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 “미국산 무기가 민간인 상대로 사용되는 것을 비판하는 건 미국 작가의 의무”

임지선 기자 2023. 11. 2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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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조자>로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이 21일 경기도 부천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미국산 무기가 이스라엘에 의해 민간인을 상대로 사용되는 것에 미국 작가로서 비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 장편소설 <동조자>(민음사)로 미국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비엣타인 응우옌은 지난달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무차별 공습을 중단하라는 공개 서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미국 뉴욕 92번가Y문화센터(92NY) 주최 간담회가 갑자기 취소됐다. 간담회는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다. ‘유대인 조직’인 92NY 측은 하마스를 같이 비판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응우옌은 베트남 공산화 이후 베트남과 미국의 이중 스파이로 살아온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동조자>로 최근 제3회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상식 참석차 방한한 그를 지난 21일 경기 부천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전쟁과 작가로서의 사회적 책임 등에 관해 1시간30분가량 목소리를 높였다.

응우옌은 먼저 간담회 취소에 관해 유감을 표시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는 복잡한 분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 전쟁은 그걸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휴전을 촉구하는 입장이었다”며 “행사를 취소함으로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을 차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모든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 점령 식민주의에 반대해야 한다는 입장과 원칙을 가지고 있다”며 “가자지구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미국산 무기가 살상에 사용되는 것에 대해 미국 작가로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폭격당한 민간인, 노약자들이 죽어가는 이미지를 보면서 뭐라도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을 옹호하는 의견을 내면 실직을 당하거나 위협받는 경우가 많다고도 전했다.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응우옌은 “기질상 누가 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진다”며 웃었다.

소설 <동조자>로 부천디아스포라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이 21일 경기도 부천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그의 소설 <동조자> <헌신자>는 모두 베트남 전쟁에서 출발한다. 회고록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도 베트남 전쟁에 관한 기억과 그로 인한 정체성 혼란을 담았다. 응우옌은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자 그의 부모는 4세 응우옌을 데리고 미국으로 탈출했다. 그의 부모는 여느 아시아 부모처럼 자식의 성공을 바랐다.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 미국 사회 주류의 삶을 살길 원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 베트남 전쟁의 의미를 되묻는 작가의 길을 가고 있다.

응우옌은 “우리 가족과 제 성격과 위치 등 모든 삶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쓰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서 의지를 가지고 베트남과 미국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두 얼굴로 살려고 노력했다. 어떤 이슈든 양면을 다 보아야 한다 생각하고 살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 이민 와 엄청난 고생을 하고 희생을 한 부모님의 삶을 직접 봤기 때문에 저도 힘들었고,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책과 문학을 도피처 삼았다”며 “굉장히 많은 책을 읽고 독자로 출발했고, 독자였기 때문에 글을 쓰는 작가가 됐다”고 전했다.

“단 하나의 진정한 수수께끼가 있다면, 우리의 어느 부분이 -즉, 우리의 인간성, 혹은 비인간성 중 어느 것이- 인류가 자체적으로 끊임없이 반복하는 게임인 러시안룰렛에서 승리할 것인가.” 지난 6월 출간된 <헌신자>의 한 대목이다. 1년 넘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어지고 있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벌어지는 세상이다. 그의 소설 속 문장에 빗대자면 결국 비인간성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 아닌가 회의가 드는 시점이다.

응우옌은 “인간이나 국가나 자신(들)이 ‘인간적’이라고 생각하고 때론 비인간적일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비인간적 만행이 정당화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안의 비인간성을 부인하면 할수록 비인간적 행동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비인간성이 승리했다기보다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비인간성’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소설을 통해서 끊임없이 말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어준 소설 <동조자>는 미국 HBO에서 드라마로 제작하고 있다. 감독은 박찬욱. 응우옌은 영화 <올드보이>를 감명 깊게 봤고, 제작자와 논의하던 당시 감독 후보 0순위가 박찬욱이었다고 한다. 그는 “<동조자> 한국어판이 나왔을 때 박찬욱 감독에게 책을 보냈고 다행히 마음에 들어 했다”며 “우리가 박 감독을 선택했다기보다 우리가 간택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LA) 자택으로 박 감독을 초대해 식사를 함께했다고 했다. 응우옌은 특히 “드라마가 베트남어로 만들어지고 있고 캐스팅의 90%가 베트남 출신”이라며 <동조자>의 드라마화가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응우옌도 카메오로 잠깐 출연한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며 사회적 참여를 강조하고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으려 노력하는 응우옌. 그는 한국의 황석영, 안정효, 한강 등을 거론하며 “한국에서도 사회 참여적인 마음으로 헌신하는 작가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제 임무는 베트남 전쟁의 역사적 맥락을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르를 넘나들면서 재미있으면서도 역사나 정치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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