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 방송 3법, 악마는 ‘디테일’에
공영방송사 이사 추천권을 다양화하는 ‘방송 3법’ 개정안이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해 대통령 재가만 남았다. 국회가 2명, 시청자위원회가 4명,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가 6명, 직능단체 3개(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를 위해 방송법 등 관련법 3개를 고쳐야 해서 ‘방송 3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당 반대 속에 많은 이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예상한다.
이사회란 업무집행에 관해 의사결정하는 곳이다. 그런데 한국 공영방송 이사회는 정파 간 다툼 장으로 변질해 있다. 오죽하면 법원이 공영방송 사장 해임 관련 판결에서 이사들을 구분하며 ‘여권 성향’ ‘야권 성향’이란 말을 썼겠는가! 정파적 목적을 위해 회사가 잘못돼도 상관없는 듯한 이사가 회의 석상에서 기행을 보이기도 한다. 이사회가 일상으로 편 갈라 대립하는 자기파멸적 기업이 어디 또 있을까?
영국의 경우, BBC 이사회의 이사장을 포함한 비상임 4명은 정부가 추천한 각 지역 대표자들이다. 나머지 이사 9명은 이사회 스스로 뽑는데 이에는 사장과 보도본부장 등 상임 집행임원 4명도 포함된다. 즉, 비상임 이사와 상임 집행임원이 섞여 함께 의결한다. 한국처럼 이사들이 국회 상임위처럼 둘러앉아 사장 등 집행임원이 자신들과 정파가 다르면 추궁하고, 같다면 감싸는 곳이 아니다. 주요 정당들과 가까운 인물을 이사로 뽑기도 하지만 그는 당이 보낸 대리인이 아닌 BBC를 위한, 정당과의 소통역이다. 이사는 정파 충성도가 아닌 업무 수월성으로 평판을 쌓아가는 명망가다.
‘방송 3법’은 독일 모델을 빌린 듯하다. 독일 공영방송사 이사회 격인 ‘방송평의회’는 사회집단 대표성을 중요시해 많게는 위원 70여명으로 구성한다. 사회단체와 직능단체, 정당, 종교단체 등 다양한 집단이 평의원 추천권을 갖는다. 서구 공영방송 거버넌스로서는 독특한 방식이다. 독일 사회 구성 전통과 2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독일의 전체주의 부활을 막기 위해 구상한 분권형 방송 시스템의 복합산물이다.
방송 규제기구에서 정부 지분을 줄이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사를 임명(MBC·EBS) 또는 추천(KBS)하게 돼 있지만, 실제로는 여야가 법에 없는 추천 권한을 나눠 행사한다. 정치종속의 통로인 국회 지분도 줄이자는 게 이번 ‘방송 3법’의 취지다. 하지만 이것은 독일 모델과도 다르다. 사회집단 대표성이 아닌, 방송 전문성 중심이라는 더 독특한 방식이다. 사실, 방송현업자나 방송학자라고 해서 다 ‘방송 경영’의 전문가인 것은 아니다. 이들의 전문성은 방송 경영의 일부분일 수 있다. 다양한 집단을 대표하지 못한다면 시민대표인 국회 지분을 가져올 명분도 약해진다.
악마가 거주한다는 ‘디테일’ 문제도 살펴야 한다. 이사 6명을 추천하는 학회는 방통위가 선정한다. 크고 작은 여러 학회 중 방통위원 다수의 정파에 우호적인 것을 고를 확률이 높다. 심지어 위성학회(?)는 왜 만들지 못하겠는가! 이사 4명을 추천하는 시청자위원 선정권은 경영진에 있다. 잘 통하는 위원들을 뽑아, 경영진 쪽 정파 사람을 추천하게 할 수 있다. 사장 선임에 일반시민 100명으로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를 만들어 후보를 추천하게 한다는데, 이 기구 구성과 운영도 이사회 권한이다. 다수 이사가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간 있던 일들로 보면 ‘설마’란 없다.
이번처럼 정권이 기존 방통위원이나 방송사 이사 등을 마구 자르고 각 조직을 새로 만든 뒤라면 이런 문제점들은 더 두드러질 것이다. 이번 건과 상관없이도 어차피 ‘막무가내 해임’ 방지책이 필요하며, 혹시나 윤 대통령이 방송 3법을 재가한다면 ‘디테일’ 등 관련 보완입법을 해야 하겠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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