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마음의 병, 누구든 얻을 수 있다"…간호사 된 박보영이 전하는 위로

강선애 2023. 11. 2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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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정신과는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오는 데야. 뼈 부러지면 정형외과 가고 감기 걸리면 내과 가는 거하고 똑같아. 누구든 언제든 약해질 수 있는 거니까."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대사中-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쓴 지 꽤 오래됐다.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의 수는 늘어만 가는데 이를 치료하기 위한 병원 이용률은 현저히 낮고, 정작 용기를 내서 병원을 찾더라도 부정적인 시선과 편견 때문에 치료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지속적인 인식 개선이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 3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이하 '정신아')는 정신질환과 이를 치료하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음 근무하게 된 3년 차 간호사 정다은(박보영)이 정신병동 안에서 만나는 환자들에 공감하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에피소드마다 다양한 환자들과 사연이 나오는데, 공시생, 워킹맘, 사회초년생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환자로 등장하며 정신질환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픔이라는 걸 보여준다. 이들이 마음의 병을 극복하고 한발 더 앞으로 내딛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따뜻한 위로와 감동으로 다가온다.

배우 박보영은 주인공 정다은 캐릭터로 분해 '정신아' 12회를 이끌었다. '뽀블리(박보영+러블리)'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사랑스럽고 선한 이미지를 가진 박보영이기에, 따뜻한 마음과 환한 웃음으로 환자를 대하고 공감해 주는 간호사 정다은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그리고 그의 배우로서 역량은 극 후반부에 제대로 발휘된다. 극 중 정다은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는 사건을 겪고, 이를 계기로 극심한 우울증에 걸리면서 빛을 잃는다. 정신과 간호사가 정작 스스로의 마음을 돌보지 못해 병을 얻은 상황. 이때부터 박보영은 특유의 사랑스러움을 걷어낸다. 때론 낙폭이 크고 때론 섬세하게 변하는 감정의 흐름을 설득력 있게 연기해 내며, 정다은의 극복과 성장을 그려낸다.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따뜻한 위로와 함께 현실적인 메시지를 던져주는 '정신아'를 통해 박보영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뭘까. 직접 만나 들어봤다.

▲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없었다면 거짓말"

"정신질환에 대해 저도 편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정신아' 대본을 다 읽고 나서, 이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정신질환을) 따뜻하게 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누구든 저희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신다면, 한 에피소드에는 공감하실 거라 생각해요. 많이 위로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이 드라마가 엄청 잘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인생드라마'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박보영의 출연 계기는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일맥상통했다. 정신병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여기는 인식의 변화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길, 또 실제로 마음이 아픈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박보영의 바람은 어느 정도 이뤄진 듯하다. OTT 콘텐츠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정신아'는 공개 이틀째에 국내 넷플릭스 정상에 올랐고, 일주일 후에는 글로벌 TOP10에 이름을 올렸다. 작품을 보고 많이 공감했다는 반응이 뜨거운데, 박보영 개인적으로 듣는 주변의 반응도 전과는 달랐다.

"제 주변 분들이 평소엔 '잘 봤다'고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면, 이번엔 세세하게 어느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는지, 솔직히 자기 마음도 힘들었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생각보다 제 주변에서도 마음이 힘든데 입 밖으로 내보이기 힘든 분들이 있었구나, 싶었어요."

'정신아'가 정신질환과 정신병동이라는 예민한 소재를 다루는 만큼, 철저한 현실 고증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박보영은 서울성모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받았다. 수차례 병원에 참관을 가서 실제 간호사들의 일을 어깨너머로 관찰하고 노트에 꼼꼼히 적어 캐릭터를 구현하는데 활용했다.

"간호사들이 업무 인수·인계할 때 환자가 요즘 어떤 사람과 친하게 지내나, 어떤 대화를 나누나, 많은 것들을 세세하게 공유하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또 간호사는 입·퇴원할 때 설명할 게 많은데, 안내 종이에 어떤 부분에 동그라미를 치는지, 뭘 중점적으로 얘기하는지, 그런 것도 지켜보며 메모해 뒀어요. 간호사 스테이션에 정말 많은 환자분들이 찾아오셔서 바쁘게 돌아가요. 그걸 옆에서 계속 보며 특징 같은 걸 수첩에 많이 적었어요."

▲ "애쓰지 마"란 대사에 터진 눈물

박보영은 동료들로부터 '천사'로 통한다. '정신아'를 연출한 이재규 감독과 로맨스 상대로 호흡을 맞춘 배우 연우진은 박보영에 대해 "정다은 그 자체, 천사 같다"라며 착한 심성을 칭찬했다. 이런 주변 반응에 대해 박보영은 "저에 대해 100% 모르고 단면만 본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박보영은 민망해하며 부정했지만, 실제로 그는 착한 정다은과 결이 비슷하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고, 남을 위해 자신이 조금 더 어려움을 감수하는 선한 성격이 닮았다. 그래서 박보영은 정다은에게 공감한 부분들이 있다.

"다은이가 극복해 가는 과정이 제일 공감됐어요. 제가 다은이랑 다 비슷하진 않지만, 어느 부분 맞닿아 있는 점들이 있어요. 다른 사람한테 싫은 말을 못 하고,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이 싫어하면 어떡해요?'라고 하는 대사나, 친구가 뭘 좋다고 하면 그걸 친구한테 주려 하는 점이요. 그런 게 저와 비슷해요."

남을 배려하며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정다은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며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국내 우울증 환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고, 지난해 기준 100만 명(국민건강보험공단 집계)을 넘어섰다. 현실에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박보영이 연기로 우울증에 접근할 때도 고민이 필요했다.

"즉각적으로 외관상에 차이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일단 얼굴이 피폐해 보이도록 잘 먹지 않고 그랬어요. 또 말도 잘 안 했어요. 오랫동안 말을 안 하다가 내뱉었을 때의 건조함이 느껴지고, 목소리에 생기가 없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사람들과 대화도 잘 안 하고, 그땐 제 자신을 힘들게 했어요. 스스로 고립된 상황을 만들었는데, 그런 게 약간 위험한 거 같아요. 스스로 힘들다, 몸이 아프다, 우울하고 기운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 잠식되는 느낌이 들죠. 그땐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 정다은은 '칭찬일기'라는 것을 쓰며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고 자존감을 높인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온 것으로 알려진 박보영도 요즘 '칭찬일기'를 쓰고 있다고 한다.

"다은이가 쓰는 칭찬일기를 저도 써봤는데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도 칭찬일기를 써보라 권유하기도 해요. 처음에 쓸 땐 칭찬할만한 게 없어서 고민이었어요. 큰 칭찬거리를 써야만 할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다은이는 칭찬일기에 '실내화를 가지런히 놓은 것을 칭찬한다'라고 써요. 저도 그렇게 시작하니 수월하게 풀렸어요. '알람을 듣고 한 번에 일어난 것을 칭찬해', '끼니를 잘 챙겨 먹은 걸 칭찬해' 이런 거요. 그렇게 쓰다 보니, 제 자존감이 올라가더라고요."

박보영이 '정신아'에서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에피소드는 의외로 자신이 연기한 정다은의 에피소드가 아닌, '워킹맘' 주영(김여진)과 간호사 수연(이상희)의 이야기다. 밖에서는 정신없이 일을 하고 가정에서는 가족을 돌보느라 정작 본인의 행복을 찾지 못하는 워킹맘들의 애환을 담은 이 에피소드는 "너무 애쓰지 마. 너 힘들 거야"라며 "네가 안 행복한데 누가 행복하겠어?"라는 대사로 위로를 건넨다.

"그 에피소드를 보며 많이 울었어요. 그 대사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데, 워킹맘뿐만 아니라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다 해주는 말 같았어요. 그게 (워킹맘 이야기니) 저랑 멀다고 생각했는데, 그 신에서 제일 울었던 거 같아요.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각자의 눈물 포인트로 다 다르게 느껴지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 '뻔한 희망'일지라도, 아침은 온다

'정신아'의 제목에 담긴 '아침이 온다'는 표현의 의미는 극 중 정신병동 수간호사 송효신(이정은)이 환자에 하는 대사에 담겨있다. 그는 치료를 포기하려는 환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아플 수 있는 거예요. 치료가 길어질 수도 있고요. 원래 아침이 오기 전에는 새벽이 제일 어두운 법이잖아요. 그렇지만 이건 분명해요. 처음부터 환자인 사람은 없고, 마지막까지 환자인 사람도 없어요. 어떻게 내내 밤만 있겠습니까? 곧 아침도 와요."

박보영은 이 대사가 자신에게도 크게 와닿았다며, 마음의 병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임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또 정신질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편견에서 벗어나,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 또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극 후반부 정다은은 병원에 복귀한 뒤, 환자 보호자들과 대립한다. 정신질환을 겪은 간호사에게 환자를 맡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자신의 가족 또한 정신질환을 겪는 환자인데, 정다은에게 이중잣대를 들이미는 보호자들의 모순적인 태도는, 정신질환을 대하는 지금 사회의 현실을 꼬집는다.

"제가 이 드라마를 하지 않았다면, 저도 그런 보호자들의 입장에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저도 편견이 있었으니까요. (치료를 받고) 언젠가 다시 사회에 나갈 그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봐 줬으면 해요. 그 누구보다 우리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에서, 저도 변화를 느꼈어요."

정다은은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해 병을 얻었지만, 박보영은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잘 다스리는 편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배우 박보영'과 '인간 박보영'을 구분 짓고, '인간 박보영'의 삶에 더 의미를 두려 한다.

"이 배우라는 직업이 제 안에서 너무 커지지 않게 하는 게, 제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직업인 '배우 박보영'이 아니라 33살의 저, '인간 박보영'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평상시에 형부의 카페에 가서 일을 한다든지, 조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놀러 다닌다든지, 그러면서 일하지 않는 저로서 리프레시를 하는 거 같아요.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06년 데뷔한 박보영은 영화 '과속스캔들', '늑대소년', '너의 결혼식',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힘쎈여자 도봉순' 등을 통해 특유의 사랑스러운 연기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배우다. 올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따뜻한 인간미와 강인함을 동시에 지닌 주명화 캐릭터에 이어 '정신아'의 정다은까지, 마냥 밝고 사랑스럽기만 하지 않고 좀 더 진중하고 다채로운 변주가 가능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저의 2023년은 특별할 거 같아요.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정신아'도, 기존과 다르게 해 보려 선택한 작품들이었는데 그 시도들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지고 있던 갈증 같은 게 많이 해소가 됐어요. '이런 모습도 잘 봐주시는구나' 생각해서 앞으로도 이런 작품을 선택하는 거에 예전만큼 주저하지 않을 거 같아요. 그렇다고 계속 이런 쪽으로만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얼마 전에 제가 '힘쎈여자 강남순'에 특별출연을 했는데, 그러면서 다시 '힘쎈여자 도봉순'을 찾아 봐주시더라고요. 이런 걸 좋아해 주시는구나, 이렇게 밝은 걸 할 때가 됐나 싶었어요. 대중이 원하는 것과 제가 좋아하는 것의 중간을 찾아봐야죠. 작품이 저한테 오는 운 때와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하기도 하고요. 그게 잘 오기를 바랄 뿐이에요."

마지막으로 박보영은 '정신아'에서 언급한 '뻔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고 상실에 빠진 환자에게는, 너무 뻔하지만 의지할 수 있는 게 희망 밖에 없다. 그 '뻔한 희망'이라도 찾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힘을 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뻔한 희망'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지금도 지난한 하루를 보내고 계시거나 어려움 속에서 힘겹게 본인과의 싸움, 또는 그 싸움을 지켜보는 주위의 사람들이 계시다면, 그 '뻔한 희망'을 위해 버티고 노력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아침이 올 수 있다는 희망을 놓치지 않으셨으면 해요. 저희 드라마가 그분들에게 어쩌면, 또 다른 느낌의 아침이 되어 줬으면 좋겠어요."

[사진제공=넷플릭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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