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가슴이 웅장해져 반가운 君君臣臣 사극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꼭 승리하시오. 승리하여 고려의 백성들을 구원하시오. 그대가 온 고려의 백성들을 구한다면 단 한 명의 황제를 시해한 죄는 모두 사라질 것이오. 다시는 그 누구도 경을 반역자라 칭하지 않을 것이며, 나 또한 경을 향해 더는 역적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오. 진심으로 경을 이 고려의 충신으로 생각할 것이며, 경을 이 고려를 구한 영웅으로 생각할 것이오. 그러니 부디 잘 싸우시오!”
‘반역’의 멍에를 둘러 쓴 노장의 주름진 얼굴 위로 눈물이 구른다.
KBS 2TV 토일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극본 이정우/연출 전우성, 김한솔)이 마침내 개전했다. 25일 방송된 5회에서 목종(백성현 분) 황제 시해의 오명을 뒤집어 쓴 강조(이원종 분)가 현종(김동준 분)으로부터 부월을 받아들고 출정했다.
고려거란전쟁, 즉 여요전쟁은 993년(성종 12년)부터 1019년(현종 10년)까지 26년에 걸쳐 세차례 요가 고려를 침략한 전쟁이다.
드라마는 서희의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획득했던 1차 여요전쟁 17년 후 벌어진 2차 여요전쟁부터를 배경으로 한다.
2차 전쟁은 강조의 정변으로부터 시작된다. 드라마는 당연히 초반부를 강조에게 할애했다. 역사 속 황제 시해범 강조에겐 억울한 부분이 다분하다. 당시 황실은 김치양(공정환 분)과 천추태후(이민영 분), 상간남녀의 전횡과 목종의 동성파트너 유행간(이풍운 분)의 독주로 혼란이 극에 달했다.
특히 김치양과 천추태후는 동성애에 빠져 후사를 잇지 못한 목종의 후계자로 둘 사이의 자식을 세우려 기획했고, 왕씨 황통을 김씨에게 넘길 수 없던 목종은 삼각산 신혈사로 강제 출가한 대량원군 순을 후계로 세우려 하는 와중이었다.
목종은 김치양 세력의 대항마로 서북면도순검사 강조로 하여금 개경으로 상경해 근왕을 명하고 강조는 동시에 김치양의 목종 시해 소문을 듣게 된다. 역적 김치양 처단을 기치로 행군하던 강조는 평주(황해도 평산)에 이르러 목종의 생존 소식을 접하지만 궐기한 병력을 그대로 이끌어 개경을 접수한다. 강조로선 목종과 천추태후, 김치양과 유행간이 그대로 존재하는 한 황실의 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판단, 쿠데타를 강행한 것이다.
정전에서 목종과 천추태후를 면대한 강조는 말한다. “폐하께서 조금만 더 일찍 이 고려를 바로잡았더라면 소신도 반역자가 되진 않았을 겁니다.”
목종이 떠난 빈 용상을 바라보는 강조에게 정변을 함께 한 이현운(김재민 분)이 “마음만 먹으시면 그 자리에 앉으실 수 있습니다. 못하실 것 없습니다. 공께서 이 나라를 이끌어가십시오.”라 부추겼을 땐 “가서 대량원군을 모셔오게.”란 말로 일축하기도 했다.
시세에 쫓겨 반역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억울함은 즉위한 현종 순과의 독대 자리에서 터져나온다. “군사에 대한 것은 장수들에게 맡기시면 되옵니다. 백성들을 돌보는 일은 재상들에게 맡기시면 되는 일이옵니다, 허니 괜한 노고를 하지 마옵소서. 연회를 즐기셔도 되고 사냥을 즐기셔도 되옵니다.”는 말에 “허수아비로 만들 작정이면 경이 황위에 오르시오!”라 현종이 반발하자 급기야 도자기를 팽개쳐 깨트려 버린다.
“진정 그를 원하십니까? 이미 한 번 황제를 시해했던 몸입니다. 두 번은 못하겠습니까? 할 일이 필요하십니까? 황제가 되셨으니 권력을 휘두르고 싶으십니까? 그 짧은 혜안으로 조정을 들쑤시고 그 미미한 통찰력으로 군정을 뒤흔들고 싶으시옵니까? 그러다 입안의 혀처럼 구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이 고려를 망쳐놓고 싶으십니까? 국사를 돌보는 일은 소신에게 맡겨 주시고 후사를 돌보십시오. 아들을 낳으시고 순조롭게 아비의 자리를 물려주시옵소서. 그 쉬운 일조차 못하시고 충직했던 장수들조차 반역자가 되게 만들지는 마시옵소서. 그게 폐하가 할 일이옵니다.”
목종 시해를 짜게 바라보는 대신들에겐 탄압 대신 호소를 하기도 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소. 이제 그만 날 따라주시면 고맙겠소.” 하지만 대신들이 선황시해를 여전히 용서할 수는 없지만 하던 조정 일을 돌보긴 하겠다는 반응을 보였을 땐 “그거면 됐소. 그간 해오시던대로 이 고려를 위해 헌신해 주시면 됐소. 단, 앞으로 날 경멸의 눈으로 보지 마시오. 나도 경들 못지않게 이 고려를 위하는 사람이오.”라고 읍소도 한다.
무장이어서인지 강감찬(최수종 분)같은 식견은 부족했다. 목종시해가 거란 침략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한 모양이다.
거란에 보낼 서계를 읽어보고 “근데 왜 선대 황제께선 병으로 승하하셨다고 적었소? 내 눈치를 보느라 그런거요?”라고 물었을 때 강감찬은 강조를 한심한 듯 바라보며 답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섭니다. 중대사께서 자행한 일은 거란황제의 책봉을 받은 고려국왕을 해한 일이옵니다. 거란 황제가 알면 아마도 고려국왕을 해친 역신을 처단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겠지요.”
그래서 단순하다. “거란군은 내가 상대할 것이오. 다가오는 전쟁이 진정 내가 뿌린 씨앗이라면 내 손으로 모두 거둘 것이오.”라고 호언장담해 보지만 강감찬으로부터 “한 사람의 능력으로 막을 수 있다면 전쟁이라 부르지도 않사옵니다. 온 고려가 총력을 다해야 되는 일이기에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이옵니다.”는 타박만 듣는다.
하지만 여전히 노련한 장수의 면모는 보인다. 현종이 강감찬의 만류에도 전쟁의 빌미가 된 강조를 죽이려 했을 때 준비된 군사들로 역공을 가하고는 말한다. “이 자리에서 죽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소신이 꼭 죽어야 한다면 고려를 위해 싸우다 죽을 것이옵니다. 폐하의 칼에 죽는다면 영원히 역적으로 죽을 뿐이옵니다.”
신하의 본분도 잊지 않았다. “이번 일은 없었던 일로 하겠사옵니다. 황제가 백성을 구하기 위해 한 일을 어찌 탓하겠사옵니까? 그 어떤 결단도 내리지 못하는 무능한 군주보다는 나은 일이옵니다. 그럼 편히 주무시옵소서.”하고는 현종의 안위를 걱정하는 강감찬에겐 “내일 정전에 나오실거요.”라며 안심도 시킨다.
거란 사신과의 대치에서는 무장으로서의 기백과 패기를 과시한다. 역적 강조의 처단을 위해 거란 황제가 40만대군을 일으킬 것이라 다시 강조하는 사신 앞에 스스로 나선다. “그럼 지금 내 목을 가져가시오. 내가 그 역신 강조요. 날 베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게 거란의 황제가 아니오? 내 목을 가져가기 위해 40만 대군을 일으킨 게 거란의 황제가 아니오?”
그 기백에 눌려 사신이 주저할 때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럼 내가 거란으로 가겠소. 날 묶어서 거란으로 데려가시오.” 말도 안된다는 사신의 반응에는 “뭐가 말이 안된다는 것이오. 거란이 진정 원하는 게 뭐요? 나요? 아니면 전쟁이오?”라며 핵심을 찌르기도 한다.
강조는 억울하다. 양규(지승현 분)에게 “난 잘못된 황실을 바로잡고 싶었을 뿐이네.”라 털어놓은 것이 본심이다. 황실을 바로잡기 위해 반역자, 황제시해범의 오명은 감수할 작정이었다. 헌데 고려의 군사와 백성들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현종으로부터 부월을 받아들며 격려를 받았다. 거란을 막아내면 배덕자, 반역자의 오명을 벗어던지고 고려의 영웅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조는 끝내 억울한 채 최후를 맞을 예정이다. 역사 속 강조는 통주(지금의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30만의 군사로 거란군에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고 이현운과 함께 사로 잡힌다.
하지만 끝까지 고려 무장의 기개는 잃지 않는다. 거란 황제 성종의 회유에 이현운만 응하고 강조는 끝까지 제안을 거절하다 처형된다.
‘고려거란전쟁’은 내부총질 없는 사극이라 반갑다.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외란에 맞서 하나 된 애민정신으로 국난을 극복하려는 위정자들의 모습은 가슴을 웅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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