전한 삶의 안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정빈 / 출판칼럼니스트,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해녀의 딸, 달리다(이현서 지음 / 단비)
“일본인 악덕 상인과 내통하는 조합 서기를 처벌하라!”
“비 오는 날 잡은 전복도 제값을 쳐 줘라!”
이런 구호를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 제주 해녀들이 처한 상황이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똑같은 전복도 비가 오는 날 잡았다는 어이없는 핑계로 제값을 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이라고도 하고 ‘하도리해녀항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일제강점기 제주로 들어온 일본 자본가들은 해녀들이 채취한 감태와 전복의 가격을 강제로 헐값에 사들이려 했다. 이에 생활고를 겪게 되자 분노한 해녀들이 반발해 해녀조합에 정상 매입을 요구했다. 하지만 조합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해녀들은 1931년 12월 말부터 세화 장날에 나가 대대적인 시위를 감행했고, 1932년 1월까지 이어진다. 연인원 1만7000여 명이나 참여한 대규모 항일운동이었다.
이 가운데 소설 속 주인공 ‘해인이’는 항상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런데 이 달리기는 놀이가 아니다. 해인이가 달릴 때 해녀들이 모이고, 해녀들이 일어서고, 해녀들이 함성을 지른다. 작가는 어리고 작은 아이의 삶도 거대한 역사 흐름 한 가운데 함께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김성신 / 출판평론가, 9N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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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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