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권력 두번째 시즌을 기다리며

한겨레 2023. 11. 2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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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해 12월17일 서울 숭례문 들머리에서 ‘12월 전국집중 촛불대행진’을 마친 시민들이 10·29 이태원 참사 49재와 윤석열 정부 규탄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세상읽기] 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중앙정치의 모습 하나하나가 그러하며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새로운 단체장에 의해 갑자기 사라지거나 180도 변경되는 정책들로 인해서 공무원과 시민들의 피로감이 높다. 속수무책이라고 한다.

우리 손으로 선출된 정치권력에 대한 무력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 답을 애쓰모글루(다론 아제모을루)와 로빈슨의 저서인 ‘좁은 회랑’에서 일부 찾을 수 있다. “자유를 얻어내는 일은 결집하여 국가와 엘리트에 맞서는 사회의 능력에 달려 있다.” 사회를 지탱하는 대중권력이 약해지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인 시장으로부터 우리의 자유와 안정을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대중권력이 항상 위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중권력은 1980년대 민주화를 가능하게 했고, 1990년대에는 경제개혁과 사회개혁을 통해 복지국가를 태동하게 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낙선운동을 통해 정치가 누군가의 요새가 될 수 없음을 알리기도 했다. 그 당시 언론 조사에 따르면 한국을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시민단체가 정당이나 재계보다 더 높은 순위에 있었다.

대중권력의 강화는 진보 정부 태동에 기여했고, 정치와 행정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진보 정부는 자신의 어젠다를 실현하기 위해 시민사회의 인력과 아이디어를 흡수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리더가 국가나 지역에서 선출될 때마다 대중권력이 약화되는 역설이 나타났다. 결국 ‘당파성’이라는 꼬리표가 시민사회의 정치적 정당성을 약화했고, 자율적 비영리단체들은 정부 사업을 추진하는 종속적 대행자가 되어갔다.

누군가는 이를 국가가 개선되는 정치권력의 정상화 과정이라 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권력을 보면 그것은 기대였을 뿐이다. 성과도 있었지만 정치는 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고, 지난 20년 ‘각자도생’ 사회가 더욱 강화되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정치권력과 대중권력 간의 역동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세심한 대응이 한참 부족했다.

대전환의 시기, 지금 다시 대중권력 역할이 필요하다. 현 정부는 경제가 지금의 핵심적 문제라고 생각하고, 모든 부처를 산업부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현대사회의 위기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시민사회와 대중권력의 약화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가치라는 모호한 개념은 산소에 비유할 수 있다. 가족과 친구들의 돌봄과 우정, 지리산에 있는 아름다운 숲을 항상 고마워하지 않는다. 오늘의 평화나 정치적 자유를 매일 소중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평소엔 중요성을 잘 못 느끼지만, 이들이 사라질 때 우리는 질식되고, 삶의 뿌리가 흔들린다. 지금의 위기는 산소 같은 사회적 가치들이 물질적 가치에 의해 착취되며 희소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서 연구하고 논의할 기회들이 있었다. 이들은 희박해지는 산소를 다시 채우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남들과 같이 지위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약화되어 가는 사회적 가치를 되살리고 대중권력을 다시 회복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약자와 소수자들과 연대하고, 새로운 사회를 위해 연구하며, 노동과 민주주의를 지키려 한다. 또한, 무너지는 지역과 지구를 위해 분투하고 있다.

대중권력 스스로의 변화도 필요하다. 1987년 체제를 가능하게 했으며, 이후 변화를 추동했던 대중권력의 한 형태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우리도, 국가도, 시장도, 이들이 이룩해놓은 소중한 가치와 제도들에 큰 빚을 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가치와 관계에 기반한 대중권력의 새로운 시즌이 태동되어야 한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며, 난제를 해결해 나가는 새로운 대중권력과 시민사회가 필요하다.

두번째 시즌을 열어 나갈 주체들은 아직 모호하고, 뿌리가 깊지 않으며, 환경은 험하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 스스로가 주체이자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활동가들의 불안정한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이들에게 쏟아지는 과도한 비판들에 함께 대항해야 한다. 이들은 국가의 감시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의 요새화를 감시하며, 21세기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공공영역의 소중한 주체이다.

국가도 시장도 스스로 완전해질 수 없다. 이들을 견제하면서도 완전하게 하는 튼튼한 대중권력의 출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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