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차단 없이 혁신·도약 어렵다[이민종의 시론]
아르헨티나 포퓰리즘으로 퇴보
무분별한 재정 방출 행태 지속
韓도 총선 의식 인기영합 난무
기업·가계 경제상황 살얼음판
고금리·고물가로 어려움 가중
화수분 여겼다간 후유증 심각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된 것은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정치 입문 1년인 신인인 데다 헝클어진 머리, 아래로 내리깐 렌즈 너머의 눈빛, 도드라진 얼굴 근육 등에서 아르헨티나 정치·경제사의 오욕을 털어 버리겠다는 나름의 결기가 읽혔다. 물론 자신감만큼 성과를 낼지 지켜볼 일이다. 여하튼 그는 무분별한 정부 지출을 줄이겠다며 전기톱을 흔들고 유세를 펼쳐 오랜 세월 빈곤의 궁지에 몰려 있던 아르헨티나 국민의 표심을 얻었다.
밀레이 당선자는 한국 입장에서도 마약보다 더 무서운 포퓰리즘의 폐해를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1997년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에 대한 구제금융을 승인했다. 국가 부도 위기는 비껴갔지만, 대량 구조조정으로 전 국민이 혹독한 후유증을 치렀다. ‘세계 3대 곡창지대의 하나인 광활한 대평원 팜파스가 펼쳐진 목축 부국이자 농업 강국’ ‘은(銀)이 넘치는 땅이란 뜻을 지닌, 미국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높은 세계 5대 경제부국’ 등의 수식어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아르헨티나는 이런 구제금융을 20번이나 받았다. 국가 부도를 9번이나 겪었다. 경제 전반이 만신창이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 리더십을 연구한 김충남 박사는 ‘한국의 10대 리스크’에서 “후안 페론(1895∼1974) 집권 이래 나라가 기울었고 이후 한국의 1997∼1998년과 비슷한 위기가 지난 70년 가까이 간헐적으로 계속됐다”고 분석했다. 아르헨티나를 침체의 늪에 빠뜨린 중심에서 ‘페론주의’라는 말을 만든, 후안 페론의 좌파 포퓰리즘을 배제할 수 없다는 건 중론인 듯싶다. 권태신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은 ‘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에서 “아르헨티나가 무너져 간 이유는 1950년대 이후 2000년대까지 위정자들이 청개구리처럼 포퓰리스트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수입대체 전략을 내세우며 반(反)개방의 길을 걸었고 수출세로 거둬들인 세금은 노조, 교원노조, 친정부 기업의 뱃속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아르헨티나 외에도 ‘남미의 베네치아’로 불렸던 베네수엘라와 멕시코, 페루, 칠레,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 그리스까지 복지 포퓰리즘의 부메랑을 맞고 휘청거렸다.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한국의 여야 정치권이 벌써 포퓰리즘 경쟁에 뛰어들었다. 개인투자자들에게 불리해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불리는 주식시장 공매도 개선, 김포의 서울 편입론으로 촉발된 메가시티, 거위의 배를 가른다는 반발을 사고 있는 횡재세의 법제화 추진,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없이 추진되는 공사비 11조 원 규모의 달빛(달구벌·빛고을) 철도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선거 때만 되면 비장의 카드처럼 내던지는 무상복지도 꿈틀거릴 수 있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국가 재정을 ATM(현금인출기)으로 여긴 듯 ‘기본 시리즈’가 번듯이 공약으로 등장한 게 선연하다.
천문학적인 가계·기업·정부 부채가 쌓인 속에서 최근 기업과 가계부문을 둘러싼 경제 상황은 적신호가 켜졌다. 3분기 말 전국 어음 부도액은 4조1569억 원으로 전년 대비 215% 가까이 치솟았다. 국제금융협회(IIF) 보고서를 보면 한국 기업 부도는 올해 1∼10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늘어 주요 17개국 중 2위를 기록했다. 은행권은 부실 경고를 발령했다. 대기업도 사법리스크 등으로 경영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다. 가계도 마찬가지다. 카드빚을 갚지 못해 연체했다가 카드사로부터 상환자금을 받은 대환대출 잔액은 1조4903억 원으로 1년 전보다 47.5%나 늘었다. 자영업 연체액과 연체율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나빠졌다.
여야가 시계 제로의 불확실성에 봉착한 기업과 숨이 턱까지 차오른 서민·중산층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이해타산과 몽니로 이전투구를 일삼고, 인기영합적인 정책으로 재정 곳간을 유린할 경우 후유증은 혹독할 것이다. 눈앞의 이익에만 집중해 아둔한 정책을 일삼는다면 결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포퓰리즘에 골몰하기보다 민생의 바다에 뛰어들고 규제를 걷어내 기업에 활로를 제공해야 한다. 새로운 제품과 시장을 개발하려는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가를 배려하는 진정성에 민심은 마음을 열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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