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정체불명 극한에너지 우주선 관측...한국 과학자 주도
우주 관측 사상 가장 높은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cosmic ray)'이 관측됐다. 우주선은 우주공간에서 지구로 끊임없이 도달하는 각종 입자와 방사선을 의미한다. 천병구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 박일흥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등 국내 연구진이 참여한 '텔레스코프 어레이(TA) 코퍼레이션' 국제공동연구팀은 2.44x1020전자볼트(eV)의 에너지를 갖는 정체불명의 우주선을 관측하고 연구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2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관측된 우주선 중 가장 강력해 '극한 에너지 우주선(UHECRs)'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 미국, 일본, 대만 등 국제공동연구팀으로 이뤄진 TA 연구단은 미국 유타주 사막에 설치된 지상망원경과 지표 입자검출기 등을 통해 2008년 5월부터 약 15년 간 천체 데이터를 관측하고 분석한 결과 2021년 5월 27일 10시 35분 56초 경(UTC·세계표준시 기준) 2.44x1020eV라는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을 찾아냈다. 천병구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 정도 에너지를 지닌 우주선을 구성하는 우주입자를 단 1그램(g)만 모아도 20킬로톤(kt·1kt은 TNT 1000t)급 핵폭탄 1000억 개가 뿜어내는 에너지와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우주선은 1911년 미국 물리학자 빅터 헤스가 처음 관측한 이래 우주의 기원을 풀 핵심 열쇠로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정확한 기원이나 생성 과정 등은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까지 108~1018eV 영역에 해당하는 고에너지 우주선은 관측된 바 있지만 1020ev 급에 달하는 강한 에너지의 우주선이 관측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주선에 포함된 하전 입자는 지구로 날아오는 동안 우주 자기장의 영향을 받으며 휘어지곤 하는데, 연구단은 이번에 관측된 우주선의 에너지가 너무 커서 자기장의 힘을 무시할 정도였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이번 극한 에너지 우주선의 방향을 관측한 결과 우주선이 뿜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우주 공간에서는 우주선을 발생시킬 수 있을 만한 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천 교수는 "텅 빈 우주 공간에서 우주 자기장까지 억누를 정도의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 셈"이라며 "우주선의 근원이 암흑물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암흑물질은 우주 물질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다고 추정되지만 아무런 빛을 내지 않아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미지의 물질이다.
다만 우주선은 날아오는 동안 우주에 존재하는 전자기파가 총체적으로 누적된 '우주배경복사'와 상호작용하면서 에너지를 조금씩 잃는다는 점에서 이번에 관측된 고에너지 우주선의 기원이 매우 먼 우주 공간은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다. 천 교수는 "최소 100메가파섹(Mpc·약 33만광년) 이내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번 발견에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진행된 해외우수연구기관유치사업의 일환으로 연구에 참여한 국내 연구진의 기술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주선 입자를 검출하는 데 사용된 지표 입자검출기 30여 대는 한양대·성균관대 등 국내 연구진이 국내에서 직접 제작했다. 연구에 참여한 박일흥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국내 연구진 4명이 6개월~2년 간 유타주 사막에 상주하며 검출기 총 260개를 재조립하고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면적과 비슷한 700km2의 사막에 1.2km 간격으로 입자검출기를 설치해 2008년부터 우주로부터 떨어지는 우주선 입자를 검출했다. 우주선이 대기권에 들어오면 대기에 있는 질소 등과 만나 수많은 입자를 생성하는데, 이때 발생한 기본입자 '뮤온'의 비율을 관측해 에너지의 크기를 측정했다. 이를 지상망원경이 관측하는 자외선과 비교해 정확한 에너지 양을 검출하는 방식이다.
박 교수는 "국내 연구팀은 현재 유타 사막에서 실험 인프라를 구축하는 중"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지역에서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초고에너지 입자 데이터를 수집·분석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천 교수는 "이번 결과를 통해 초강력한 에너지의 방향을 나타낸 새로운 우주지도를 그리는 등 천체천문학 연구의 새로운 발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건희 기자 wiss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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