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정신병동에 진짜 아침이 오려면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우울증, 조울증, 망상, 공황장애 등 현대인이 겪는 정신질환을 매회 담아간다. 어떤 경계를 왔다 갔다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담은 드라마로 호평받고 있다. 그 경계에서 왜 선뜻 치료에 나서거나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지 드라마 속 공황장애를 겪는 대기업 신입사원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내 정신 하나 제대로 컨트롤 못하는 나약한 놈으로 보이잖아요.”
성인 4명 중 1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할 만큼 정신질환은 흔한 질병이다. 장애 등록된 10만명의 정신장애인에 51만명의 추계 중증정신질환자를 더하면 61만명이 병원이나 정신요양시설, 그리고 지역사회 안에 살고 있다.
유엔과 세계보건기구에서 권고한 인권 기준에 따라, 선진국들은 당사자를 위한 인권친화적 치료환경을 ‘지역사회’에 조성하여 병원이나 시설 수용이 아닌 지역사회 기반의 치료와 회복 여건을 만들고 있다. 치료 과정 안에 여러 대안적 선택지를 두고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지원하여 비자의 입원이나 강제 치료를 지양하는 중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병원이나 시설에 장기 입원하는 방식에서 제자리걸음이다. 한국 정신·행동장애 환자의 평균 재원 기간은 약 200.4일로 세계 1등인데, 2등 스페인에 비하여 140일이나 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들의 평균은 32.5일에 불과하다. 비자의 입원 문제를 해결하려 법을 개정했더니 의료수가 문제와 맞물리며 응급 또는 급성기 치료를 담당할 상급병상이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양질의 초기 집중 치료 기회를 놓치고 정신질환을 만성화해 결국 장기 입원을 낳는다.
병원 시설이나 서비스 수준도 갈 길이 멀다. 보건복지부는 정신의료기관 평가 사업에 따라 2012년부터 3년마다 의무적으로 정신의료기관을 평가하고 있으나 평가 주기를 거듭하면서 합격률이 급감하고 있다.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별다른 인센티브도 없고, 평가에 탈락해도 아무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발병부터 퇴원 이후까지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개별회복 지원이 필요하다는 큰 방향엔 이견이 없으나, 그 방향으로 사회적 인프라를 전환하려는 노력은 더디다.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된 정신질환 통합사례관리가 가능해지려면 주거복지, 고용지원, 동료지원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다.
정신건강 문제를 의료적으로 처리하여 병원과 시설에 환자를 가두는 방식은 참 편리하다. 정부는 많은 예산을 들이지 않아도 지역사회에 ‘돌아다니는’ 정신질환자를 줄일 수 있으니 좋고, 비질환자 입장에서는 나라에서 알아서 정신질환자를 격리해주니 좋다. 병원이나 시설의 운영자는 다루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봉사한다는 칭찬을 받으며 정신질환자 숫자대로 운영비를 지원받으니 좋고, 가족 등 정신질환자의 주변인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무거운 부양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이 모든 편리함 안에 정신질환자의 삶 속 존엄이 함께 고려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을 토대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작년 가을 대한민국에 심리·사회적 장애인이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치료에 종속되지 않도록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 모니터링에 중요한 역할을 할 동료지원센터나 동료지원쉼터 등 당사자단체에 대한 예산 지원은 내년에도 거의 없는 수준이다. 일상생활을 이어가다가 정신질환의 급성기가 찾아올 때 병원 대신 갈 수 있는 위기지원 쉼터가 시군구마다 하나씩만 설치되어 있어도 동료 상담가의 지지와 안정화를 통해 위기를 넘길 수 있는데 말이다.
연말을 맞는 것이 고통이고 아픔인 사람들이 있다. 정신질환도 여느 만성질환처럼 삶의 터전에서 치료받으며 다스릴 수 있을 때, 그 삶에도 진짜 아침이 올 수 있지 않을까.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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