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권 "드랙 캐릭터 연기요? 특이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죠"
조건 없는 사랑 보여주는 '엔젤' 역
"어릴 땐 '별종'이라는 말 들었지만
지금은 신이 주신 재능이라 생각해
엔젤처럼 자신 안에서 행복 찾길"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저는 ‘I’(MBTI 지표 중 내향적인 성격)인 사람들과 있으면 ‘E’(외향적인 성격)가 되고요. 반대로 ‘E’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I’가 돼요.”
배우들과 삶과 사랑 고민 함께 나누며 공연 준비
이번 작품에서 조권이 맡은 역할은 에이즈에 걸린 ‘엔젤’. 의상과 분장으로 성적 정체성을 표현한 여장남자 ‘드랙 퀸’(Drag Queen) 캐릭터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연상케 하는 녹색 치마에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등장해 ‘천사’라는 이름 그대로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조권은 ‘렌트’ 초창기부터 엔젤 역을 연기해온 뮤지컬 배우 김호영과 같은 역할을 맡았다.
“2001년 JYP엔터테인먼트에 연습생으로 들어갔어요. 저랑 동갑인 선예(원더걸스 선예)와 같이 연습생 생활을 했죠. 어느 날 선예가 ‘렌트’를 보고 오더니 저에게 ‘엔젤 역의 김호영이라는 오빠가 너무 예쁘고 잘 하는데 네 생각이 나더라’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 ‘렌트’를 보진 못했지만 선예 덕분에 마치 공연을 본 기분이었죠. 시간이 흘러 호영이 형이랑 같은 역할을 맡아 바톤 터치를 하게 돼 기쁘고 또 감사했어요.”
‘렌트’의 진짜 힘은 작품 속 인물처럼 배우들 또한 각자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함께 공유하며 이를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인다는 점에 있다. ‘렌트’ 연습과정 중 하나인 ‘테이블 워크’가 그렇다. 테이블 워크는 모든 출연진이 연습실에 둥글게 모여 앉아 각자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시간이다.
“저는 어린시절 이야기를 했어요. ‘별종’이라는 말부터 ‘여성스럽다’, ‘특이하다’, ‘뭔가 틀린 것 같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죠. 남들이 보기에 너무 튀다보니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런 저의 모습이나 성향이 특이한 게 아니라 ‘특별’한 거라 생각해요. 제가 이번 작품에서 엔젤을 연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자 동력이기도 하고요. 엔젤은 자부심이 강하고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인물이에요. 엔젤처럼 자기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브로드웨이 공연 영상 보고 굽 높이 12㎝ 올려
“제게 중요한 건 뮤지컬 활동을 놓을 수 없다는 거예요. 라이브로 공연하는 뮤지컬이 주는 ‘살아 있음’의 힘이 너무나 크거든요. 드랙 캐릭터는 신이 저에게 내린 재능, 달란트(소명)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반짝이게 만들 수 있는 역할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어요. ‘조권이라서 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는 아티스트가 되는 게 목표예요.”
공연제작사 신시컴퍼니에 따르면 엔젤 역을 맡은 배우는 보통 굽 높이가 6~7㎝인 신발을 신는다. 그러나 조권이 신는 신발의 굽 높이는 무려 12㎝에 달한다. 조권은 “브로드웨이 공연 영상을 보니 굽 높이가 그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며 “엔젤을 사랑하는 만큼 굽 높이를 올렸다”며 웃었다. 엔젤에 대한, ‘렌트’에 대한 그의 진심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다.
‘렌트’는 내년 2월 25일까지 공연을 이어간다. 언젠가는 ‘헤드윅’, ‘킹키부츠’ 등의 뮤지컬 속 또 다른 드랙 캐릭터로 조권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헤드윅’은 제가 30대 중반을 넘어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에요. 그때가 되면 그동안 축적한 수많은 경험치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킹키부츠’도 달란트를 살려 해보고 싶은 작품이에요. 물론 캐릭터를 더 잘 표현하려면 지금보다 근육을 조금 더 키워야겠죠? 하하하.”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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