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e스토리] '게임이 문화가 되길' 라이엇 게임즈가 10년 넘게 꾼 꿈

박상진 2023. 11.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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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5년 만에 열린 롤드컵이 막을 내렸다. 우승을 바라는 사람은 많았지만 실제로 우승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됐던 T1이 7년 만에 우승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아이콘인 '페이커' 이상혁은 통산 4회 우승과 더불어 최고령 우승자 기록을 갈아치웠다. 관련 사이트에 따르면 결승전 최대 순간 동시 시청자 수는 600만에 달했고, 결승전과 대회 누적 시청자 수는 역대 최고의 기록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T1뿐만 아니라 롤드컵을 주최한 라이엇 게임즈 역시 열세번째 롤드컵인 이번 한국 롤드컵을 사상 최고로 성공적인 롤드컵으로 생각할 것이다. 마치 88 서울 올림픽처럼 말이다. 그동안 정체되어 있던 16강 그룹 스테이지 방식을 스위스 스테이지로 만들면서 대회 구도에 다채로움을 더했고, 8강 녹아웃 스테이지 이후부터는 그동안 쌓여있던 스토리의 결말이 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공 외에도 이번 롤드컵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e스포츠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라이엇 게임즈, 적어도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는 한국 사업 시작부터 지속적으로 '게임은 문화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게임은 문화고, 우리는 문화의 힘을 믿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전하고 싶었다는 라이엇 게임즈 구기향 사회환원사업 총괄의 말처럼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70억이 넘는 재원을 들여 각종 문화재 사업을 진행한 것이 그 예다.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는 문화재청과 더불어 10년이 넘는 시간 총 6개의 국외 소재 문화재를 한국으로 들여왔고, 매해 일반 게이머들과 함께 문화재 보호 사업에 나섰다.
2019년에 개장한 롤파크 역시 게임은 문화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의 움직임이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 한복판에 위치한 종각에 위치한 롤파크는 매년 100일에 가까운 시간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리그인 LCK를 진행한다. 롤파크의 특징은 단순 제작 스튜디오가 아닌 복합 문화공간이다. 단순히 게임 경기를 치르는 곳이었다면 종로였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라이엇 게임즈가 만든 LCK라는 문화를 즐기고 전하기 위한 공간"이라는 이정훈 LCK 사무총장의 이야기처럼 라이엇 게임즈는 게임 뿐만 아니라 e스포츠를 통해서도 이를 단순한 게임 리그가 아닌 문화 그 자체로 만들기 위한 행보를 걸었다.
 
 

그렇다면 라이엇 게임즈는 왜 게임을 문화로 만들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을까. 최근 라이엇 게임즈의 대표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는 10년 넘게 흥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게임을 즐기는 연령대가 오르고 있다는 고민을 마주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뿐만 아니라 LCK 역시 시청자 연령대가 오르고 있다. 라이엇 게임즈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한다. 박원영 라이엇 게임즈 아시아 태평양 커머셜 파트너십 총괄은 이러한 상황에 관해 "리그가 성장하면서 팬들도 성장하고, 그 팬들이 다시 가족들과 LCK를 보고 경기장에 올 수 있도록 연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고 전한 바 있다.
게임이 단지 게임이고, e스포츠 리그가 단지 게임 대회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문화가 되면 이를 접하는 대중들의 반응이 달라진다. 한국 최고 스포츠 콘텐츠라고 불리는 KBO 리그 역시 하나의 문화다. 실제로 야구를 하지 않는 사람도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문화를 즐기기 위해 남녀노소 찾는 공간이 야구장이다. 게임이 문화가 되면 가족 단위의 팬이 찾기 시작한다. 팬들이 성장해 가족을 이루면, 그 가족이 다시 경기장을 찾고 새로운 팬이 생기는 것이다.
 

게임을 문화로 만들기 위해 이번 한국 롤드컵은 라이엇 게임즈에 있어 절호의 기회였다. 이전까지 한국은 여전히 게임에 관한 부정적인 시각을 무시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정도의 사건이 터지면 기존 방송사들은 어떻게든 게임과의 관련성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고, 피시방 접속 시간이나 접속 게임을 찾아내면 그것이 사건과 연결되었다고 호들갑 떨기에 바빴다. 어떻게든 게임의 부정적인 모습을 파내기 위해 멀쩡한 PC방의 전원을 내리고, 정치권 일각은 돈벌이에 바쁜 일부 의료 세력과 결탁해 게임을 질병으로 만들기 위해 그야말로 눈물겨운 억지를 부렸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도 선수들은 병역에 관한 자극적인 질문을 유도하는 기자들에 시달려야 했다. 어디 게임이나 해서 군대를 안 가겠냐는, 부정적 의도가 뻔히 읽히는 질문들이었다.
하지만 올해 추석 기간에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단번에 이러한 시각을 바꿨다. e스포츠가 첫 정식종목으로 선정된 이번 아시안게임은 겉으로 보기보다 더 많은 것이 걸린 대회였다. '한국대표'가 아닌 '국가대표'라는 명칭을 달고 '팀 코리아'로 첫 정식종목에 나선 e스포츠 종목에서 어떤 성적을 얻느냐가 이후의 분위기를 결정할 정도였다.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 기간 방송되는 e스포츠 경기는 그야말로 초유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스트리트 파이터 V 부분 김관우가 금메달 포문을 열었고, 김정균 감독이 지휘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 국가대표팀은 강적 중국을 꺾고 두 번째 금메달을 얻었다.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은 은메달을, FC 온라인의 곽준혁은 동메달을 획득했다. 일본과의 금메달 경쟁에 나섰던 한국으로는 e스포츠가 큰 힘이 되었고, 이러한 모습은 한국에서 게임과 e스포츠에 관한 인식을 단숨에 바꿨다.
 
 

아무리 좋은 분위기를 탔다고 해도, 이를 붙잡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기회를 놓치고 만다. 리그 오브 레전드와 LCK, 게임과 e스포츠가 한국에서 인식을 완전히 바꾸고 문화로 성장할 수 있을 다시 없는 절호의 기회를 라이엇 게임즈는 놓치지 않았다. 먼저 한국관광공사와 손을 잡은 라이엇 게임즈는 롤파크 인근의 하이커 그라운드를 롤드컵 기간 이를 알릴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롤드컵이 궁금한 대중들과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에게 하이커 그라운드는 K-컬쳐와 더불어 한국에서 롤드컵에 진출한 4개 팀의 소개, 그리고 롤드컵의 역사와 선수를 알리기 위한 마당이 된 것. 대회 중반 백현의 '하츠스틸'이 공개되며 관련 굿즈를 구하기 위해 하이커 그라운드는 다시 한 번 북적였다.
하이커 그라운드가 관광객에 포커스를 두었다면,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진행된 팝업스토어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사람들에게 롤드컵을 알렸다. 하이커 그라운드가 사전에 정보가 필요한 방문지였다면, 롤드컵 팝업스토어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대회에 관해 알렸다. 현장에 설치된 15미터 티모로 눈길을 끈 팝업스토어는 관련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 방문한 팬들을 물론 주말 쇼핑에 나선 대중들에게 라이엇 게임즈와 롤드컵이 가진 콘텐츠 파워를 보인 자리였다. 쇼핑의 중심지에 들어설 수 있을 정도로 이제 게임과 e스포츠의 컬쳐 파워가 강해졌다는 것을 전한 자리였다.
 
 

작년 여름 강릉 LCK 서머 결승이 대흥행을 거둔 이후 이번 LCK 서머를 앞두고 지자체들의 유치 경쟁은 보이지 않는 전쟁터였다. 그만큼 지자체들은 이미 LCK가 가진 컬쳐 파워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울특별시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예전에 없던 지원을 보이며 롤드컵 막판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한국 유일의 돔 구장인 고척 스카이돔 결승에 앞서 광화문 광장에서는 나흘간 펜페스타가 열렸다. 민간 기업에 처음으로 광화문 광장을 개방할 정도로 서울시의 지원 의지는 확고했고, 광화문 광장이 가지는 의미와 함께 이제는 누구도 게임이 문화가 됐다는 사실을 거부할 수 없게 됐다. 
세종대왕 동상 뒤에 선 15m 초대형 티모가 가지는 의미는 더욱 특별했다. 영화와 음악 등으로 인정받은 한국 문화의 기반은 한글이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 문화의 기반인 한글은 문화 위의 문화다. 모든 문화는 언어에 기반한다. 그렇기에 한글을 쓰고, 한국어로 말하며 형성되는 문화의 상징을 반포한 세종대왕 곁에 선 티모는 게임과 e스포츠 역시 이제는 모두가 인정하는 하나의 문화가 됐음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한국의 대표 수출 콘텐츠인 K-Pop으로 꾸며진 콘서트는 이러한 e스포츠의 위상을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한국은 이제 정치와 문화의 상징인 광화문 광장에서 e스포츠 행사를 여는 국가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한국 e스포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페이커의 T1이 7년 만에, 그리고 한국에서 열리는 롤드컵에서는 처음으로 우승했다. 8강에서 LCK가 모두 탈락할 수 있는 상황에서 홀로 살아남은 T1이 중국 세 팀을 잡고 우승하며 롤드컵은 역대 최고의 순간을 남기고 마쳤다. 몇 번의 좌절을 겪고 시간을 보낸 페이커의 우승은 대회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흥행 시나리오였다.
그러며 게임이 문화가 된, 라이엇 게임즈가 10년 넘게 준비해 온 시간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지난 시간 이들이 준비했던 노력이 없다면 지금 이 상황은 절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자사 게임의 흥행을 위하거나 아니면 전체적인 게임과 e스포츠의 발전을 위해서 준비했던 꿈이 드디어 이뤄진 순간이다.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게임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e스포츠를 향한 대중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예전보다 높아진 관심을 담으려면 롤파크 역시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할 단계다. LCK가 궁금한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공간은 롤파크가 유일하다. 하지만 롤파크에 방문해서 LCK와 리그 오브 레전드에 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적다. 롤파크가 가지는 의미와 역할에 관해 다시, 그리고 빠르게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다. 400명이 조금 넘는 수용 인원도 고민해야 할 단계다. 리그 초반 중요 매치는 롤파크를 벗어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할 정도로 LCK와 e스포츠를 향한 관심은 뜨겁다. 하던 대로 준비하면 지난 10년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다. 기회이자 위기인 상황이다.

모두가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 역시 필요하다. 리그를 만드는 구성원 모두가 커진 시장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야 계속 성장의 순환이 이뤄진다. 쉽지는 않겠지만, T1과 페이커에 몰린 관심도를 다른 팀들도 받을 수 있을 노력도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던 것 만큼 이제는 이후를 위한 빠른 준비가 필요하다. 이제 e스포츠는 또 다른 단계로 걸음을 내딛었다. 꿈이 현실이 되었지만, 그 현실을 위해 다시 꿈을 꾸어야 한다.
박상진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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