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혁신] 인공지능을 위한 인류학지능
[뉴노멀]
김진화 | 연쇄창업가
쿠데타로 일컬어질 만큼 전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극적으로 전개됐던 오픈에이아이 내홍 사태가 일단락됐다. 이사회에 의해 축출됐던 샘 올트먼과 그레그 브로크먼이 복귀했고, 이사회는 해체 뒤 재구성하게 됐다. 매체와 호사가들은 ‘왕의 귀환’이라는 익숙한 서사에 열광하며 에이아이 삼국지라도 써 내려갈 태세다. 스타 창업가의 고난 스토리에 열광하는 것은 자유지만 이번 사태가 던진 의미심장한 질문들까지 환호성과 함께 날려버려서는 곤란하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비영리 연구기관이라는 오픈에이아이의 모호한 정체성이 똬리를 틀고 있다. 알다시피 딥러닝 시스템 구현에는 엄청난 규모의 컴퓨팅 자원이 요구된다. 천문학적 자금이 소요되는 비영리 프로젝트는 가능한가? 오픈아이에이가 보여준 그간의 행보와 이번 사태는 그게 그리 녹록지 않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번 사태의 뿌리가 막대한 자금 조달을 위해 제한적 영리 법인을 설립했던 결정에 닿아 있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그렇다고 인공지능 개발이 전적으로 대자본에 의해, 그것도 몇몇 기술기업에 의해 주도되는 현실은 우려스럽다. 이러한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비영리기관으로 설립 운영한 것은 대단한 결정이었지만 아직은 그런 구상을 담을 사회/제도적 그릇이 협소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을 뿐이다. 인류적 기술에 대한 공공 투자의 역할, 자본시장의 역할 재구성 등을 공론화할 시점에 왔다. 비트코인이 실증한 분산자율조직 같은 새로운 모델에도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이번 사태를 불러온 이사회 내부 갈등의 원인은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일반인공지능 개발이 진척되면서 상업화와 내부통제 방침이 갈등을 불러일으켰을 거라는 추측만 난무하고 있다. ‘오픈’이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비밀주의와 부족주의가 만연해 있는 연구 조직 특성상 무엇이 원인이었고 쟁점은 무엇이었는지, 전세계를 뒤흔든 이번 사태의 전모가 저절로 밝혀질 리 만무하다. 아마도 미국 상원 청문회에 안건으로 상정되어야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상원 청문회는 그간 가상자산 등 최신 이슈가 되는 기술적 쟁점에 비교적 빠르게 대응해왔고 사회적으로 주의를 환기하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해왔다. 다만 기술이 고도화되고 인류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 상황이라 기술업계와 상설적으로 소통하며 전문적으로 내용을 검토하고 의사결정의 파트너가 될 전담 조직 내지는 기구가 필요해진 시점이다. 한국도 워싱턴만 바라볼 일이 아니라 허울뿐인 진흥기관을 정리하고 진정한 의미의 규제/협력 기구 등을 고민할 때다.
연구개발 조직 내부에서 벌어진 노골적 분쟁은 단순히 지배구조 문제로만 국한되지는 않을 거다. 외부의 이해관계자들까지 범위를 넓히게 되면 향후 갈등의 압력은 엄청나게 배가될 게 뻔하다. 이는 웹에서 작동하던 경제학이 인공지능 시대에도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데이터 소유권, 통제권 등 그간 이론적으로만 논의되던 것들이 현실화돼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미 예술가들은 작품 이미지 정보를 조작해 기계의 학습을 교란하는 식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나이트셰이드 같은 프로그램 사용 등으로 저항 중이다.
이번 사태가 남긴 여러 질문은 인공지능이 비단 연구개발 조직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명확히 지시하고 있다. 인류 문명이 인공지능을 품을 준비가 돼 있는지. 자본시장은 자본시장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시장 참여자 역시도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가 뭔지 구체적으로 체감하게 된 시험대였다. 언론인이자 인류학자 질리언 테트의 말처럼 “인공지능에 의해 새롭게 구축되는 세계에서” 또 하나의 에이아이, 인류학 지능(anthropology intelligence) 역시 중요해졌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가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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