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를 잇는 실크로드 따라] ① 코카서스, 환대 문화의 정석을 알려 주다

임나현 2023. 11. 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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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교육을 삶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고 있는 필자에게 있어서 여행은 세상과 직접 소통하고 교류하는 무대다. 용기 내어 찾아간 세상이라는 판(板)은 어떤 이론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실질적 배움의 장(場)이기 때문이다. 글로벌여행전문가로의 활동은 세계 각지에서 사용하는 살아있는 영어의 쓰임 및 화용(話用)의 연구에도 실질적 농밀한 접근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체득한 지식을 강의실에서 생생히 전하려 한다. 학생들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더라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2019년에는 학생들 10명을 데리고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20일간의 캠프를 개최한 적도 있다. 여행에서 얻은 감동이 그들의 가슴에 닿을 때, 그들의 달라질 미래에 가슴이 벅찼기 때문이다. 이제 여행을 통해 얻은 지혜와 경험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려 한다. 소소하지만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혼자라는 두려움으로 ‘나 홀로 여행’을 주저하거나 혹은 낯선 곳으로 선뜻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들 안의 숨겨진 용기를 꿈틀거리게 하는 불씨가 되기를 소망한다.

- 글로벌여행전문가 임나현 -
 

▲ 임나현의 ‘마샬라, 아제르바이잔’ 동서를 잇는 실크로드 따라

1. 코카서스, 환대 문화(hospitality)의 정석(正石)을 알려 주다

언제부터인가 손님 초대가 뜸해지고, 가족들 모임마저도 외식에 의존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나마 간혹 행해지는 집으로의 초대는 차나 커피, 과일로 간소화한다. 점점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이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지는 이면에는, 삶에서 ‘정(情)’이 메말라가는 단면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현대를 사는 우리의 만연된 정서일지도 모른다.
 

▲ 터키식으로 끓여 내온 커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건과일, 초콜릿과 더불어 터키식 커피를 따뜻하게 내준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분위기와 대조적인 나라들이 있다. 코카서스 3국이라 불리는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다. 카프카스산맥을 경계로 서쪽에 자리한 이들은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있는 국가들로 아직은 우리에게 조금 낯설기도 하다. 특히,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싼 영토문제와 역사적으로 얽힌 복잡한 내재적 갈등으로 인해 현재도 분쟁이 진행 중이다. 두 나라의 교류가 끊어지고 국경은 폐쇄된 상태로, 일부 지역은 여행 위험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카서스 지역은 아름다운 자연뿐 아니라, 예부터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활발한 교역을 주도했던 카라반이라 불린 대상(隊商)들의 영향이 더해져,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적 매력을 품은 곳이다.

그들의 문화 중에서도 세계에서 으뜸이라 할 만한 것은 환대 문화(the culture of hospitality)다. 그네들의 환대는 친절의 개념을 훨씬 넘어선 ‘아낌없는 격한 베풂’이다. 어떤 손님이든 대접을 할 때는 과하리만큼 아낌없이 한다. 코카서스를 한 달간 여행하면서, 그들의 비현실적 아름다운 자연환경보다도 더 감동이 넘쳐난 일들을 수없이 경험했다. 여행을 통해 현지에서 만난 그곳 사람들의 환대 때문이다. 국경을 넘기 위해 올라탄, 조지아발(發) 아르메니아행(行) 미니 버스에서 만난 가야네(Gayane)도 그중 한 사람이다. 중년의 그 여인은 나를 그녀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을 건네왔다. 단지, 여행객으로서 낯선 이방인인 나는 순간 당황하며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 식사 전 에피타이저로 내놓은 수박

하지만, 그녀는 무엇을 바라고 한 얘기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나는 그들 나라를 방문한 여행객인 동시에, 그날 그 순간 그들 곁에 함께 한 손님(guest)으로서, 그저 귀하게 대접하려 했던 순수한 그녀의 마음뿐이었다. 그들에게 손님의 의미는 천사다. 그들 집(나라)을 찾은 천사에게 최선을 다해 대접해야, 도리라는 사회적 윤리 문화를 가진 코카서스다.

멀리서 온 내가 늦은 밤에 숙소를 찾느라 고생 할까봐, 기꺼이 딸의 방을 내주었다. 침대 시트를 갈고 새 이불을 깔아 주던 그녀다. 그것도 모자라, 이른 아침부터 정성으로 준비한 음식을 내놓았다. 맛도 좋았지만, 비단결 같은 그녀 마음이 더 감동이다. 온 가족이 모두 둘러앉기엔 좁은 식탁이었지만, 서로 가까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 대화를 이어갔다. 가야네와 남편인 안소니와의 러브스토리를 묻자 그때부터 이야기는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커피향과 함께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온다.
 

▲ 일상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끄는 가야네(Gayane)의 남편, 안소니(Anthony)

열렬히 환대(hospitality)하는 코카서스인의 따뜻한 마음과 환대에 그간의 목말랐던 ‘정과 사랑’을 다 받고 온 느낌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지만, 손님을 초대할 때 지극 정성으로 최고를 주려는 그들의 고운 마음에, 여러 차례 가슴 밑바닥부터 뭉클함이 솟구쳤던 여행이다. 다시 가고 싶어진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그곳을 다시 찾는 전 세계 여행소비객들로 북적일 코카서스가 그려진다.

우리 한국 사람들도 마르지 않는 정이 있다. ‘숟가락 하나 더 놓는 건데요’라는 표현은 초대받은 이의 체면을 살리기 위한, 초대한 이들의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흔쾌히 누군가를 초대하고 귀하게 대접했던 우리 조상들의 ‘따뜻한 환대 문화’가 우리의 가슴에도 숨 쉬고 있다.
 

▲ 아르메니아의 전통 가정식: 먹는 방법을 알려주는 가야네(Gayane)
▲ 가야네와 그녀의 남편 안소니

옛것을 그리워하는 레트로(Retro) 열풍은 물건의 외적 디자인에만 적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의 가슴을 푸근히 녹여, 한국에 더욱 열광하는, ‘코리안을 향한 글로벌 감성팬들’이 넘쳐날 수 있도록, 그 옛날 계산하지 않고 순수했던 우리 조상들의 ‘따뜻한 정(情)’이 ‘우리의 감성(感性) 레트로’로 부활 되길 바란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언젠가 그 아름다운 감성이 큰 자산으로 우리를 받쳐줄 것을 믿는다.

▲ 임나현 글로벌 여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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