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석열이 형도 대통령인데…’ 생각하겠죠”
뽀얀 얼굴의 ‘보수 진영 아이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은 세단에서 내렸다. 2023년 11월21일 오전 11시15분 대전 중구 은행로 ‘한국이민재단 시비티(CBT) 대전센터’ 앞 큰길가에 모여 있던 지지자 수십 명이 ‘한동훈’을 연호했다. ‘사랑해요, 한동훈’ ‘한동훈 대통령’ ‘잘생겼다’라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취재진·유튜버를 포함해 100명 넘는 인파에 휩싸인 한 장관은 환하게 웃으며 15분가량 일일이 사진을 함께 찍고 사인을 했다. 팬클럽 모임 내지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일부 지지자는 지나가는 차량을 향해 ‘한동훈 파이팅’이라 쓴 피켓을 들어 올렸다. 나흘 전 대구 ‘스마일센터’ 방문에 이어 이날 대전에서도 지지자들의 열띤 응원을 받는 모습에 대해 법무부 한 관계자는 “한동훈 신드롬이네요”라고 말했다.
① 거침없는 입담에서 발견되는 오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언젠가는 제대로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어떤 공직자가 공직생활 내내 세금 빼돌려서 일제 샴푸 사고 가족이 초밥 먹고 쇠고기 먹었습니다. 그게 탄핵 사유가 됩니까? 저는 (탄핵 사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취재진이 더불어민주당의 ‘검사 탄핵’ 추진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한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한 장관 특유의 거침없는 입심이 또 한번 발휘됐다. 질문에 직접 답하기보다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언급하며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 쪽의 도덕성을 역공격한 것이다. 지지자들이 ‘사이다 발언’이라며 열광하는 지점이다. 현장을 찾은 한 시민은 한 장관을 만나 “너무 정직하시고 똑 부러지시고 할 일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화법은 논리적으론 ‘동문서답’에 가깝다.
언어·논리 전문가인 김준성 명지대 철학과 교수는 “논리학적으로 보면 한 장관의 평소 발언은 논점을 회피·일탈하는 경향이 강하다. 타깃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허수아비의 오류’ ‘인신공격의 오류’ ‘피장파장 오류’(Tu quoque)가 섞여 있다. 비판하는 사람에게 ‘문제 자체를 삭제하라, 판단을 중지하라’라고 하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주장 자체를 따지기보다 상대의 위선을 지적하는 방식의 논증 오류를 ‘피장파장의 오류’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의사가 환자에게 “술·담배를 끊으라”고 하면 환자가 “의사 선생님도 술·담배 하잖아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② 관료 장관의 팬덤정치
이번 한 장관의 대전 방문은 관료 출신 장관의 ‘CBT 대전센터 개소식 참석’으로 포장됐지만, 초읽기에 들어간 ‘정치 데뷔’를 앞둔 시점에서 여론 집중 내지 지지 세력 결집이 목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1월15일 한 장관 부인 진은정 변호사가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기도 했다. 한 장관은 이날 “운동권 정치인들이 겉으로 깨끗한 척하면서 재벌 뒷돈 받을 때 저는 어떤 정권에서든 재벌과 사회적 강자에 대한 수사를 해왔다”고 말했다. 11월17일 ‘보수 텃밭’ 대구에 방문할 땐 “많은 정치인들에게는 총선이 인생의 전부일지 모르지만,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는 대부분의 국민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늘 그 일을 열심히 하려고 (대구에) 온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인이 총선에 목매는 데 비해 그는 그렇지 않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날 한 장관의 화법이 ‘여의도 문법과 다르다’는 질문에 대해 “여의도에서 일하는 300명만 쓰는 고유의 어떤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문법이라기보다는 사투리 아닌가요. 저는 나머지 5천만이 쓰는 언어를 쓰겠습니다”라고 차별화했다.
11월17일 대구에 이어 21일 대전, 24일 울산 방문 등 전국을 도는 광폭 ‘정치 행보’에 대해선 “국회 일정이 바빠서 전임 장관들에 비해 현장 방문 횟수가 적은 편”이라고, 대구 방문 때 지지자들과의 적극적인 스킨십에 대해선 “선의로 계신 분들에게 제가 별거 아닌 성의를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검사장 출신 ㄱ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법무부 장관은 법을 다루는 사람인데, 공정한 게 기본이에요. 국민의힘 사람처럼 행동하고 민주당에 대해 적개심을 드러내니까 검찰이 뭘 수사하든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거 아닙니까. 장관직을 그만두고 특정 정당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자기가 그동안에 한 업무의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뭐 이런 얘길 하면 ‘문재인 때도 그랬다’며 들으려 하지 않겠지만.”
③ 알맹이는 ‘윤석열 2탄’
한 장관은 ‘새로운 정치인’일까. 이날 한 장관은 즉석에서 10분 이상씩 외국인 이민 정책 등에 대해 막힘없이 설명했고, 기자들 질문도 모두 소화했다. 티브이(TV)조선 생방송에서 프롬프터 고장으로 2분 이상 침묵했던 윤석열 대통령(당시 대선 후보)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안경·넥타이·머플러 등 한 장관의 패션 감각도 언론에서 관심 있게 다룬다. 이날도 대동한 법무부 간부들이 모두 전형적인 양복 차림인 데 반해 한 장관은 밤색 양복에 검은 셔츠와 노타이에 긴 머플러를 목에 둘렀다.
하지만 이런 겉모습과 달리 알맹이는 ‘윤석열 2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한 장관에 대해 “술 안 마시는 윤석열”이라고 규정했다. “화려한 언변 때문에 새로운 인물이고 중도층에 먹히는 확장성 있는 카드라고 얘기되지만, 윤석열 정권의 한계를 그대로 한 장관이 보여주고 있어요. 비판에 대해 ‘(비판하는) 너는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느냐’는 식은 윤석열 대통령이 즐겨 쓰는 대응이죠.” 대구 방문(11월17일) 때도 갑자기 대구 시민을 존경한다면서 들었던 세 가지 이유를 보세요. △6·25 때 적에게 도시를 안 넘겨줘서 △산업화를 이끌어서 △더위를 이겨내서라고 하잖아요. 결국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죠. 한동훈 등판은 황태자가 차기(대통령)가 되는 그런 코스인 거죠.”
④ 한동훈 정치 입문
한 장관은 이날 총선 출마 여부를 묻자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정치가 아닌 자기 일을 하고 여의도 사투리를 쓰지 않지만 그의 총선행은 정해졌다. 이미 후임 법무부 장관 인사 검증 절차가 시작됐고, 여권에서도 한 장관의 국민의힘 입당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한 장관은 왜 정치하려는 걸까.
ㄴ검사는 “검찰 분위기를 알면 답이 나온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서열화하고 인사를 잘 받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 검찰 아닐까 합니다. 인사를 잘 받는 것의 최고 정점은 대통령이죠. 회식하면 검사들이 폭탄사를 하면서 부장·검사장을 보고 ‘총장 하십시오. 장관 하십시오’ 덕담하면 다른 검사가 ‘대통령 하십시오’라고 할 때가 있어요. 어떤 버거운 책임·의무를 다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기회가 되면 더 높이 올라가겠다는 거죠. 그러니 퇴직하면 국회의원 하려고들 애쓰는 거죠. 스스로 ‘검찰 1등’이라고 생각하는 한 장관 입장에선 이명박·박근혜 수사를 하면서 ‘이런 사람도 대통령인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요즘은 ‘석열이 형도 대통령인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김민하 평론가도 “한 장관은 아직 자신이 왜 정치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싶은지 자기 사명에 대해 밝힌 적이 없어요. 정치를 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윤 대통령과 함께하다가 자연스럽게 법무부 장관이 됐고, 반쯤 정치인이 돼 있고, 자신이 이 정권의 핵심임을 인식하고 있는 거 같아요. 다른 장관들과 달리 정치적 쟁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면서 역할을 하고 있고요. ‘이번 정부의 성공을 위해 총선 출마를 해야 하나? 못할 건 없다’라는 경로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정치로 나아가는 포부의 한 토막일까. 이날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파격적인 인센티브 정책을 설명하면서 한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본성에서 사람이 자기 이익에 맞는 행동을 할 때 선한 결과가 나오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 1년 6개월 마약과의 전쟁, 시행령을 통한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회복) 등을 중심적으로 추진한 한 장관은 최근에는 법무부의 이민청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이민정책을 요약하며 한 장관은 “우수 인재는 모셔오고 불법체류자는 엄단”하겠다고 말한다. ‘선한’ 결과의 사다리를 밟고 온 한동훈 장관이 바라보는 ‘선함’에 대한 판단은 이미 화석처럼 굳어진 걸까.
대전=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소년 등과’한 귀족 검사
1973년생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서울 강남 8학군 출신(경원중·현대고)에 서울대 4학년 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1995년 제37회).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군법무관으로 복무한 뒤 2001년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에 초임 발령을 받았다. 초임 검사로는 파격적으로 금융·증권 관련 비리를 다루는 특별수사부인 ‘형사9부’에 발령받아 2003년 에스케이(SK) 최태원 회장을 회계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하는 데 기여한다. 이후 대검 중앙수사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법무부 검찰국 등 상급기관에서 요직을 섭렵했다. 대학 4학년 때 고시 합격한 ‘소년 등과’ 출신에, 특별수사·기획 쪽 ‘엘리트 검사’인데다,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이 장인으로 든든한 뒷배 역할을 해온 까닭에 한 장관은 ‘귀족 검사’로 불렸다.
2016년 ‘박근혜 국정농단 특검’(박근혜 특검)에 발탁된 것도 현대자동차 비자금을 수사했던 2006년 대검 중수부에서 박영수(당시 대검 중수부장) 전 특검, 윤석열(당시 중수부 연구관) 대통령 등과 맺은 인연이 큰 역할을 했다. 이 특검 경험은 한 장관에게는 인생의 대전환점이었다. 윤 대통령 곁에서 서울중앙지검 3차장(2017년), 대검 반부패부장(2019년)을 지내며 이명박 대통령, 양승태 대법원장 등을 구속해 이름을 날렸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2년가량(2020~2022년)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 등 비수사 부서를 거치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 최연소 법무부 장관에 임명돼, ‘소통령’ ‘황태자’ 등으로 불리며 이번 정권의 핵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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