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의전원은 왜 실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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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국제 보건 담당 부처장인 어툴 거완디(Atul Gawande)는 먼 길을 돌아 의사가 됐다.
대학 이공계열이 의전원 입시학원으로 전락할 수 있고, 늦은 나이에 의전원에 입학하면 전문의 수련 과정 대신 개원가로 나갈 가능성이 높으며, 의사과학자 양성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당시 복지부는 의사들의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러 정책 수단을 동원해서 의전원 도입을 관철했고 한때 전국 41개 의과대학 중 36개 대학이 의전원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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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원 제도는 처참히 실패
지역·필수의료 공백 문제
의대정원 확대로 해결하려면
세밀한 제도 설계 필요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국제 보건 담당 부처장인 어툴 거완디(Atul Gawande)는 먼 길을 돌아 의사가 됐다.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인 그는 스탠퍼드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뒤 옥스퍼드대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질문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그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밀어붙이는 의학의 힘에 매료돼 의사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뒤늦게 하버드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 의사가 됐다.
이런 오랜 고민의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의사가 되는 여러 경로를 만들어 놓은 사회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대 입시를 위한 초등반'까지 등장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거완디 같은 사람들을 위한 제도적인 설계를 한 적이 있다. 바로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의학전문대학원이었다. 하지만 '감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씁쓸한 사실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진입 장벽을 낮추고, 다양한 학문 배경과 사회 경험을 가진 의사를 양성하며, 의사과학자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의사들은 반대했다. 대학 이공계열이 의전원 입시학원으로 전락할 수 있고, 늦은 나이에 의전원에 입학하면 전문의 수련 과정 대신 개원가로 나갈 가능성이 높으며, 의사과학자 양성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당시 복지부는 의사들의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러 정책 수단을 동원해서 의전원 도입을 관철했고 한때 전국 41개 의과대학 중 36개 대학이 의전원을 운영했다.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재 여전히 의전원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차의과대학 한 곳뿐이다. 이 숫자가 의전원이 얼마나 처참하게 실패한 제도인지를 보여준다.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사회 경험을 가진 의사를 키우려고 했으나 의전원이 이공계 인재 블랙홀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가속화했다. 자연계열 대학 입시 자체가 의전원 입학을 위한 예선전의 양상을 띠기까지 했다.
의전원이 도입되면서 공중보건의와 군의관 부족 문제도 본격적으로 대두됐다. 의전원 남자 입학생은 군 복무를 마치고 입학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의전원 졸업생의 수련의 기피 현상이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의전원을 졸업하는 입장에서는 3~4년의 전공의 과정을 거칠 동기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련의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일반의로서 개업을 하거나 취업을 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었다. 또 지방 소재 의전원 입학생 대부분은 서울 소재 대학 졸업생이어서 의전원 졸업과 함께 지역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 보면 지금 나타나고 있는 의료계의 문제를 심화시키고 가속화시킨 원인이 의전원 도입이었고 그 피해는 오직 의료 소비자인 국민들이 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보건복지부는 의대 입학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고 국민이 압도적으로 지지하며 야당 역시 동조하고 있으니 의대 정원 확대는 예정된 시간표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의료 분야 복원과 지역의료 재건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세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의전원만 세우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의사들이 의학의 발전을 이끌 것이라던 생각이 단지 상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의사 수만 늘리면 의료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 역시 환상에 가깝다.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와 지역에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제도적 설계가 함께해야 한다.
[김기철 과학기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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