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권심판 표심 왜곡하는 ‘이준석 신당’
지난 24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지지 정당이 없다고 답한 무당층은 27%였다. 총선이 4개월여 남은 시점인데 여전히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30% 안팎의 무당층이 확인된다. 거대양당에 실망하고 정의당도 대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이들이다. 총선을 앞두고 이들의 마음을 돌리려는 거대양당의 노력은 잘 보이지 않고, 이들을 바탕으로 권력을 창출하려는 소위 제3정당들은 아파트 분양을 앞둔 시점 떴다방처럼 생겨날 조짐이다.
가장 떠들썩하게 영업을 시작한 곳이 ‘이준석 신당’이다. ‘반윤석열 빅텐트’를 표방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영호남을 오가고 연일 언론과 만나며 신당 띄우기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갤럽 조사에서 이준석 신당을 좋게 본다는 응답이 38%나 됐다.
이준석 신당은 엄밀히 말하면 제3정당이라 하기 어렵다. 그가 제시한 정당의 정체성은 반윤석열뿐이다. “토론을 할 수 있는 능력, 즐길 수 있는 자세를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함께할 수 있다”고 한다. 반윤석열 깃발 아래 최대한 많은 세력을 모으겠다는 의지만 보인다. 그의 신당 창당은 거대양당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시대정신을 좇는 게 아니라 힘을 모아 윤석열 정권 권력게임의 연장전을 치르겠다는 의도다. 사실 사상 첫 30대 당대표로 국민의힘의 변화와 쇄신을 상징한 이 전 대표는 윤석열 정권 창출의 1등 공신이다. 2022년 9월 미디어토마토 조사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인물로 응답자의 34.8%가 이 전 대표를 꼽았다. 후보였던 윤 대통령(24.2%)보다 기여도가 더 크다고 봤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윤핵관을 앞세워 그를 당대표에서 쫓아냈다. 토사구팽의 전형적 사례다. 이 전 대표에게 신당은 윤 대통령과의 재대결, 여권 권력 중심으로 재기를 위한 발판이다.
윤 대통령의 변화를 압박하는 게 유일한 목표인 정당이 오래 갈 리 없다.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표에게 어떤 카드를 내미느냐에 따라 둘은 언제든 다시 연합할 수 있다. 그러니 이준석 신당은 여권 권력 게임이 낳은 국민의힘 ‘파생정당’ 정도로 보는 게 맞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제3지대 신당은 기존 정당과 다른 포지티브 정당이 돼야 하는데 지금처럼 네거티브 일변도로는 ‘포말정당’(선거가 끝나면 사라지는 정당)이 되기 쉽다”고 일갈했다. 역대 총선마다 제3정당을 표방한 신당이 떴다방처럼 출현했지만 대부분 거대양당의 파생정당들이었고 짧은 생존 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종필이란 인물과 충청이란 지역을 기반으로 1996년 15대 총선에서 50석을 얻으며 등장했던 자유민주연합이 그나마 12년간 존재하며 연합정치의 가능성을 시험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18석을 얻은 이회창의 자유선진당은 4년 만에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에 흡수됐고, 같은 총선에서 14석을 확보한 친박연대는 다음 총선 이후 등록이 취소됐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 정치를 내걸어 38석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실상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출신 의원들의 호남 기반 정당이었다. 생존을 위해 합종연횡을 반복하다 결국 거대양당에 흡수되며 사라졌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판갈이’를 외치며 주목받은 민주노동당이 유일하게 독자적 비전을 추구한 제대로 된 제3정당이라 할 수 있다.
이준석 신당은 총선을 앞둔 정치지형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윤석열 정권 심판론을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반윤석열을 내세우지만 어떤 식으로든 여당에 흡수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무당파 유권자 중에는 윤석열의 국민의힘을 심판하기로 했지만 이재명의 민주당도 찍을 수 없어 고민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이들이 이준석 신당의 반윤석열 깃발에 동의해 표를 준다면 그 결과는 역으로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된다. 여권으로선 윤 대통령 국정 지지표는 국민의힘을 통해 모으고, 반윤석열 정권심판 표까지 이준석 신당을 통해 챙기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준석 신당이 흥행하면 피해자는 흡수해야 할 정권심판 표를 빼앗기는 민주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준석 신당은 비이재명계 민주당 파생정당 출현의 명분이 될 수 있다. 민주당에서는 비명계 의원 모임인 ‘원칙과 상식’이 공개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등 당이 갈라질 조짐이 적지 않게 보인다. 이재명 대표와 대선후보 경쟁을 했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3세력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반이재명을 표방한 파생정당을 통해 여당으로 갈 수 있는 반이재명 무당층을 흡수할 수 있다면 나쁠 게 없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무당파 유권자들이 제3정당 출현을 기대하는 이유는 거대양당의 진영정치, 반사이익 정치 체제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다. 윤석열과 이재명을 놓고 누가 ‘덜 나쁜 놈’인지 평가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깔끔하게 제3의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줄 효용성 있는 정당을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대양당의 주변을 도는 위성정당 같은 제3정당만 출현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식이면 무당파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에서도 투표할 이유를 찾기 위해 번민의 시간을 보내야 할 판이다.
박영환 정치부장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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