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내부 다툼 멈춰야 기업이 산다
식품기업 아워홈의 고(故) 구자학 회장은 40년간 LG와 삼성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다.
그는 LG가의 아들이자 삼성가의 사위였지만 호텔신라 초대사장부터 중앙개발(삼성물산), 럭키(LG화학), 금성사(LG전자), 금성일렉트론(LG반도체), LG건설(GS건설) 대표 등을 맡으며 철저한 전문경영인으로 지냈다.
구 회장이 즐겨하는 말은 “남이 하지 않는 것, 못하는 일에 집중하는 일이 남을 앞서는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최초’에 대한 집착도 강했다. 1981년 출시한 국내 최초의 잇몸질환 예방 치약 ‘페리오’와 LG화장품의 1호 화장품 ‘드봉’이 그의 작품이다.
70세에 아워홈 사업부를 분사해 독립한 후에도 업계 최초로 연구소부터 만들고 센트럴 키친을 도입해 한식 양념 사업을 개척했다. 중국 급식시장에 진출한 것도 국내에서는 최초였다. 구 회장은 급식만 하던 아워홈을 식품 제조, 외식, 식자재 공급까지 아우르는 종합식품기업으로 키워냈다.
없는 시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새로 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전정신으로 세워진 아워홈이 흔들리고 있다. 구 회장이 떠난지 1년이 지났지만, 경영권 분쟁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보복운전과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대표이사에서 해임된 장남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은 지난해 자신의 지분을 모두 매각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도 지분 매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워홈 지분은 장남(38.56%)과 세 딸(약 20%)이 나눠갖고 있다. 현재 막내딸 구지은 부회장이 언니들의 지지를 받아 경영에 나서고 있지만 누군가가 마음을 바꾼다면 경영권은 언제든지 다시 장남에게 넘어갈 수 있는 구조다.
이는 직원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아워홈 노조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구본성 전 부회장이 경영권과 대주주로서 역할을 절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구 전 부회장은 2017~2021년까지 5년간 대표로 재직하면서 회사의 미래와 성장을 위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며 “개인 사익을 채우기 위해 직원들의 강제 계약 해지와 함께 2019, 2020년 자신의 인센티브로만 30억원을 챙겼다”고 비판했다.
아워홈처럼 창업자가 어렵게 키운 회사나 재단이 가족간 분쟁으로 흔들리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 롯데·효성·금호·한국타이어 등 대기업 뿐만 아니다. 노벨상 수상자 육성을 목표로 고(故) 이종환 전 삼영화학 회장이 설립한 관정재단도 운영권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전 회장은 1958년 사출기 한 대로 회사를 창업, 플라스틱·바가지·컵·양동이를 만들어 팔았다. 음식물을 싸는 투명 랩도 최초로 개발했다.
그는 “빌 게이츠 같은 인물 두 명만 나와도 대한민국이 먹고살 수 있다”며 1조 7000억원을 기탁해 아시아 최대 장학재단인 관정재단을 설립했다. 현재 누적 장학생이 1만2000명, 박사학위 수여자도 750명에 달한다. 이들에게 지급한 장학금액은 2700억원 수준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 9월 100세의 나이로 타계하면서 ‘관정재단에 가족이 관여해선 안된다’는 유훈을 남겼다. 재단 경영권을 상속하는 대신 사회에 공헌해 투명하고 지속가능한 운영을 당부한 것이다.
그러나 며칠 후 재단은 이사회를 열어 ‘가족은 관여할 수 없다’는 정관 20조를 삭제했다. 문제가 커지자 서울시교육청은 이사회의 정관개정 의결이 적절히 이뤄졌는지 심의해 징계할 방침이다.
가족간의 불협화음, 갈등이 심화되면 기업은 성장동력을 잃는다. 나아가 직원, 지역사회, 국가 경제 등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준다.
우리나라 경제는 소비 침체와 더불어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 등으로 유가가 오르고 고금리 상황에 기업과 가계부채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 기업은 회사의 생존과 미래 경쟁력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더 이상의 불필요한 갈등은 멈춰야 한다. 항상 갈망하고 바보짓을 두려워하지 않던 창업자가 원하던 바도 같을 것이다.
[유윤정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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