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시계가 거꾸로 흘렀던 그 밤, 《서울의 봄》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2023. 11. 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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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했던 12·12 사태 속 감춰진 9시간 재해석…“근현대사에 거대한 탐욕의 덩어리가 탄생한 날”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한 사회의 역사적 사건과 특정 인물들을 향한 평가는 고정불변일 수 없다. 시대 변화와 발전의 과정 안에서 어떤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느냐에 따라 새로운 해석을 얻는다. 진실을 둘러싸고 가려졌던 이야기를 들추는 시도가 흘러간 역사의 시간을 한층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이다. 때론 창작물이 유의미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였던 12·12 사태를 다루는 《서울의 봄》은 하나의 관점을 지닌 역사의 해석으로도, 상업적 감각과 재미를 겸한 창작물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영화는 1979년 12월12일, 이듬해 8월 신군부 세력을 위시한 전두환이 기어이 제11대 대통령의 자리에 앉기까지 오랜 쿠데타의 출발점과도 같았던 그 밤의 이야기를 그린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하룻밤 만에 뒤바뀐 권력에 대한 기록

《서울의 봄》과 김성수 감독의 만남은 퍽 운명적이다. 이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분명한 역사의 증거이자 해석의 주체임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열아홉 살 무렵 한남동에 살던 김 감독은 겨울밤의 찬 공기 속으로 20분 넘게 울려 퍼지는 총성을 들었다. 그것이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들려온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서였다.

하룻밤 만에 권력이 뒤바뀐 사건은 이따금 감독의 마음 안에 일종의 패배감을 동반한 상실감으로 떠올랐고, 2019년 《서울의 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는 피할 수 없는 실감으로 다가왔다. 한국 현대사의 운명을 바꾼 날을 영화화한다는 부담감에 한 차례 연출을 거절했던 감독은 결국 메가폰을 쥐었다. 그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올랐다는 의문 하나는 각색 과정에서 중요한 방향성이었다. '명분은 왜 탐욕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끝내 물러서지 않았는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육군본부 벙커에서 열린 비상 국무회의부터 12월12일 밤의 긴박한 사건들을 넘어 13일 새벽이 당도하기까지. 《서울의 봄》은 영화의 서막에 내건 자막 그대로 '그해 겨울 철저히 감춰졌던 이야기'를 파헤친다. 중심에 놓이는 것은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격이 시작된 이후, 반란군이 진압군을 제압하고 끝내 서울을 차지할 때까지의 숨 가쁜 아홉 시간이다. 12·12 사태 회고록과 기사 등 일부 자료는 남아있지만, 반란군의 행적과 진압군의 작전을 면밀하게 남긴 기록은 많지 않다. 세상에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았던 아홉 시간을 스크린에 투사하며, 김성수 감독은 "한국 근현대사에 거대한 탐욕의 덩어리가 탄생한 날"을 하나의 관점으로 재현하려 한다.

반란군의 우두머리를 자처하는 전두광(황정민), 육사 동기이자 전두광의 오른팔 격인 노태건(박해준) 등 글자만 조금씩 바꾼 이름들은 실존 인물들을 어렵지 않게 상기시킨다. 실재감을 잃지 않는 영화적 허용 안에서 《서울의 봄》은 이들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들여다본다. 감독의 말마따나 영화에서는 내내 권력을 향한 탐욕과 명분이 맞부딪친다. 보안사령관이자 박 전 대통령 사망 사건 진상조사를 위한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광이 탐욕의 편에 서있다면, 수도 서울을 책임지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은 군인으로서의 명분과 도덕적 신념의 편에 선 사람이다.

전두광은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상호(이성민)를 박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의 연루자로 엮어 끌어내리고자 한다. 이를 위해 군인 조직 전체에 암암리에 뿌리내린 전두광의 사조직 세력인 하나회가 뜻을 모은다. 반란군이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자신들의 논리로 군사 반란을 꾀할 때, 이태신과 소수의 진압군들은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그러나 역사가 이미 그 결과를 보여주듯, 이날 벌어진 암흑 속 전쟁은 반란군의 승리였다.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다시는 겨울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

《서울의 봄》에 담긴 분초를 다투는 밤의 시간은 긴박하다. 역사적 사건을 손에 땀을 쥐는 서스펜스로 그려낸 것이 영화의 강점이다. 육군참모총장 강제 납치를 불사하며 시작된 총격전, 그에 대한 재수사를 위해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내려는 전두광의 상황이 교차되며 극의 긴장감은 빠르게 고조되기 시작한다. 반란군의 움직임을 알아챈 진압군이 20시20분을 기해 최고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이후 시시각각 전세가 엎치락뒤치락하는 모든 상황이 리듬감 있게 펼쳐진다. 권력을 잡기 위해 최전방의 공수부대 출격까지 불사하는 등 반란군의 만행이 드러나는 순간들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노를 안긴다.

아홉 시간 동안 펼쳐진 거의 모든 순간을 재해석해 담아낸 《서울의 봄》은 마치 이렇게 외치고 있는 듯하다. 크고 작은 결정 중 단 하나만 달라졌더라도 역사의 흐름은 뒤바뀔 수 있었다고. 역사가 다수의 합리적 판단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놀랄 만한 불합리와 순간적으로 내려진 채 바로잡지 못한 잘못된 판단들은 반란군을 진압하려는 이들의 상식보다 우선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위태로운 암흑 속에서도 신념을 지키며 맞서는 이태신을 필두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이들의 분투가 있었음을 결코 잊지 않는다.

'서울의 봄'은 분명 지나간 시간이다. 유신 체제가 무너진 후 1980년 5·17 비상계엄령이 떨어지기까지 크고 작은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일었다. 완연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으로 시작된 짧은 봄은 신군부가 투입한 계엄군의 무력진압으로 막을 내렸지만, 오랜 겨울을 지나 다시 긴 봄으로 되돌아왔다. 2023년에 이미 지나간 암흑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것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이는 서울의 봄을 겨울로 되돌리기 위해 또다시 어디에선가 벌어질지 모를 밀실의 작당에 굴복하지 않기 위한 각성제 역할을 한다. '지금 같은 때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은 합당하지 않다. 44년 전에 이미 그런 식으로 봄은 한 차례 끝이 났었다.

영화는 반란군 전체가 보안사령부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비추며 막을 내린다. 전두광을 중심으로 신군부 핵심 구성원들이 이후 밟아간 역사의 흔적을 자막과 함께 짚던 화면은, 이후 실제 반란군 사진에 오버랩된다. 훗날 이들에게는 반란죄, 내란수괴죄 등이 적용됐다. 비록 비열한 승리를 거머쥐었지만, 그보다 긴 역사의 심판에서는 패배자로 기록된 것이다. 자랑스럽게 자축하고 있지만 결국 그 어떤 명예 하나 없는 범죄자로 기억될 얼굴들. 이 또렷한 공연(公然)이야말로 《서울의 봄》이 진정 다루고자 했던 선언일 것이다.

반짝이는 연기 올스타전

전두광의 대머리를 위해 매번 4시간의 분장 과정도 마다하지 않은 황정민의 연기는 압도적 카리스마라 해야 할지, 악마성에 가까운 열연이라 해야 할지 망설여질 정도다. 그만큼 그의 존재감은 뜨겁고 악랄한 불 같다. 이에 대항하는 차가운 물 같은 이태신으로 분한 정우성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넌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 전두광의 면전에 대고 하는 일갈의 순간이 주는 감흥은, 《비트》(1997)를 시작으로 《태양은 없다》(1999), 《아수라》(2016)까지 김성수 감독과 오랜 시간을 쌓아오며 완성된 좋은 협업의 결과물로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이성민, 박해준, 헌병감을 연기하는 김성균, 카메오로 등장하는 정해인까지. 누구 하나 실망을 남기지 않는 연기 올스타전을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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