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2심 판결이 오해한 ‘국가면제’[포럼]

2023. 11. 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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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국내 법원에서 국제법과 관련된 판결이 드물지 않게 나온다.

고등법원의 법리는 국가면제 법리가 종래의 '절대적 면제'에서, 비주권적 행위는 면제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제한적 면제'로 변했다는 점을 제시한 것이다.

국가면제의 근본적 이유와 필요성을 정확하게 판시한 것으로, 우리 법원은 이 점을 간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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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국제법

최근 들어 국내 법원에서 국제법과 관련된 판결이 드물지 않게 나온다. 우리 헌법 제6조가 국제법에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인정하는 데서 기인한다. 그때마다 깊이 유의하면서 지켜본다.

지난 23일 서울고등법원 민사 33부가 내린 위안부 손해배상 판결도 그 한 사례이다. 2021년 4월 서울중앙지법은 이용수 할머니 등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국가면제(주권국가를 다른 국가 법정에 세울 수 없음)를 이유로 각하했다. 그러나 2년여 만에 서울고법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 금액을 전부 인정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한 논거로는 국제관습법의 변화를 제시했다. 고등법원의 법리는 국가면제 법리가 종래의 ‘절대적 면제’에서, 비주권적 행위는 면제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제한적 면제’로 변했다는 점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비주권적 행위란 상업적 행위 등을 일컫는 것으로, 이를 따르게 되면 일본의 전쟁위안부 강제행위가 상업적 행위가 돼 버린다. 이와 함께 판결 근거로 예시한 우크라이나 대법원은, 지난해 4월 14일 판결에서 러시아의 적대 행위는 불법행위여서 주권면제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했다. 러시아의 침공은 국제법의 핵심 원칙을 노골적으로 위반한 것으로, 주권 행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러시아에 주권면제를 인정하면, 유럽인권협약과 우크라이나 헌법상의 피해자 권리 보호를 위한 공정한 재판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며, 테러방지협약 하의 우크라이나 의무를 침해한다고도 했다. 이 판결은 러시아의 무력공격에 초점을 맞춘 국제법 위반을 핵심 쟁점으로 삼은 것으로, 침략행위는 주권면제 대상이 아님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와는 다른 판결을 내린 바 있다. 2012년 독일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제소한 국가의 관할권 면제 사건에서 재판소는 국제관습법상 영토적 불법행위의 예외는 조약법이나 국제관습법상 허용되는 경우를 발견하지 못했고, 해당 행위가 강행규범 위반이어서 면제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기각했다. 국가면제에 관한 규칙은 일국의 법원이 타국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일 뿐, 해당 쟁송의 적법성이나 불법성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일국의 행위가 타국 또는 타국민에 피해를 줄 경우라도 타국 법원이 재판토록 두기보다 국제법을 기반으로 정부 간 해결토록 하는 게 현 국제법상 더 적절하다는 데 기반한다. 국가면제의 근본적 이유와 필요성을 정확하게 판시한 것으로, 우리 법원은 이 점을 간과한 것이다.

국제법이 제정 당시의 모습대로 불변일 수 없음은 당연하다. 국가면제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일국의 법원이 타국의 정부를 재판하게 되는 경우 해당 국가가 타국의 주권 아래 놓이게 될 것을 우려한 국제법상의 법리가 여전히 유효하고 국가 간의 평화적 해결 방안이 유의미한 것이라면, 어떠한 접근이 적합한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일본 군대위안부로 지워지지 않는 고통을 겪은 분들에게 사죄와 더불어 합당한 피해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일본은 전쟁위안부 강제동원이 갖는 함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정부 또한 기울여야 할 노력의 높이와 깊이를 정확히 가늠해야 할 것이다.

성재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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