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위안부 판결 시정” 으름장…박진 “합의 존중” 동문서답

신형철 2023. 11. 2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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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외교장관이 26일 부산에서 4년3개월 만에 회담했으나 향후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일정을 잡지 못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한-일, 한-중 양자 외교장관 회담도 했는데, 일본 쪽은 한국 법원의 '위안부 재판 결과'에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했고, 중국 쪽은 9·19 남북군사합의 무효 선언에 관해 한국과 이견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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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박진 외교부 장관(가운데)과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왼쪽),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누리마루아펙(APEC)하우스에서 열린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를 하기에 앞서 손을 맞잡은 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번 회의가 열린 것은 2019년 8월 이후 4년3개월여 만이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중·일 외교장관이 26일 부산에서 4년3개월 만에 회담했으나 향후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일정을 잡지 못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한-일, 한-중 양자 외교장관 회담도 했는데, 일본 쪽은 한국 법원의 ‘위안부 재판 결과’에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했고, 중국 쪽은 9·19 남북군사합의 무효 선언에 관해 한국과 이견을 나타냈다.

이날 오전 한-일 장관회담 직후 일본 외무성은 보도자료를 내어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은 2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국제법상 ‘주권면제 원칙’이 부정되고 원고의 소를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진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재차 촉구했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민사33부(재판장 구회근)는 지난 2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16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 법원의 각하 판단을 취소하고, 청구 금액 전부를 일본 정부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외교부는 보도자료에서 이런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외교부 관계자는 ‘박진 장관이 위안부 판결과 관련해 어떤 의견을 일본에 밝혔냐’고 기자들이 묻자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양 국가 간의 공식 합의로서 존중하고 있다고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법원의 결정에 일본이 유감을 표명했는데도 그와 관련한 직접적인 답변 없이 ‘동문서답’을 한 셈이다. 한-일은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5년 12월28일 이 합의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종결됐다’고 선포한 바 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 이어 열린 한-중 외교 장관회담에서는 양국이 한반도 관련 현안을 두고 이견을 보였다. 박 장관은 9·19 남북 군사합의 일부의 효력을 정지한 것은 “국민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적 조처”라며 “북한이 9·19 군사합의에 구속되지 않고 추가 도발을 위협하고, 그 책임을 우리 쪽에 전가하는 태도를 분명히 지적했다”고 말했다고 외교부 관계자가 전했다. 그러나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각 주체가 냉정을 유지하고 정치적 해결의 큰 방향성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중국 쪽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진 3국 장관회의를 마친 뒤 박 장관은 “세 장관은 3국 협력을 조속히 복원하고 정상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은 한·중·일 정상회의와 관련해 “3국이 상호 편리하고 가장 빠른 시기에 개최하자”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을 뿐 개최 날짜를 결정짓지 못했다.

이에 따라 한·중·일 정상회의는 당초 정부가 올해 안에 열릴 것이라고 예고했던 것과 달리 내년으로 밀릴 것으로 보인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3국 외교장관회의 개최 직전 연합뉴스 티브이(TV)에 출연해 “(3국 정상회의 연내 개최의) 문을 닫진 않았지만 지금 연내 열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외교부 당국자도 3국 외교장관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3국 정상회의 개최와 협력 복원 및 정상화에 대해 왕이 부장 또한 여러 번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다”면서도 “여러 가지 고려 요인이 있기에 이번 회의에서 개최 날짜를 정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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