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안전벨트를 닫아주십시오”

강구열 2023. 11. 2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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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주요 시설 한국어 표기 있어
김해공항 버스노선엔 일어 ‘無’
한국 찾는 관광객 증가세 맞춰
성의 있는 외국어 안내 늘려야

지난 24일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 좌석에 일본어, 영어, 중국어와 함께 한국어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안전벨트를 닫아주십시오.”

안전벨트를 하라는 의미야 금방 알겠으나 표현이 영 이상했다. ‘할 거면 제대로 하지.’ 쓴웃음이 났다. 일본에서 이런 한국어 표기를 가끔 본다. 얼마 전 갔던 한 호텔 식당은 테이블 정리를 빨리하려는 것인지 식사가 끝났다는 걸 알리는 용도의 손바닥만 한 푯말을 손님들에게 나눠주는데 ‘뒤집어 주세요. 끝나게 되면’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본에서 간단한 한국어 표기, 안내문을 보는 건 어렵지 않다. 지하철, 고속버스, 공항 등 주요 교통시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대형 쇼핑시설에는 어김없이 있다. 대체로 잘 정리되어 있지만 어색한 표현도 종종 눈에 띈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같은 날 오후 1시쯤 도착한 김해국제공항. 정류장에서 부산 시내로 가려는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안내원이 버스 노선을 안내하고 있었다. 일본어를 모르는 안내원은 노선도의 특정 버스 번호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또박또박 읽어주었다. ‘서, 면, 남, 포, 동, 버, 스.’ 일본어로 된 부산·경남 지역 관광 지도를 든 다른 일본인 여성에게도 그랬다. 그렇게 하면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꽤 열심이긴 한데 그게 다여서 우스꽝스러웠다. 그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노선도에는 일본어가 한 글자도 없었다. 영어가 일부 있긴 했는데 경유지, 종점은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어 외국인에겐 도움될 게 없겠다 싶어졌다.

고개를 주억거린 일본인들은 안내원의 설명(?)을 이해한 것일까. 지도를 들고 있던 일본인 여성이 버스를 기다리는 10여 분 사이에 지도와 노선도를 여러 번 확인하는 걸 봐선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행선지를 제대로 찾아갔을 것이다. 인터넷에 연결된 휴대전화만 있으면 세상 어디라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가져도 좋은 세상 아닌가.

그래도 불편하고 불안하긴 했을 것이다. 지도앱이 아무리 좋아도 실제와는 차이가 있다. 알려주는 경로가 맞는지 확신이 안 서기도 한다. 이럴 때 자국어 안내판은 확실한 길잡이가 된다.

한국 사회가 일본인에게 무성의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어 표기를 볼 때 한국인에 대해 일본 사회가 드러내는 최소한의 성의나 존중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일본을 찾은,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을 중요한 손님으로, 혹은 일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여기는 마음을 표시한 것이라고 해도 좋겠다.

발길 닿는 곳마다 일본어 표기를 하는 거야 불가능하다.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부산·경남 지역을 찾은 일본인에게 관문 역할을 하는 김해공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김해공항 국가별 여객운송 비중 중 일본은 36%를 차지해 가장 크다. 이런 곳의 버스 정류장 사정이 이래서야 나리타공항행 버스 안에서 본 ‘안전벨트를 닫아주십시오’란 한국어 표기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던 게 민망해진다. 김해공항의 다른 일본어 서비스는 괜찮을까 싶어지기도 했다.

일본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을 찾는다. 한국의 문화 역량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면서 한국을 동경해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앞으로도 그러길 바란다. 그런데 우리는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걸까.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한국이 공항이고, 공항에서 출발해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그들이 많이 찾는 곳, 가고 싶어하는 곳을 얼추 알고 있다. 그런 곳을 중심으로 외국어 안내가 얼마나 충실한지, 표기는 제대로 하는지를 상시로 점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효과가 크다.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이 되면 모국어가 주는 편리함과 반가움이 얼마나 큰지를 금방 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그것을 많이 경험할수록 자신들을 대하는 한국의 성의, 존중도 크게 느끼고 다시 오고 싶은 나라가 될 것이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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