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의 어떤 날] 본받고 싶은 스타가 있어 가슴 벅차다

한겨레 2023. 11. 2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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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의 어떤 날]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양희은 | 가수

 우리와 같은 일을 하다 보면 때맞춰 공연이나 영화를 보기 쉽지 않다. 그래서 가끔은 현장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일이 부럽다. 노래나 생방송은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니까 아쉬워도 놓치는 거리가 많은데(어디 구경뿐이랴만…) 10여년 전 개봉한 ‘서칭 포 슈가맨’도 그렇게 놓친 영화였다.

가끔 우리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헤이리시네마를 찾아가 휴일 아침 첫 프로를 즐기는데, 재개봉됐다가 오늘로 종영인 바로 그 영화를 보러 나섰다. 엄마 잡수실 것 챙겨 작은 쟁반에 담아드리고, 우리 부부 아침 먹고 강아지 두마리 얼러서 밥 먹는 것 확인하고 커피 한잔 느긋하게 마시면 아주 널널하게 도착해 즐길 수 있다.

다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미국에선 아는 이 하나 없고 남아공에선 엘비스, 롤링 스톤스, 밥 딜런을 넘어서 더 더 슈퍼스타로 인정받은 식스토 로드리게스를 찾아 나선 열정적인 두 팬의 탐정놀이 같은 사람찾기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2년과 2013년 미국과 영국, 멜버른·모스크바 영화제의 여러 부문에서 다큐멘터리상을 휩쓴 바 있다.

1968년 첫 앨범과 두번째 앨범까지 냈지만 미국에서는 완전히 실패한 그의 1집 음반이 어찌어찌 남아공에 전해져 아파르트헤이트로 흑백분리가 극심했던 1970년 초 그 나라 젊은이들의 가슴을 적시며 백인 우위의 인종차별 정책을 향한 목소리를 내게끔 하는 토양, 밭의 땅 뒤집기와 거름주기 같은 대단한 영향을 주는 일을 했다. 모든 혁명엔 주제가가 필요하듯 반항적이며 반체제적인 메시지가 불처럼 번졌고 그 역시 전설이 되었다. 사람들은 가수의 정체를 몰라 무대 위에서 권총을 꺼내 자기 머리를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아니다 무대에서 분신했단다, 하는 말들만 오가던 중 수수께끼 같은 그(‘슈가맨’)의 흔적을 찾아 애쓰던 두 남자가 인터넷 세상에 사람을 찾는 기사를 내보냄으로써 있을 수 없는 놀라운 답을 받게 된다.

로드리게스의 딸이 아직 살아있는 자기 아버지 얘기를 했고, 어찌어찌해서 전설이던 그가 드디어 남아공 무대에 서게 된 기적 같은 일이 이루어졌다. 첫번째 공연에서 그는 흔들림이 없이 평온했고 30여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공연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자기가 하던 막노동과 오물 치우는 일을 변함없이 했다. 40여년간 살았던 낡은 집을 지키며….

딸들이 들려주는 그는 철학을 전공했고 시의원에 매번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딸들은 어린 날 박물관과 도서관 등 아버지와 함께한 최고의 추억을 얘기했다. 그는 노동을 혈액순환에도 좋고 몸을 유지하게 한다고 표현했다. 사람들도 그를 신비한 힘을 지닌 시인, 예술가, 예술의 경지를 넘어선 현자로 보았다. 그가 기적 같은 행운과 짝지어 누릴 수 있는 어떤 권력(=돈)에 흔들리지 않았다는 게 내겐 큰 감명을 주었다. 30회에 걸친 성공적 공연이 화폐로 호환되어 헐어빠진 낡은 판잣집을 벗어날 수도 있었건만 그는 늘 살아온 그 집을 지키며 하던 일을 그대로 했다. 공연으로 남은 돈은 친지들과 가족에게 나누어주었다고 답했다.

그와 짝지어, 홍콩의 작은 어촌마을 너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고 먹을 것이 없이 핍절해 제일 많이 먹은 게 무였다는 주윤발을 떠올렸다. 공장 노동자, 우체부 등 일도 했었고 늘 걷거나 전철을 이용하는 대스타. 기사가 기다리고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는 사람. 대스타로서 누리는 그런 영광의 표정은 찾아볼 수 없고 그 돈은 내 것이 아니고 잠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8000억원 넘는 기부금도!!! 매일 밥 세끼 먹고 잘 수 있는 작은 침대 하나면 충분하다는 사람. 죽고 나면 가져가지 못하고 영원히 가질 수도 없는 게 돈이라며, 꼭 필요한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했다. 언젠가 그의 단골 분식점에서 그가 자주 먹는다는 메뉴를 맛본 적 있다.(중국어를 잘하는 친구 덕에) 참 소박한 분식집이었다.

로드리게스와 주윤발의 공통점은 돈이라는 힘에 휘둘리지 않고 일상의 소박함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지난 여름 다른 별로 떠난 로드리게스, 홍콩의 따거 주윤발! 같은 지구별에 본받고 싶은 스타들이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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