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국립대 총장선거와 학내 민주주의

최인호 충남대 교수회장 2023. 11.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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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충남대 교수회장

학생운동이 중심이 된 민주화투쟁의 결과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1987년 헌법개정에 의해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직후, 국립대는 '관선총장' 시대를 마감하고 교수들의 직접 선거로 총장을 선출하는 '총장직선제'를 처음 도입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교육부의 압박에 의해 일시적으로 폐지된 기간을 제외하고 이 전통은 유지되고 있다. 헌법상 기본권인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필수적인 대학의 자율성을 지탱하는 핵심적인 제도가 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직원, 조교, 학생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해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변모했다.

대학은 행정기관(관료조직)이나 사업조직(기업)과 달리 교육·연구기관이라는 특수성이 있어 총장과 구성원 간에는 일방적·수직적 관계가 아닌 쌍방향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평적인 관계가 필요하다. 진정으로 구성원을 대표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대학의 자율성(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총장은 구성원의 자발적 선택을 받아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총장직선제는 선거제도의 비효율성을 갖고 있지만, 이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다. 외부인사를 영입하거나 이사회에서 총장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전환된 다수의 사립대나 일부 국립대학법인의 사례를 보아도 그렇다.

그런데 학내 민주주의의 보루인 국립대의 총장직선제는 현재 위기를 맞고 있다.

첫째,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반값등록금정책으로 정부재정지원사업에의 의존도가 심화됨에 따라 지원조직인 대학본부가 관료화되면서 총장은 군림하는 존재가 되었다. 여기에는 총장을 통해 국립대를 통제하려는 교육부의 역할이 컸다. 대학평의원회, 재정위원회 같은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도 총장의 권한남용이나 부도덕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한다.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둘째, 국립대는 교육·연구자인 교수들이 중심이 된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권리의식이 점차 고양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평등주의에 입각한 직원, 조교, 학생들의 강한 투표권 확대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국립대의 총장은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서 '교원, 직원, 조교 및 학생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 의해 선출돼야 한다고 교육공무원법이 개정된 이후 투표반영비율을 놓고 국립대는 현재 미증유의 몸살을 앓고 있다. 개정 이전에도 학칙에 따라 4년마다 구성원 대표들 간의 합의에 의해 투표반영비율을 결정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정취지가 참여권을 현실화하는 것에 있고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한데도 교육공무원법 개정의 후폭풍은 거세다.

문제는 이로 인해 교수들의 중심적인 지위가 크게 흔들리고 있고, 구성원 상호 간의 갈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협상이 제때 타결되지 못해 총장공백사태가 장기화되거나 포퓰리즘에 선거운동은 혼탁해지고 있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총장직선제는 진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다수의 교수들은 현재의 총장직선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수들의 기득권이 위협받기 때문이 아니다. 극단적인 평등주의가 상아탑인 대학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수들에게 남아 있는 기득권이란 없어진 지 오래다. 처우는 나빠지고 있는 가운데 점점 커지는 실적의 압박과 행정적 부담 속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교수의 평균적인 자화상이다. 대학이 살려면 교육·연구라는 대학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 교수들의 주도적인 위치가 보장돼야 한다. 역할과 기능에 합당한 비중이 인정될 때 교수들이 위축되지 않고 자율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총장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학사·연구조직과 행정지원조직 간의 조화와 균형이 달성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필자가 보기에 대내외적인 여건의 한계로 인해 총장직선제를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것은 학내 민주주의에 대한 평균적인 교수의 생각을 전하고 싶어서다. 교육·연구기관이라는 대학의 특수성에 비추어 학내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방식은 국가와 사회의 정치체제가 작동되는 원리와 달라야 한다는 것을 외부에서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인호 충남대 교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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