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시대로 회귀"…가자지구, 휴전에도 '인도주의 참사' 여전
"국제사회 구호품으로 부족…기저귀 구하러 먼 길 떠나야"
WFP "식량 격차와 광범위한 기아 발생"…위생위기에 질병창궐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우리는 석기시대로 돌아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나흘간 일시 휴전에 돌입했지만 가자지구 상황은 여전히 처참하다.
만성적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건 물론 연료가 바닥나 요리를 위해 창틀을 태워야 하는 실정이다.
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어떻게 하면 최대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는 남지 음와피(23)와 가자지구 주민들의 사연을 전했다.
피란 생활 중인 음와피는 매일 같이 새벽 4시면 식수를 배급받기 위해 집을 나선다.
이른 시간이지만 지난달 7일 개전 이래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 있는 방 2개짜리 아파트에 모여 사는 가족 수십 명을 살리려면 줄을 서야 한다.
물을 받기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데다 때때로 싸움이 벌어지고 자기 몫의 식수가 남지 않을 때도 있지만, 가족에게 하루 물 한 잔씩을 주려면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음와피는 말했다.
부족한 건 식수뿐이 아니다.
연료가 부족하고 장작과 석탄까지 고갈된 탓에 요리를 하려면 문, 창틀, 풀을 태워서 불을 피워야 한다. 이마저도 없어 조리하지 않은 양파나 가지를 먹는 경우도 흔하다.
앞서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 발발 48일 만인 지난 24일 시한부 휴전에 들어간 뒤 가자지구에는 식수 등 구호품을 실은 트럭 수십 대가 투입됐다.
하지만 현지 주민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는 구호품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휴전이 끝나면 이 같은 구호품 전달마저 끊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은 개전 이후 가자지구에는 필요한 식량의 10%만이 들어왔다면서 '엄청난 식량 격차와 광범위한 기아'가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밀가루, 유제품, 치즈, 계란, 생수는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우려했다.
개전 이후 전 세계 인도주의 기구가 가자지구 인구 4분의 1이 먹을 수 있는 양의 빵, 통조림, 대추야자 등을 보냈으나 공습과 포위 공격으로 인해 배급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WFP는 부연했다.
하수도가 기능을 상실하고 약 170만 명이 한꺼번에 강제 이주하면서 위생 위기가 발생하고 질병이 창궐하고 있다.
음와피는 이번 전쟁 직전 대학을 졸업하고 콘텐츠 제작 일을 시작하며 밝은 미래를 꿈꿨지만, 가자지구에서 문명이 사라진 지금은 생존만이 목표가 됐다.
그는 "이전에 좋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어린 시절 꿈을 이루는 게 목표였다면 지금은 무사히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고 털어놨다.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 사는 여성 알 보르노(35)도 매일 자택 인근 상점을 방문하지만 텅 비어 있을 때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자녀 4명을 둔 그는 "아이들을 위해 걸어서 먹을 걸 찾으러 가지만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다"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울었다"고 호소했다.
최근에는 기저귀 2팩을 구하기 위해 칸 유니스를 떠나 가자지구 내 다른 지역으로까지 이동해야 했다고 한다. 그의 막내아들은 이제 갓 1살이다.
다른 이재민은 음식이 절박한 나머지 추위에도 불구하고 구호품으로 받은 담요를 보르노에게 팔았다고 한다.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라히야에 머무는 아메드 칼레드(39)는 노모와 아내, 세 딸이 더러운 물로 연명한다면서 "여기 아이들은 모두 아프다. 설사와 복통에 시달린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민간인에게 가자지구 남부로 대피하라고 경고했으나 칼레드는 북부에 남았다. 어머니가 너무 쇠약해 이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칼레드는 현지 위생 상황이 심각하다면서도 북부를 중심으로 벌어진 치열한 전쟁에 비하면 질병은 부차적 문제라고 말했다.
칼레드가 대피해 있던 가자지구 북부의 한 학교는 인터뷰 이튿날인 지난 18일 이스라엘군의 폭격을 받았다. 당시 해당 시설을 포함해 2개 학교가 폭격을 받아 수십 명이 사망했고, NYT는 이후 칼레드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han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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