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새로 뽑을 대법원장에 대한 기대와 염려
법원 만만히 보이지 않을 첩경은
국민의 편에 선다는 평가 받는 것
법원이 망가진 믿음 되찾기 위해
새로 취임할 대법원장이
지켜야 할 자세도 이것이다
원론적으로 말해서 사법부의 독립이란 것은 도구적 개념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올바른 판결을 하기 위한 도구이며 가치중립적 원리라는 것이다. 그 독립은 법원이 책임성에 기반을 두고 사법권을 행사할 때 비로소 존재이유를 가진다. 달리 말해서 사법부의 독립은 좋은 판결을 하라고 보장하는 것이지, 나쁜 판결에 대한 방호벽을 준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사법부 독립은 법관들이 제대로 된 재판을 한다는 믿음, 어찌 보면 재판에 대한 역사적 경험이나 통계적 인식에 기반을 둔 장치다.
그러나 현실 상황에서 정치권은 늘 이해관계에 따라 법원의 판결에 이런저런 정치적 평가를 내리고 비난하거나 추켜세우는 행태를 반복한다. 질 낮은 정치권력은 아예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든다. 이런 헌법현실이나 독재정권 아래에서의 역사적 경험은 사법부 독립을 단순한 도구적 개념이 아니라 사법부의 존재이유를 근거 짓는 원리로 인식하게 했다. 그래서 대법원장의 취임사에서마다 되풀이 강조되는 사법부 독립은, 때로 힘없고 맥락 없는 구호로 들리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패배주의적 시각에서 그저 하나의 수사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명제다.
물론 나는 사법부가 현실적으로 정치권력과 완전히 무관하게 또는 초연한 자세로 자기 자리를 지키는 존재라거나 그런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임명권을 다름 아닌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우리의 헌법 체제가 그런 생각이 순진한 오해임을 증명한다. 또 하나, 법원은 고질화된 재판 지연과 인적 물적 자원의 부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의 비극은, 공소사실대로라면 그 사건 피고인들이 사법행정의 책임자로서 상고법원의 설치를 위해 정치권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려는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사법부 독립의 가치를 무너뜨렸다는 점에 있다. 재판을 잘해 보겠다고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모순적 상황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사법 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국회는 물론이고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정치권력의 이해와 협조 얻기가 필수적이다. 그 과정에서 사법부 독립을 위태롭게 할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다른 한편 헌법은 분명 법관의 독립을 규정하고 있다. 또 사법부는 정치학적으로 통치구조 내에서 제동력을 부여받은 부서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권력의 추동력을 제어하는 장치의 작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현실적 타협점은 이렇다. 대법원장은 정치권력에 의해 임명되기는 하지만, 일단 임명되어 헌법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할 때에는 헌법이 말하는 핵심적 가치를 지키는 데 양보가 없어야 하고, 권력이 그 가치를 훼손하려 들 경우에는 헌법에 대한 충성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자기를 사법부 수장으로 만들어 준 고마운 권력에 대한 대법원장의 정치적 의리나 협조는 그 범위 내에서 이차적 의미를 가질 뿐이라는 것이다. 헌법이 핵심적 가치를 위해 사법부에 부여한 역할은 무엇인가. 민주정과 민주주의 원리를 수호하고, 표현의 자유와 노동삼권을 비롯한 기본권을 보장하고, 기득권과 다수의 횡포로부터 사회적 소수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낮았던 법원에 대한 신뢰가 사법농단 사건으로 땅에 떨어져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나는 어느 법조 원로로부터 법원이 아무리 잘해도 20년은 지나야 신뢰가 종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새 대법원장의 우선적 책무는 바로 이 신뢰 회복을 위해 진력하는 일이다. 닳고 닳은 말이지만, 법원이 갈 길을 이보다 더 제대로 가리키는 말은 없다.
법원은 정치권 어느 세력에도 만만히 보여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법원은 정치 세력이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개개의 사건에서 판결을 내린 법관을 ‘권력의 시녀’니 ‘살아 있는 양심’이니 따위의 언사로 때로 비난하고 때로 부추기는 행태에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다. 편향된 언론의 공격이나 부추김에 흔들려서도 안 된다.
오늘날 국민은 엉터리 짓거리에 속아 넘어가는 바보가 아니다. 법원이 만만히 보이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제나, 하다못해 대체로라도 권력 아닌 국민 편에 선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통치구조의 삼부 중 ‘칼도 없고 지갑도 없는’ 법원이 심하게 망가진 믿음을 되찾고 살아남기 위해, 새로 취임할 대법원장이 지켜야 할 자세도 이것이다. 권위주의 정부 아래에서 새로 등장하는 대법원장마다 취임사에서 법관들의 ‘국가관’을 운위하며 권력의 편에 서라고 주문하던 모습, 한심하지 않던가. 그래서 새로 대법원장 자리에 앉을 인물에게는 기대도 크고 염려도 크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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