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초록 은행잎

2023. 11. 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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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엔 거리를 걷는 기분이 남다르다.

화려한 황금빛을 뽐내던 은행나무 이파리들이 거리 위 카펫이 되기 때문이다.

한겨울 같은 한파가 요사이 계속된 때문인지, 추위를 이기지 못한 초록 잎들이 무기력하게 떨어져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거리에 깔린 초록 카펫의 원인으로 '기후위기'를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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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엔 거리를 걷는 기분이 남다르다. 화려한 황금빛을 뽐내던 은행나무 이파리들이 거리 위 카펫이 되기 때문이다. 노란색은 지친 마음을 쨍하게 만들어주는 오묘한 힘을 가진 것인지, 노란 카펫 위를 걸을 때면 발걸음이 한층 발랄해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올해는 채 노랗게 물들지 못한 초록의 은행잎들이 거리를 뒹굴고 있다. 한겨울 같은 한파가 요사이 계속된 때문인지, 추위를 이기지 못한 초록 잎들이 무기력하게 떨어져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거리에 깔린 초록 카펫의 원인으로 '기후위기'를 지목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는 수년 전부터 있었다. '변화'라는 말이 현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일자 '기후위기'라는 말이 등장하긴 했지만, 일상 속에서 '위기'를 늘 체감하며 살고 있지는 못한 게 사실이다.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박힌 거북이나 바닷물이 마을을 잠식해가고 있는 남태평양 섬나라의 모습을 볼 때 '무언가 해야겠구나'라고 느끼지만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 위기감을 수시로 느끼진 못했다. 그러나 작년과 올해는 달랐다. 기온이 널을 뛰면서 계절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고, 무엇보다 여름마다 폭우로 인한 인명사고를 겪으면서 위기가 우리 코앞에 당도했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공동체적 위협 상황을 마주하며 많은 기업들은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ESG 담론이 확산하면서 지속가능한 사업을 영위하고자 하는 기업이라면 친환경 행보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기도 했다. 특히 농작물은 기후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어 많은 식품 회사들이 질 좋은 농작물 확보와 수급 안정에 과거보다 더 큰 에너지를 쏟고 있다. 필자의 회사가 올해 협력사들과 함께 '농가상생펀드'를 조성해 환경친화적이면서도 기후변화 적응력을 높인 농작물 생산을 지원하기로 한 배경이다.

이 밖에 퀵서비스레스토랑(QSR) 브랜드 중 처음으로 매장 내 플라스틱 빨대 제공을 중단하고 다회용기 도입을 선도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우리가 발생시킨 쓰레기를 우리 내부에서 재활용하는 순환경제에 특히 힘을 쏟고 있는데, 매장에서 발생한 플라스틱을 충전재로 가공해서 매장 직원들을 위한 방한 아우터를 제작한 게 대표적인 예다. 커피박은 활용 범위가 매우 넓은데, 친환경 목재로 재탄생시켜 매장의 펜스로 쓰거나 필자 회사에 유제품을 공급하는 소의 사료로 가공하기도 한다.

친환경 행보를 간단하게 나열했지만, 사실 플라스틱 빨대 하나를 없애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리적으로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운영절차 변화와 이에 따른 불편을 고객과 매장 직원 모두가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단발성 보여주기식이 아닌, 조직의 체질로서 친환경 정책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유·무형의 비용이 든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에 박수를 쳐주는 고객들이 점점 늘고 있고 무엇보다 우리의 직원들이 회사의 친환경 행보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점에서 큰 응원을 받고 있다.

회사가 친환경 정책을 펼칠 때 구성원들의 참여와 관심은 가장 중요하다. 올해 초 유니폼을 교체하면서 직원들의 땀이 밴 유니폼을 재활용해 트로피를 만들었는데, 그 트로피를 받은 직원들이 더 특별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필자는 참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음을 한번 더 깨달았다.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계속 노력하면 다음 가을에는 다시 노란 카펫을 밟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김기원 한국맥도날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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