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돌봄아동에게 요구되는 약자다움
베이비뉴스와 초록우산은 가족돌봄아동·청소년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지원 필요성을 공론화하기 위해 '돌봄의 시간에 붙잡힌 아이들' 연속 특별기고를 마련했습니다. 고령, 장애, 질병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보살피는 아동·청소년은 성장을 위한 '나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족을 돌보면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제도적인 지원 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한 사회적 인식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매주 월요일 이에 관한 아이들과 복지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 말
저는 어려서부터 청각장애가 있는 어머니, 어린 동생과 함께 살며 가족의 도우미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 대신 동사무소나 복지관에 서류를 받으러 다니고, 병원에서는 어머니와 동생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고, 법원을 찾아 힘들게 저와 동생들의 성본 변경과 개명을 도맡아야 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이 저를 의지하는 것을 느끼고 '가족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겠다'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지냈지만, 사실 저는 사람들이 저를 불쌍히 여기거나 우리 가족을 안타까운 대상으로 여기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지켜야 했기에 열심히 공부하고 장학금을 받아 학원비든 독서실비든 스스로 해결하려 했고, 평범한 가정 아이처럼 행동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가족과 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보이기 위한 가면을 쓰고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제가 줄곧 원했던 전공 대신 간호학과에 진학하자 '많은 짐을 지게 해 미안하다'라고 하셨습니다. 가족을 위해 꿈 대신 택한 진로이기는 합니다만, 지금껏 저는 한 번도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을 막은 적 없고, 제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지지해주신 분입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저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사회가 저와 제 가족에게 씌우는 프레임입니다. 어머니는 어떻게든 우리를 책임지려 발버둥 치고, 본인을 희생해 왔는데 왜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들이 '네가 고생이 많다'라거나 '힘든 환경 속에서 잘 커서 기특하다'라고 쉽게 얘기할까요.
가족돌봄아동으로 살아가는 저나 다른 아이들은 사실상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안타까운 아이, 그럼에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기특한 아이'로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우선, 각종 지원 제도를 이용하거나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불쌍하게 인식하고 실제로도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도움받는 아이답게 지내야 한다는, 눈에 보이지 않고 때로는 드러나는 눈치를 받기도 합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돌보며 사는 아이들도, 이 아이들의 돌봄을 받는 가족들도 모두 남들과 다르지 않게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저나 다른 가족돌봄아동들은 스스로를 최하위 계층에 속해 불행하게 살아가는 아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외부에 입증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 저는 여러 제도적 지원과 어른들의 도움 덕에 가족과 함께 잘 생활하며 성장할 수 있었고, 이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지 있습니다. 다만, 저와 가족이 계속해서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람들'로 보이는 사회적 구조와 인식은 달라졌으면 합니다. 사회에서는 복지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을 선별하고 도와야 할 이유도 찾아야겠지만, 스스로 약자라는 인식을 뼛속 깊이 새기고 약자다움을 보이면서 사는 사람만 도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저는 제 동생들, 그리고 다른 가족돌봄아동들이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또한, 여러 지원 제도에 감사하면서도 제가 경험하고 고민한 일들을 다시 겪지 않기를 원합니다. 가족돌봄아동들을 불쌍하고 딱한 아이가 아닌 평범한 아이로 바라봐주는 시선, 여기에 앞으로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가능성 있는 아이라는 믿음을 더해주시면 자기 자신을 신뢰하면서 건강하게 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특한 작은 가장이라는 차별이나 편견이 섞인 시선보다는, 환경의 어려움만 주변에서 조금 덜어준다면 충분히 밝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평범한 아이라는 따뜻한 지지를 가족돌봄아동들에게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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