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서 '민증' 쓸어간 조폭, 어디로 갔나 보니…'대포유심' 일당 덜미[베테랑]

김지성 기자 2023. 11. 26.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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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전수진 전북경찰청 사이버수사과 사이버범죄수사대 경위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엄마, 나 액정이 깨졌어. 휴대폰 보험 받으려면 링크 눌러줘야 해!"

올해 초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대포 유심이 유포되고 있다는 첩보가 전북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입수됐다. 사건 피해자들은 '휴대폰이 범죄에 이용됐으니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 피해자는 당시 휴대폰을 새로 개통한 적 없어 영문을 모른 채 경찰에 신고했다.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경찰 조사 결과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전북 전주의 한 번화가에서 신분증을 분실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들의 휴대폰이 개통된 대리점을 수상히 여겼다. 통상 휴대폰을 새로 개통하려면 대리점 업주(60대)가 가입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동의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업주가 가입신청서를 위조해 범행을 벌이면서 휴대폰이 무작위로 개통됐다.

사건 수사를 담당한 전수진 전북경찰청 사이버수사과 사이버범죄수사대 경위는 "피해자 진술부터 거꾸로 타고 올라가 조사해 보니 전주 시내 조폭(폭력조직원)이 연계돼 있었다"며 "조폭 A씨(20대)가 시내 술집에서 신분증을 모아다 대리점에 갖다주면 대리점주가 휴대폰을 개통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수법으로 타인의 신분증을 이용해 개통된 대포유심은 100여개에 달한다. 이들 일당이 유심을 팔아 범죄조직으로부터 챙긴 부당이익은 2000만원 상당인 것으로 파악됐다.

일당을 검거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장장 반년에 걸쳐 통신수사와 계좌수사, CCTV 확인 등을 수차례 한끝에 비로소 피의자들을 특정할 수 있었다. 공범 간의 연락을 막기 위해 휴대폰 대리점 압수수색과 조폭 A씨 체포를 한날한시에 진행해야 했다. 이에 전북경찰청 소속 경찰관이 20명 가까이 동원됐다.

피의자 A씨가 조폭인 탓에 검거 당일 긴장감도 상당했다고 한다. 전 경위는 "2월의 추운 날씨에 잠복근무, 미행을 한 끝에 A씨의 은둔처를 확보했다"며 "아무래도 조폭인지라 체포 당일 방검복과 테이저건 등 장비를 갖추고 출동했다"고 말했다. 이어 "부장, 팀장, 팀원들와 함께 오래 고생한 보람이 있어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전수진 전북경찰청 사이버수사과 사이버범죄수사대 경위. /사진=본인 제공

전 경위는 올해로 경찰이 된 지 21년 된 베테랑이다. 경력 대부분은 내근을 하다 외근 부서로 옮긴지 3년째다. 전 경위는 "내근할 때도 수사 관련 업무를 오래 하긴 했지만 내근만 하다 보니 외근이 해보고 싶더라"며 "현장 가서 직접 사건을 확인하고 통화 내역, CCTV 등을 들여다보며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사이버 사기·금융범죄 수법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노숙인과 같은 행려자의 개인정보로 유심이나 통장을 만들어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다 통장 개설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범죄자들은 유령 법인을 설립해 법인 명의의 통장을 만드는 식으로 우회해 범행에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전 경위는 "범행 수법이 점점 지능화하면서 스미싱, 메신저 피싱 범죄에 있어 새로운 범죄 유형이 만들어진 것 같다"며 "경찰 입장에서는 범죄자들보다 한 단계 더 알아야 수사를 할 수 있으니 늘 공부하며 수사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 동안 사이버 사기·금융범죄로 2만7264명이 검거됐다. 이 가운데 사이버 금융범죄 피의자는 3582명 붙잡혔는데 메신저 피싱이 54.8%로 가장 많았다. 메신저 계정 등 불법 유통이 21.9%, 스미싱 등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피싱범죄가 17.1%로 뒤를 이었다.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자녀 사칭, 부고장, 택배 알림 등 그럴듯한 내용의 문자 메시지에 속기 쉽다. 이에 메신저 공개 채팅방에 올라온 링크는 절대 클릭하지 말고 발신자에게 직접 연락해 전송 여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 경위는 조언했다. 또 경찰이 배포한 백신 앱 '시티즌 코난'을 다운받는 것도 악성 앱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전 경위는 사이버 범죄에 본인의 개인정보가 이용됐을 때 적극적으로 신고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종종 피해자들이 신고하러 오면서 죄인처럼 행동하곤 하는데 떳떳하게 신고했으면 한다"며 "늘 피해자가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내 일처럼 하고 있으니 경찰을 믿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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