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 파일로, 여왕의 귀환... 그의 판매 전략도 성공할까? [패션 에티켓]
편집자주
패션 기획 Merchandizer이자 칼럼니스트 '미키 나영훈'이 제안하는 패션에 대한 에티켓을 전달하는 칼럼입니다. 칼럼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여 근사한 라이프 스타일과 패션을 만드는 데 좋을 팁을 편안하게 전해 드립니다.
5년 전 프랑스 명품 패션 브랜드 ‘셀린느’(CELINE)를 떠난 뒤 휴식기를 가졌던 피비 파일로(Phoebe Philo)가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피비 파일로’를 들고 2023년 10월 복귀했습니다. 이미 2021년부터 LVMH의 투자를 받으며 예열 기간을 거쳤던 이 브랜드는 독특하게도 영국, 유럽, 미국 3개 지역에 한정해 온라인으로만 오픈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온라인 사이트를 오픈하자마자 대부분의 상품이 품절됐습니다. 가방 하나에 1,000만 원이 넘는데도 말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팬덤을 소유한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는 누구이며 그녀의 복귀가 가지는 의미와 컬렉션에 대해 알아봅니다.
피비 파일로는 누구?
영국 출신의 1973년생 패션 디자이너입니다. 유명한 패션 스쿨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뒤 끌로에(Chloe)에 스텔라 매카트니의 조수로 입사, 이후 디렉터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피비 파일로가 디렉터로 있던 기간, 끌로에는 무려 매출이 4배 이상 올랐고, 패딩턴 백이라는 잇 백(It bag)으로 메이저 브랜드 반열에 올랐습니다.
가족과 출산에 집중하고자 2년간의 공백을 가졌던 그녀는 2008년 셀린느의 디렉터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10여 년간 셀린느에서 유명한 클래식 박스, 러기지 백, 트리오 백 등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 냅니다. 그녀의 합류는 당시 침체기였던 셀린느를 ‘빅 패션 하우스’ 중 하나로 거듭나게 만들었습니다.
피비 파일로의 패션은 당시 여성들에게 도회적이고 세련된 미니멀한 스타일을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이 상품들이 이제는 ‘올드 셀린느’라 불리며 중고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녀에 대한 팬들의 충성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피비 파일로의 복귀가 가지는 의미
그의 복귀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습니다. 스트리트 브랜드와 어글리 슈즈가 상당기간 패션 트렌드를 주도했습니다. 그런데 1년 전부터 이와 반대되는 성향의 '올드 머니 룩'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점차 스트리트 패션에 지치기 시작한 데다, 클래식에 대한 소구가 다시 올라오면서 비롯된 현상이라 판단됩니다.
그리고 ‘올드 머니 룩’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의 재등장은 스트리트 패션이 주류에서 한 걸음 물러나고, 클래식하고 미니멀한 패션이 다시 돋보이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잠깐의 트렌드로 스쳐갈 뻔한 올드 머니 룩을 주류 트렌드로 끌어올린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브랜드들이 이전 시즌보다 클래식하고 미니멀한 스타일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성복은 Y2K(2000년대) 스타일의 화려함보다는 더 미니멀한 스타일이 나올 것이고, 남성복 또한 젠더리스하면서 클래식한 요소를 표현할 것입니다.
피비 파일로 컬렉션의 스타일과 전략은?
지난 10월 온라인에 공개된 피비 파일로의 컬렉션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과거의 컬렉션이 클래식하고 미니멀했다면, 이번엔 날것의 느낌을 강조하며 더 ‘RAW(가공되지 않은)’해졌다는 점입니다. 과감하고 독특하면서 스트리트 요소를 살짝 가미한 피비 파일로만의 스타일은 여전히 테일러닝(재단 기술)과 소재의 중요성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피비의 시그니처인 하이넥 트렌치코트와 구조적인 실루엣의 재킷, 잘 재단된 팬츠는 여전히 멋지게 표현됐습니다. 또한 볼드한 선글라스와 액세서리들로 포인트를 주는 스타일링은 그녀만의 특기를 다시 한번 보여 주는 잘 정리된 컬렉션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피비 파일로 브랜드의 전략은 어떠할까요?
1) 온라인으로 브랜드 론칭
오프라인 컬렉션을 고집하던 피비 파일로가 자기 이름을 내세운 브랜드의 첫 컬렉션을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상품의 소재, 핏, 무드를 보여 주기에 제한적인 온라인, 그리고 오프라인 컬렉션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이기에 조금 의외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는 더 영리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기업 자체 브랜드가 아닌, 투자를 받아 진행하는 개인 브랜드이기에 무리한 광고ㆍ마케팅보다는 제품과 옷만 강조하여 홍보하고 싶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 아무래도 신생 브랜드이기에 가볍고 부담 없이 출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는 최근 신생ㆍ소규모 브랜드가 제품에 집중하고자 할 때 선택하는 방법으로, 피비 파일로 역시 상품 집중력을 높이려 했다고 판단됩니다.
2) 온라인으로만 판매
이번 제품은 오로지 ‘피비 파일로 닷컴’에서만 구매할 수 있습니다. 소량만 생산해 물량도 적은 데다, 구매자는 값비싼 제품을 실물도 보지 못하고 구매해야 합니다. 심지어 한 가지 상품만 구매할 수 있게 제한했습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고객의 편의보다 자신들의 철학만 철저히 강조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오프라인 매장으로 유통되면 유통 수수료에 관리도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타 디자이너의 이름만 믿고 온라인 구매를 하기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3) 드롭 형식의 논시즌 컬렉션
'Edits'라는 릴리즈 형태로 컬렉션을 진행하기로 한 피비 파일로는 봄ㆍ여름(SS), 가을ㆍ겨울(FW) 같은 정석적인 시즌 컬렉션이 아닌 논시즌의 상품을 구성하고 이를 드롭 형식으로 출시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발표했습니다. 드롭 형식은 슈프림이 진행하는 스트리트 브랜드의 출시 전략인데, 이를 참고한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구체적인 출시 시기는 해당 사이트에 가입한 고객에게만 이메일로 전달된다고 합니다. 대략적인 고객의 수를 파악하고 고객 관리 툴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4) 놀라운 가격
스타 디자이너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신생 브랜드인 피비 파일로의 가격은 놀랍기만 합니다. 90만 원대 선글라스, 500만 원이 넘는 재킷, 1,000만 원대의 빅 백, 그리고 2,400만 원대의 드레스까지… 실물을 보지도 못한 채 온라인으로 구매하기에는 너무 높은 가격대입니다. 샤넬, 디올 등 전통적인 명품 브랜드와 비슷한 수준인데, 신생 브랜드가 이 가격대를 공략했다는 것은 놀라운 전략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상품이 완판 수준이긴 합니다만, 과연 그녀의 영향력에 기댄 판매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피비 파일로는 분명 수많은 여성들을 설레게 했던, 영향력이 대단한 스타입니다. 그녀의 복귀는 환영하지만 이번 브랜드 전략은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의 브랜드가 향후 어떤 영향을 줄지, 그리고 그의 전략이 얼마나 잘 들어맞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나영훈 남성복 상품기획 MD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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