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의 '인생작' 갱신 릴레이는 여전히 진행형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2023. 11. 2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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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정우성의 인생 연기작.'

지난 22일 개봉해 200만 관객 돌파를 앞둔 '서울의 봄' 관람평을 훑다 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평이다. 1994년 '구미호'로 데뷔한 정우성은 30년간 30편이 넘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빈말로도 연기 잘하는 배우군의 첫손에 꼽히는 배우는 아니지만, 십수 년,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캐릭터 자체로 기억되는 작품이 여럿인 배우다. 그런 그에게 '서울의 봄'의 이태신은 '인생 연기작'이란 찬사를 선물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정우성은 꾸준히 연기로 곱이곱이 진일보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어쩌면 우리는 그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에 그의 노력을 쉬이 지나쳤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의 봄'의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은 전두광(황정민)과 하나회가 일으킨 반란군에 맞서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티프로 한 전두광은 트레이드마크인 대머리로 비주얼적 싱크로율이 높은 데다 실존 인물 자체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이입이 빠른 캐릭터다. 이런 요소에 명배우 황정민의 광기 어린 연기가 더해지며 격렬한 시선을 끌고 있다. 반면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은 실존인물인 제7대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을 모티프로 했지만, 비주얼적 요소로 싱크로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아예 없어 보이는 데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장태완을 연기한 김기현의 '장포스'와도 사뭇 다른 결을 보인다. 비주얼이나 강렬한 결기 대신 정우성의 이태신은 깊은 물 같은 고요함 속에 끓어오르는 묵직한 분노를 보여준다. 

소위 지르는 연기는 순식간에 보는 이를 사로잡는 힘이 크지만, 이태신과 같은 연기는 어지간한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보는 이를 감동시키기 어렵다. 게다가 정우성은 그 압도적인 외모가 빚어내는 존재감, 섬세한 눈빛과 표정, 우월한 피지컬을 활용한 연기를 보여왔음에도 발성과 발음으로 많은 지적을 받은 바 있다. 특히나 이태신은 강직한 신념으로 뭉친 충성스러운 군인. 정우성이 그간 압도적인 외모가 빚어내는 존재감, 섬세한 눈빛과 표정, 우월한 피지컬을 활용한 연기를 보여왔음에도 발성과 발음으로 발목을 잡힌 바 있어, 카리스마 넘치는 군인을 잘 연기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조금 있었다. 기우였다. 앞서 말했듯 정우성의 존재감 때문에 그의 노력을 간과할 뻔했다. 같은 편 하자며 슬쩍 미끼를 던지는 전두광에게 "대한민국 육군은 다 같은 편입니다"라고 말하는 이태신은 그야말로 강직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군인 그 자체였다.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원칙을 중시하지만 자신의 부하와 가족에게 따스한 FM 스타일에 몸을 사리지 않고 최전선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는 참군인 정신으로 무장한 이태신은 캐릭터적으로 보면 전두광에 비해 심심할 수 있다. 또한 역사가 스포일러이듯 그(와 진압군)의 패배는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서울의 봄' 관람객 사이에서는 '우성이형이 이기길 바라면서 본 영화'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고 홀로 바리케이드를 휘청휘청 넘어간 뒤 전두광에게 "넌 대한민국 국민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라고 일갈할 때의 쓰디쓴 심경에 관객들도 쓰라린 마음을 보탰다. 강렬한 캐릭터에 열광하길 좋아하는 대중이, 전두광보다 강렬하게 보이진 않지만 그 속에 끓어내는 강직한 신념을 뚝심있게 연기한 정우성의 노고를 알아봐 주는 순간이었다. 

'서울의 봄'이 정우성의 인생 연기작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정우성의 인생 연기는 꾸준히 갱신돼 왔다. '똥개'는 그가 비주얼 청춘스타로만 박제되길 원하지 않음을 분명히 나타낸 작품이었고, '감시자들'은 그럼에도 정우성은 존재 자체가 하나의 연기 장르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수라'의 한도경은 어색한 욕설 연기로 호불호가 있었지만 그의 연기폭을 한층 넓힌 작품이었다. '더 킹'의 한강식, '강철비'의 엄철우, '증인'의 양순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강태영, '헌트'의 김정도 등을 맡아오며, 스크린에서 정우성을 볼 때마다 조금씩은 있었던 (연기에 대한) 조마조마함이 사라져갔다. '더 킹'의 한강식은 유독 악역과 상성이 맞지 않던 정우성의 또 다른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줬고, 캐릭터에 힘을 많이 빼고 임한 '증인'의 연기로는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과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을 거머쥔 바 있다.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올해는 정우성의 '열일 행보'가 유독 눈에 띈 해다. 주연과 함께 감독 데뷔작인 '보호자'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시선이 많았지만, '웅남이' '달짝지근해: 7510' '거미집'에 이르는 특별출연 행보는 놀라움과 함께 감탄을 남겼다. 특히 '거미집'의 신상호 감독 연기는, 주연배우 송강호의 말처럼 최고의 연기였다.  '서울의 봄'이 올해 그의 행보에 화룡점정을 찍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도 남아 있으니 순식간에 그의 인생 연기작이 또 갱신될 여지는 남아 있다. 게다가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멜로 아닌가. 불세출의 명대사를 남겼던 '내 머리속의 지우개'와 설렘 가득한 '호우시절', 그리고 드라마 '빠담빠담'의 정우성을 못 잊는 이들이라면 '사랑한다고 말해줘'에 큰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거미집'에서 정우성이 분한 신상호 감독은 "제가 재능이 있을까요?"라고 묻는 김 감독(송강호)에게 이렇게 말한다. "재능이란 게 뭐 별것 있나. 자신을 믿는 게 재능이지." 배우 정우성은 주변의 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자신을 믿는 재능을 발휘하며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정우성의 인생 연기작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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