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위드인] 고전게임 되살리기가 한국에서 외면받는 이유는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후속작이나 리메이크로 1990년∼2000년대 초반 고전 게임 지식재산(IP)의 명맥을 이으려는 국내 게임 업계의 시도가 낮은 완성도로 소비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올드팬에게 호소하는 '추억 마케팅'을 넘어 원작을 모르는 사람까지 즐길 수 있는 새로운 IP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게임산업 여명기 나온 창세기전·화이트데이의 '후속작 잔혹사'
단적인 예는 최근 체험판을 공개한 라인게임즈의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이다.
'회색의 잔영'은 소프트맥스가 1995년 첫선을 보인 국산 PC SRPG(전략 역할수행게임) 시리즈 '창세기전'의 1편과 2편을 현대적 감각으로 리메이크한 게임이다.
'창세기전'은 중세풍 판타지와 공상과학(SF)이 결합한 독특한 세계관, 당시 기준으로 매력적인 스토리라인으로 인기를 얻으며 2000년까지 총 4편의 정식 타이틀과 여러 외전 작품이 나왔다.
하지만 2000년 나온 '창세기전3: 파트 2' 이후 창세기전을 되살려보자며 나온 후속작들은 시장에서 참패를 거듭했다.
2016년 정식 후속작인 '창세기전 4'가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장르로 나왔지만, 부족한 완성도가 발목을 잡으며 1년도 채 안 돼 서비스를 종료했다. 2018년 조이시티가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출시한 모바일 게임 '안타리아의 전쟁'도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라인게임즈가 오는 12월 닌텐도 스위치 플랫폼으로 출시를 예고한 '회색의 잔영'도 벌써 시장에서는 불안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 16일 공개된 체험판을 통해 볼 때 게임의 '첫인상'에 해당하는 그래픽은 닌텐도 스위치의 낮은 성능을 감안해도 열악한 수준이었다.
전투 시스템도 사각형 타일 위에서 캐릭터를 움직여 적을 물리치는 기존 '창세기전' 시리즈의 방식을 그대로 차용했는데, SRPG의 핵심인 전략 요소가 들어갈 여지가 적고 단순했다.
'발더스 게이트 3' 같은 현대 SRPG를 경험한 게이머들이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브랜드를 되살려 보겠다며 나온 후속작이 연이어 부진한 모습은 손노리의 2001년 작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에서도 나타난다.
'화이트데이'는 발매 당시 보기 드물게 한국의 고등학교를 무대로 한 일인칭 호러 게임으로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16년 후인 2017년 PC·콘솔 플랫폼으로 야심 차게 나온 리메이크 버전은 시대에 맞지 않는 부족한 그래픽, 원작을 그대로 이식한 수준의 빈약한 콘텐츠 때문에 흥행에 실패했다.
정식 후속작인 '화이트데이 2: 스완송'도 개발이 계속 지연되다 결국 취소됐고, 손노리 출신 개발진이 '화이트데이' 판권을 인수해 올해 초 내놓은 '화이트데이 2: 거짓말하는 꽃'도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Steam) 기준 긍정 평가가 50% 이하로 떨어지며 사실상 원작 팬 아니면 하지 않는 게임으로 전락했다.
원작 계승은 좋지만…달라진 시대 맞게 과감히 바꿔야
'창세기전'과 '화이트데이' 시리즈 후속작의 연이은 실패는 단순한 '팬심'만으로는 오랫동안 명맥이 끊긴 고전 게임 IP를 되살릴 수 없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지난 20년간 게임산업은 규모뿐만 아니라 유통과 홍보의 방식, 신작에 대한 게이머의 기대치와 게임을 즐기는 방법까지 크게 달라졌다.
시장 상황이 달라졌으면 성공하는 게임의 도식도 달라진다. 게임의 전반적인 시스템은 물론 줄거리나 캐릭터까지 세계 시장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 이유다.
"다시 시작하되, 놓아 줄 때를 알라(Begin again, but know when to let go)"
2010년 옵시디언이 제작하고 베데스다가 발매한 명작 역할수행게임(RPG) '폴아웃: 뉴 베가스'에 나오는 말이다.
'뉴 베가스'의 기반이 된 베데스다의 '폴아웃 3'도 1990년대에 나온 '폴아웃' 1·2의 후속작이지만 턴제 역할수행게임(RPG)이었던 전작들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과감하게 실시간 오픈월드 RPG로 전환했다.
그 결과 '창세기전'이나 '화이트데이 시리즈'와는 다르게 원작을 뛰어넘는 규모의 팬층을 만들었고, 추억의 시리즈를 부활시킨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고전을 다시 되돌아보려는 시도는 좋지만, 시대에 뒤떨어지는 요소는 과감히 쳐내고, 때로는 추억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게 '놓아 줄 때'를 알아야 하는 셈이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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