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말한다] 정승화의 두 얼굴 1980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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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화 계엄사령관(1929~2002)은 1979년 말 정치 군인이었던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및 보안사령관을 동해경비사령부로 발령을 내려고 했으나 미리 낌새를 눈치챈 전두환의 선제 공격으로 체포되면서 '김재규 내란 음모'의 방조범으로 몰려 법정에 서야 했다.
중장으로 진급한 후 제3군 단장, 육사 교장, 제1군 사령관을 거쳐 육군참모총장 및 계엄사령관에 올랐지만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전두환·노태우의 군사반란으로 체포되어 내란방조죄를 뒤집어쓰고 고생하다가 73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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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화 계엄사령관(1929~2002)은 1979년 말 정치 군인이었던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 및 보안사령관을 동해경비사령부로 발령을 내려고 했으나 미리 낌새를 눈치챈 전두환의 선제 공격으로 체포되면서 '김재규 내란 음모'의 방조범으로 몰려 법정에 서야 했다. 그는 전두환의 부하들에게 의해 고문당하고 이등병으로 강등되는 등 시련을 겪었다. 1990년에 가서야 무죄가 확정되고 대장 계급도 가까스로 회복되었다. 그는 육사 5기로 6·25전쟁에 참전한 후 방첩대장으로 있을 때 노태우 대위와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중장으로 진급한 후 제3군 단장, 육사 교장, 제1군 사령관을 거쳐 육군참모총장 및 계엄사령관에 올랐지만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전두환·노태우의 군사반란으로 체포되어 내란방조죄를 뒤집어쓰고 고생하다가 73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왼쪽 사진은 그가 1979년 11월 19일 계엄사령관 및 육군참모총장으로 국회 국방위에 출석한 모습, 오른쪽은 체포되어 죄수복을 입고 재판을 받는 1980년 3월 11일의 얼굴.
[전민조 다큐멘터리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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