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의 봄' 김성수 "12.12, 승리의 기록처럼 보일까 고민했죠"

조은애 기자 2023. 11.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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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감독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서울의 봄'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개봉 첫 주말 누적 189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한동안 박스오피스를 점령했던 외화들을 밀어내고 단숨에 흥행 선두로 올라섰다.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긴박하게 몰아치는 서스펜스가 관객들을 압도했다는 평이다. 앞서 '비트', '태양은 없다', '영어 완전 정복', '아수라' 등 수많은 배우들의 인생작을 만들어냈던 김성수 감독이 이번엔 자신의 인생작을 만났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다. 연출을 맡은 김성수 감독은 한남동에 살던 19세 시절 총성을 직접 들은 이후 오랜 시간 품었던 의문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혼자 끙끙 앓았던 인생의 숙제를 '서울의 봄'으로 풀어낸 것"이라며 홀가분해했다.

"개인적 체험 때문에 이 사건이 깊게 박혀 있었는데 진짜 이런 시나리오를 만나서 놀랐어요. 겁이 나기도 했어요. 시나리오는 굉장히 좋았지만 아무래도 군사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주인공이라 그들이 멋진 악당처럼 묘사될까봐 걱정했거든요. 그래서 연출 결심하기까지 1년 정도 걸렸어요.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다가 원래 이야기를 토대로 하되 반란군과 맞섰던 진짜 군인들의 시선으로 사건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반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김성수 감독은 당시 사건을 잘 모르는 관객들까지 12.12 그날의 현장으로 데려가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큰 틀로 세우되 인물들의 성격과 대화, 구체적인 행적엔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혔다. 나아가 신군부의 핵심인 전두광(황정민)과 진압군의 이태신(정우성)이라는 대립각을 선명하게 묘사해 관객이 영화 속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구성했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빨리 권력을 빼앗겼는지 궁금해서 당시 자료를 열심히 찾아본 적이 있어요. 어떤 일이었는지 윤곽은 알겠는데 그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는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제 생각대로 그날 밤을 재현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역사적 기록이 너무 많은 사건이지만 어떤 역사학자 말대로 사료가 많다고 해서 그게 다 진실은 아니잖아요. 실제 사건의 뼈대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제가 말하려는 주제를 재밌게 그려보고 싶었죠."

실제로 12.12 군사반란에 대해 다룬 자료는 많지만 정작 군사반란이 벌어진 9시간 동안 반란군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진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김성수 감독은 그 빈틈을 흥미롭게 재구성해 사실적이면서도 극적인 전개를 완성했다. 특히 가장 신경 쓴 건 반란군의 싸움이 승리의 기록으로 보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두광에 맞선 이태신의 강직한 신념과 군인정신을 또렷하게 그리는 데 집중했다.

"그날 중요한 결정들이 얼마나 개인의 소신에 따라 빠르게 진행됐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약간 과장했지만 당시 신념을 지켰던 진짜 군인들을 부각하면, 역으로 반란군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누군간 그러겠죠. 이미 다 끝난 게임인데 왜 바보처럼 명분을 지키느냐고요. 그런 순간에 주판만 튕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기 삶에 어떤 원칙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것 같더라고요. 그럴 때 내리는 판단이야말로 본인이 살아온 전 생애가 대답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그런 분들도 있었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랐어요."

긴박한 드라마 외에도 웅장한 규모감을 자랑하는 액션 장면들은 '서울의 봄'의 매력으로 꼽힌다. 특히 서울 세종로에 도열한 수많은 탱크와 병력의 대치 장면은 묘한 이질감과 긴장감 때문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명장면 중 하나다. 김성수 감독은 "1979년 12월12일의 세종로를 재현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광양에서 찍었어요. 허허벌판이라 모든 게 쉽지 않았죠. 자갈밭 위에 아스팔트를 깔아 도로 포장을 만들고 바닥에 금을 그어 도로처럼 만들었어요. 그 외엔 다 그래픽이었어요. 동원되는 인원도 많았어요. 큰 차량 뒤에 서 있는 역할로 많을 땐 150명 정도의 배우들이 왔는데 그들의 스케줄을 맞추는 게 전쟁이었죠. 당시 군인들이 시내에 들어온 장면을 찍은 사진 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각도를 거의 똑같이 맞춰 촬영했어요. 그렇다고 너무 다큐멘터리 같거나 너무 드라마틱해도 안 될 것 같아서 그 중간쯤에서, 마치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했어요. 그래야 관객들을 이 9시간의 소용돌이로 들어오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배우들의 폭발적인 열연은 '서울의 봄'을 완성한 키다. 황정민은 선 굵은 카리스마로 전두광의 끓어오르는 탐욕을 표현했고, 정우성 역시 진압군 이태신의 우직한 면모를 묵직한 호흡으로 그려내며 몰입감을 더했다. 김성수 감독은 '아수라' 이후 재회한 두 사람을 향해 무한한 믿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황정민 씨는 마법사죠. 저는 악보를 주고 황정민이라는 뛰어난 악기의 연주를 들을 뿐이에요. '아수라' 끝나고 2년 뒤쯤 '리차드 3세'를 봤는데 어마어마했어요. (황)정민 씨가 그 큰 무대를 혼자 채워요. 그로부터 3년 뒤에 그 연극을 다시 봤는데 훨씬 좋았어요. 뜨거운 난로를 켜놓은 것처럼 에너지가 무시무시했어요. '저 사람이 전두광이다' 싶었어요. 정우성 씨도 멋진 배우죠. 70년대의 리더는 대부분 남자답고 마초 같은 사나이들이었으니 이태신은 차분한 인물로 세우면 관객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정우성 씨가 그런 사람이기도 해요. 비 폭력주의자에 겸손해요. 특히 후반부에 이태신이 혼자 남아서 모든 걸 감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부턴 혼자 해결하길 바라서 저도 냉정히 지켜보기만 했어요. 배우가 그 역할을 외롭게 수행하면서 외로운 연기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우성 씨 입에서 '지독하게 외롭다'는 말이 나왔을 때 내심 느꼈죠. '아 잘되고 있구나!'"

한국 현대사의 운명을 바꾼 그날의 역동적인 이야기 끝엔 강렬한 엔딩이 기다린다. 영화 말미 김성수 감독은 신군부 세력의 얼굴을 하나하나 박제하는 듯한 장면을 스크린에 띄워 마지막까지 뜨거운 여운을 남긴다.

"포털에 군사반란을 검색하면 제일 먼저 뜨는 사진이에요. 그들이 그날 군조직을 장악하고 모든 직책에 자기 편을 배치한 뒤 기분 좋게 찍은 사진이죠. 그게 부끄러운 기록이 되길 바랐어요. 제가 많은 내용을 각색했지만 영화가 끝날 땐 다시 그 사진으로 돌아와서 관객들이 실제 역사를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 일종의 청유형 엔딩인 셈이죠. 제가 고3 그날 밤, 이 사건에 의구심을 느꼈듯 관객들도 '서울의 봄'을 통해 역사책을 열어보길 바라요. 감독으로서 원대한 희망이죠."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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