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 사이에 나뭇잎도 아니고 먹지도 못하고…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3. 11. 2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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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1. 인조대잎,바랑, 바란, 이개비 2. 바란(バラン)【예문】허겁지겁 도시락을 먹다가 인조대잎까지 씹고 말았다.

단순히 장식용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초밥들이 맞붙거나 해서 맛이 섞이는 걸 방지하는 용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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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사전 - 3] 포장해온 초밥 사이에 초록색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든든한 초밥들 사이로 인조대잎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명사. 1. 인조대잎,바랑, 바란, 이개비 2. 바란(バラン)【예문】허겁지겁 도시락을 먹다가 인조대잎까지 씹고 말았다.

인조대잎(일본어로는 바란バラン)이다. 초밥이나 일본식 도시락에서 밥과 반찬 등을 구분해주는 플라스틱 소재의 잎사귀 같은 물건을 가리킨다. 단순히 장식용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초밥들이 맞붙거나 해서 맛이 섞이는 걸 방지하는 용도다. 일식 도시락에서 반찬들끼리 섞이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로도 쓰인다. 진한 초록색이 음식을 신선하게 보이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이름의 어원은 엽란(葉蘭)이다. 넓고 긴 이파리가 특징적인 비짜루과(아스파라거스과)의 식물로, 일본에서는 하란(ハラン)이라고 읽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거문도와 제주도에서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예부터 칼로 모양을 내서 자른 잎을 요리의 장식으로 사용했는데, 매번 생잎을 따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하란 장식을 흉내 내서 저렴한 플라스틱 대체품을 만든 것이 ‘인조하란’이다. 이후 합성어에서 뒷부분의 발음이 변화하는 일본어의 연탁 현상때문에 ‘인조바란’으로 바뀌었고, 이후 ‘인조’가 떨어져 나가며 바란만 남은 것이다. 뾰족뾰족한 산 모양, 나뭇잎 모양 등이 있고 1000매 한 곽에 5000~1만원 정도로 저렴한 편.

아마존에서 판매 중인 인조바란. 1000개들이 한 통에 7.99달러다. [사진 출처=아마존]
우리나라에서는 바란, 바랑, 이개비, 인조대잎 등으로 불린다. 대잎(댓잎)은 대나무 잎(죽엽)을 뜻하는데, 처음 이름을 붙인 사람이 착각한 게 아닐까 싶다. 이개비는 뜻은 물론이고 어원조차 불분명해서 추측조차 불가능하다.

소설 [1984],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은 [엽란을 날려라 Keep the Aspidistra Flying]라는 작품을 썼다. 돈이란 이름의 신(神)을 거부하고 돈에 맞서 살기를 선택한 고든 콤스톡에 대한 이야기이자 궁핍한 환경에서 분투했던 작가 자신의 삶을 반영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엽란은 1930년대 영국에서 집마다 기르던 흔한 관상용 식물이자, 중산층의 삶이자, 주인공이 결국은 타협하고 마는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억척스럽게 푸르름을 뽐내는 엽란은 관상용 식물로 각광 받는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화려할 것 없이 무성한 초록색 잎만 보이는 엽란이지만, 관상용 식물로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끈질긴 생명력이다.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자라고, 어느 정도의 추위에도 죽지 않는다. 영어 이름이 괜히 ‘무쇠식물(Cast-iron plant)’이 아니다.

영국에선 중산층의 상징, 미국에선 무쇠식물, 일본에선 도시락 장식. 뭔가 용처와 이미지가 제각각이다. 각양각색 상징과 쓰임의 근간에는 공통적으로 꺾이지 않는 생명력이 있다. 결코 화려한 주연은 아니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도 타고난 성정(性情)인 푸르름을 지켜낸다. 엽란은 그런 존재다.

그들에게는 나름의 기준, 포기할 수 없는 명예가 있었다. 그들은 품위를 지켰다-엽란을 계속 날렸다. 넘치는 활력으로 계속 살았다. 그리고 자식을 계속 낳았다.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과 성자들은 결코 하지 않을 일이었다. 엽란은 생명의 나무구나. 고든은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현암사, 2023)

  • 다음 편 예고 : 택배상자 안에 잔뜩 있는 뽁뽁이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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